박정희 생가 방화… 범인은 4년前 노태우 생가에도 불

입력 2016.12.02 03:00

단층 건물인 추모관 내부 전소… 박정희·육영수 영정도 불에 타
수원 사는 40代, 기차로 구미行 "최순실 사태 보고 10월부터 계획"

경북 구미경찰서는 1일 오후 3시 15분쯤 구미시 상모동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에 불을 지른 혐의로 백모(48)씨를 체포했다. 백씨는 2012년 12월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에도 방화를 했다가 붙잡혀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경찰에 따르면 경기도 수원에 사는 백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下野)하지 않아 화가 나서 기차를 타고 내려와 박 전 대통령의 생가에 불을 질렀다"며 "지난 10월 '최순실 사태'를 언론에서 접하고 방화를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이날 방화로 생가에 조성된 57.3㎡ 규모의 단층 건물인 추모관 내부가 전소(全燒)했다. 박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의 영정도 모두 불에 탔다. 추모관 옆 초가지붕에도 불이 옮겨붙어 일부 피해가 났다. 경찰 관계자는 "백씨는 3년 전 노 전 대통령 생가에 불을 지를 때 시너 2L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질렀는데, 이번엔 플라스틱 물병에 시너 1L를 담아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일 경북 구미시 상모동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추모관 내부가 새까맣게 탄 모습. 방화 용의자 백모씨는 휘발성이 강한 시너를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불은 약 10분 만에 진압됐지만, 피해가 컸다.
1일 경북 구미시 상모동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추모관 내부가 새까맣게 탄 모습. 방화 용의자 백모씨는 휘발성이 강한 시너를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불은 약 10분 만에 진압됐지만, 피해가 컸다. /김종호 기자

화재가 나자 생가 관리인이 소화기를 분사해 불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 했고, 곧이어 도착한 소방대가 10분 만에 진화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생가에서 100m쯤 떨어진 주차장에서 서성이는 백씨를 수상하게 여겨 검문을 했고, 추모관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에 찍힌 백씨의 모습을 확인하고 체포했다. 백씨는 생가 방명록에 '박근혜는 자결하라. 아버지 얼굴에 똥칠하지 말고'란 글을 남기기도 했다.

백씨는 수원시 권선구의 한 공동주택에서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있으며, 인터넷으로 건강식품을 팔아 생계를 꾸린 것으로 보인다. 백씨는 아버지의 주소로 된 건강식품 판매 업체의 대표자로 등록되어 있다. 그는 사회·정치 등 여러 분야의 게시판을 모아 놓은 형태의 인터넷 웹사이트도 운영했으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영웅'이라는 등의 글을 올려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왼쪽 사진)생가 추모관 내부에 전시됐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의 영정. (오른쪽 사진)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 불을 지른 백모(48)씨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왼쪽 사진)생가 추모관 내부에 전시됐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의 영정. (오른쪽 사진)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 불을 지른 백모(48)씨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연합뉴스·뉴시스
백씨는 지난 2012년 12월 12일 대구 동구 신용동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에 불을 지른 혐의로 기소돼 대구지법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는 노 전 대통령의 부정 축재, 추징금 미납 등에 불만을 품었다고 범행 동기를 설명했다. 현장엔 '정의실천행동당'이라는 명의로 '대통령직을 이용해 국민 재산을 도둑질하는 도둑들이 태어나지 않길 바라면서 불을 지른다'는 내용의 자필 편지를 남겼다. 백씨는 2007년에도 서울 송파구에 있는 사적 101호 삼전도비(三田渡碑·병자호란 때 승리한 청나라 태종이 자신의 공덕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요구해 세운 비)를 훼손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방화 외에도 폭행, 상해, 재물손괴 등의 전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이번 방화로 훼손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는 박 전 대통령이 1917년 태어나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753.7㎡(228평)의 터에 집과 안채, 추모관, 관리사 등 건물 4채로 이뤄졌다.

경찰 관계자는 "백씨가 처음에는 묵비권을 행사했지만 범행 동기를 털어놓는 과정에서 자기주장을 분명히 밝히는 모습이었다"며 "배후와 공범이 있는지 여부를 수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물 정보]
방화로 불 탄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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