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조선] 소설가 박범신부터 큐레이터 함영준까지 충격적인 문화계 내 성폭력

  • 임언영 여성조선 기자
  • 사진 조선일보DB
    입력 2016.12.03 14:24

    그야말로 장르 불문이다. 문단은 물론 영화, 미술 등 문화계 전반에서 성추문 관련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신체적, 언어적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것은 법적인 처벌이나 피해자 구제를 떠나 사회적 공론화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문화계 내 성폭력 사태의 실체를 알아봤다.

    요즘 SNS상에는 해시태그를 통한 문화계 내 성폭력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시인과 소설가 등 문단에서 시작된 폭로는 미술, 영화 등 장르를 넘어 지금은 문화계 내의 전반적인 폭로로 이어지는 추세다. 10월 중순에 시작된 이러한 흐름이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피해자를 비롯한 여성들은 처음으로 부상한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이 끊어지지 않도록,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고통 받는 왜곡된 현실을 고치기 위해서 꾸준하게 운동을 이어가자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해시태그를 이용한 검색을 통해 꾸준하게 여론몰이를 하는 중이다.

    실명이 거론된 작가들은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거나 절필을 선언하는 등 각자 대응을 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서 고백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가해자는 간단한 사과문을 올리는 식으로 가볍게 굴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 거장이라는 이름의 충격
    박범신 작가

    우리 문단에서 박범신이라는 이름이 차지하는 존재감과 무게만큼이나 실망감도 컸던 이슈다. 전직 편집자의 폭로가 시작이었다. 그의 책을 담당하던 출판사 편집팀 여성들과의 자리에서 박 작가는 그들을 ‘은교’라고 부르며 신체 접촉을 했고, “여성 편집자 중 자신과 모종의 관계가 없었던 이는 없었다. 원래 남자 작가와 여자 편집자는 그런 관계”라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소설 <은교>를 영화로 제작할 때는 주연 배우 김고은 씨에게 성 경험 여부를 물어봤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했다는 말도 있었다.

    이 폭로로 여론이 뜨거워지자 박 작가는 본인의 트위터에 바로 사과문을 올렸다. 그런데 처음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는 “오래 살아남은 것이 오욕~죄일지도… 누군가 맘 상처 받았다면 나이 든 내 죄겠지요. 미안해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 사과문은 나이 많은 내가 잘못했다는 식의 가벼움이 느껴지는 데다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여론과 평판이 나빠지자 이틀 후 박 작가는 “내 일로 인해~상처받은 모든 분께 사과하고 싶어요. 인생-사람에 대한 지난 과오가 얼마나 많았을까, 아픈 회한이 날 사로잡고 있는 나날이에요. 팩트의 진실 여부에 대한 논란으로 또 다른 분이 상처받는 일 없길 바래요. 내 가족~ 날 사랑해준 모든 독자들께도 사과드려요”라는 사과문을 또 올렸다. 그러나 차가워진 대중의 마음에는 그의 사과문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작가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묘사된 여성 팬이 오히려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고 박 작가를 옹호하는 글을 남기면서 다시 논란이 거세지기도 했지만, 그가 평생 쌓아온 이미지는 굉장히 큰 타격을 입었다.

    # 미성년자 향한 논란
    박진성 시인

    한 트위터리안이 글을 올린다. “용기내서 몇 자 적어봅니다. 작년 미성년자인 저는 저보다 나이가 20살 많은 시인에게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라는 글이다. 박진성 시인이 시를 배울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올렸고, 이에 응한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이다. 박진성 시인은 “여자는 남자 맛을 알아야 한다”, “너는 색기가 도는 얼굴” 등 성희롱 발언을 하고 강제로 신체접촉을 했다고 주장했다.

    애석하게도 박 시인의 습작생은 한두 명이 아니었고, 많은 인원만큼 그와 관련된 성추문을 폭로하는 글이 쏟아졌다. 그의 이름과 ‘문단 내 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폭로 글들이 올라오자, 그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면서 공개 사과문을 올리고 절필을 선언했다.

    “저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께 사죄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의 부적절한 언행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올해 예정되어 있던 산문집과 내후년에 출간 계획으로 작업하고 있는 시집 모두를 철회하겠습니다. 저의 모든 SNS 계정을 닫겠습니다”라고 꽤 진정성 있게 말하는 듯했으나, 당시 사과문을 두고 “나의 잘못된 언행으로 인해 이러한 일들을 초래한 것에 대한 사죄이지, 제기된 모든 폭로 내용을 시인한다는 말은 아니다”라면서 해명에 나서 더욱 눈총을 받고 있기도 하다.

    # 문단과 다르지 않은 미술계
    함영준 큐레이터

    미술계도 문단과 다르지 않았다. 일민미술관 함영준 큐레이터가 여성 작가들을 비롯한 다수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및 성추행을 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 학부생이 “함영준이 만나자고 요청했고, 어린 학부생이 유명 큐레이터에게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란 생각에 응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부적절한 신체적 접촉뿐이었다”라는 글을 SNS에 남겼다.

    함영준은 곧장 사과했다. “우선, 미술계 내에서 저의 지위와 권력을 엄밀히 인식하지 못하고, 특히 여성 작가를 만나는 일에 있어 부주의했음을 인정합니다. 불쾌함이나 압박을 느끼셨을 작가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특히, 신체 접촉이 이루어진 부분에 대해 깊이 사죄하고 후회합니다. 이 부분은 마땅히 단죄되어야 할 질 나쁜 행동이었음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있습니다. 여러 지면을 통해 평소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자세로 일해왔으나, 실상 그렇지 못한 삶을 꾸려온 점에 대해서도 사과드립니다. 이 부분에 있어 위선적이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는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일민미술관은 함 큐레이터를 사직 처리했고, 그가 속한 문화잡지 <도미노> 역시 모든 공식활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 학교 안에서 일어난 일
    배용제 시인

    시인 배용제에게 문학 강습을 받은 학생들이 트위터 계정을 통해 각종 사건을 폭로했다. ‘고발자5’라는 이름의 계정을 통해서 알려진 배용제 시인의 성추행 내용은 예고에서 강사로 재직할 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일어난 일이라서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네가 문학에서 벽을 마주하는 이유는 틀을 깨지 못해서 그렇다. 탈선을 해야 한다”, “내가 네 첫 남자가 돼주겠다”, “가슴 모양이 예쁠 것 같다”, “내가 문단에서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 줄 아느냐. 내 말 하나면 누구 하나 매장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며 학생들에게 성희롱, 성추행을 했다.

    그는 폭로 이후 자신의 블로그에 사과문을 올렸다.

    “시를 가르친다는 명목하에 수많은 성적 언어로 희롱을 저지르고, 수많은 스킨십으로 추행을 저질렀다. 아이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인식도 하지 못한 채, 그 아이들이 대학 진학 후 저를 찾아온 후까지 이어졌다. 몇몇의 아이들과 성관계를 가졌다. 이 어이없는 일을 저는 합의했다는 비겁한 변명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며, 위계에 의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자각이나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그 몰염치한 짓을 저질렀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적인 권위를 남용한 그가 블로그에 남긴 사과문의 일부다. 그러나 이 사과문은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합의된 행위였다는 뉘앙스를 풍겨 피해자들의 반발을 불렀다.

    # 대자보 통한 오프라인 폭로
    황병승 시인

    서울예술대학교에는 대자보가 하나 붙었다. ‘황병승 시인의 추행을 고발한다’는 내용의 폭로성 대자보였다. 문예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학생 2명이 피해자 ㄱ씨에게 폭로 글을 받아 대자보를 작성했다.

    피해자 ㄱ씨는 강사였던 황 시인이 자신에게 접근해 “시인들을 소개시켜주겠다”며 술자리에 데려갔고 데이트도 몇 번 했지만 1~2주 후 여자친구가 생겼다면서 관계를 정리하려 했다고 밝혔다. ㄱ씨는 정신적 충격에 휴학을 하려 했으나 황 시인이 막았고 이후 사과할 일이 있다며 술자리에 불러내 “여자로 보인다”는 등 거듭 추근댔다는 것이다. 황 시인은 “여자는 30 넘으면 끝이다” 등의 언어폭력은 물론이고 술에 취해 성관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두 번 다시 그런 스승으로서 아무 자질이 없는 사람들이 서울예대를 비롯한 어느 학교에서도 강의를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일을 밝힌다”는 것이 피해자의 주장이다.

    황병승 시인은 실질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정황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숙하겠다는 사과의 뜻도 전했다.

    # 문화계 내 성폭력 피해
    해결방안은?

    문화계 내 성폭력 피해 사례는 문학, 만화, 미술, 음악 등 분야를 막론한다. 스승과 제자, 미성년자 작가 지망생과 등단한 문인, 작가와 팬, 팬 모임에서 만난 미성년자와 중년, 대학생 남성, 미술관장과 큐레이터 등 다양한 관계가 있다. 남성 피해자도 있지만 대부분 여성 피해자다. 젊은 여성과 나이 든 남성 사이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가장 큰 원인은 문화예술계 내의 잘못된 관행이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되었던 문단 내 성폭력은 등단 비리와 연관된 경우가 많다. 한 문예지의 편집위원인 시인 겸 평론가는 선배 시인이나 주간의 부탁을 받고 특정인을 등단시켰다는 발언을 했다. 편집위원은 이 사실이 알려진 다음 날 사과문을 게재했으며 편집위원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미술계도 마찬가지다. 큐레이터가 신진작가들의 전시를 빌미로 각종 권력을 행사한다. 영화계에서는 캐스팅을 두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판사 편집자는 “성추행을 예술가의 자유로움으로 포장해서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는 문화가 만연하다. 방법이 없다고 본다”고 했다. 예술이라는 이름을 권력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문화계 내 성폭력 이슈는 SNS를 토대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작가회의와 한국시인협회는 지금 제기되는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지면 제명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강력하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편 여성주의 ‘페미위키’ 사이트는 피해자의 다양한 증언을 수집해서 성폭력 공론화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과별로 여성혐오 아카이빙 계정이 생겼고, 격월간 독립문예잡지 <더멀리>는 문단에서 벌어진 여성혐오 및 폭력 사례 등을 모아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성추문 논란에 얽힌 작가들은 책 출간이나 강연 등이 보류되고 있다. KBS의 책 프로그램 <서가식당>은 방영 예정이던 박범신 작가의 <소금> 편을 무기한 보류했으며, 문학과지성사가 설립한 ‘문지문화원 사이’는 이준규 시인의 강좌를 폐강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폭로가 있으면 이미지 실추 등 개인적인 피해가 생기긴 하지만 법적인 처벌 시스템이 갖춰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바랄 수 있는 것은 자성을 촉구하는 꾸준한 목소리다. 부끄럽고 참담한 사건을 계기로 문화예술인들이 스스로 성찰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적극적으로 제명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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