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생로병사] 쌍둥이 삶에도 '피보다 진한 물' 있더라

    입력 : 2016.11.23 03:09

    쌍둥이에게도 후성 유전체
    타고난 DNA 사용방식에 따라 유전자 발현이 바뀔 수 있어
    '노는 물'이 '받은 피'보다 진하니 후성 유전자의 환경에 따라 우리 삶은 정해지는 것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의학 연구 대상으로 쌍둥이가 자주 등장한다. 두 사람의 유전적 요인이 같은 상태에서 생활환경이나 직업, 습관에 따라 질병 발생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보기 위함이다. 유전자 조건이 동일하기에, 환경 영향 평가 연구에 제격이다. 한 개의 수정란에서 분할된 일란성 쌍둥이는 복제된 상태와 다름없다. 유전자가 거의 100% 일치한다. 그렇다고 손가락 지문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불우한 얘기지만, 쌍둥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각기 다른 집으로 입양되어 갔으면 이보다 좋은 연구 모델이 없다. 이 때문에 입양된 쌍둥이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회들도 있다. 최근에는 쌍둥이 연구 공간이 확장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일란성 쌍둥이 한 명을 우주로 보내서 1년간 지내게 한 후, 지구에 남은 쌍둥이와 비교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우주의 기운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조사 중이다.

    쌍둥이 연구로 가장 유명한 곳은 미네소타대학이다. 1979년부터 빼다박은 형제·자매가 대규모로 등록돼 비교 관찰이 이뤄졌다. 지금까지 쌍둥이 2000쌍을 대상으로 같음과 다름을 지켜보고 있다. 그중 한 쌍의 형제 스토리가 이채롭다. 루이스와 스프링거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다. 둘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각기 다른 집으로 입양돼 헤어졌다. 그러다 39세인 1979년에 다시 만났다. 둘은 얼굴만큼이나 생활도 닮은 점이 아주 많았다. 긴장성 두통을 앓고 있었고,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도 공유했다. 동일 브랜드의 맥주를 즐겨 마셨고, 둘 다 맨솔 향의 담배를 피웠다. 심지어 같은 모델 자동차를 몰았고, 보안관이라는 직업도 일치했다.

    우연한 일치인가 유전자 때문인가. 의학적 해석은 대부분 유전자 영향 탓으로 봤다. 신경성 질환이나 행동과 성격 장애는 물론 카페인이나 니코틴 흡수·대사 방식도 유전자 특성에서 오기 때문이다. 냄새에 대한 취향도, 게이가 되는 것도 생물학적 유전자 구성에 기인한다. 한 마디로 콩 심은 데 콩 난 결과인 셈이다.

    [김철중의 생로병사] 쌍둥이 삶에도 '피보다 진한 물' 있더라
    /이철원 기자
    이처럼 사람 세상이 팥 심은 데 팥만 나는 방식이면 얼마나 편하고 쉬울까. 그렇지 않은 게 쌍둥이 연구의 반전이다. 우리 몸에는 후성 유전체가 있다. 이는 유전정보를 쥔 몸통 DNA의 변화 없이도 환경에 영향을 받은 변방의 염기서열 변화로도 유전자 발현이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무엇을 먹느냐, 어떤 습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타고난 DNA를 사용하는 방식이 바뀐다는 의미다.

    일란성 쌍둥이 연구로 후성 유전체의 위력이 실증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웨덴 입양-쌍둥이 비만도 장기(長期) 연구다. 어릴 적 다른 곳에서 자란 그룹과 같이 자란 쌍둥이를 대상으로 체질량지수를 추적한 이 연구의 결론은 이렇다. 20세까지는 쌍둥이 간 체질량지수는 동거 여부와 상관없이 거의 같았다. 하지만 45세부터 쌍둥이 간 체질량지수가 차이 나기 시작하더니 나이 들수록 그 간격이 벌어졌다. 같은 유전자라도 뚱보와 홀쭉이로 갈렸다는 얘기다. 어릴 적 같이 살았어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영향보다 본인의 행동이 체질량지수 변화에 더 큰 변수였다. 연구진은 유전자가 눈동자 색깔이나 탈모 속도에는 결정적이지만, 중년 이후의 비만도에는 그렇지 못하다.

    노벨의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스웨덴·덴마크·핀란드 쌍둥이를 대상으로 암 발생 요인을 분석했다. 조사 대상 4만4000여쌍 중 1만400명이 암에 걸렸다. 이때 쌍둥이의 나머지 한 명도 같은 암에 걸릴 확률이 몇 개 암에서 높게 나왔는데, 전립선암은 42%, 대장암은 35%, 유방암은 27% 위험도가 높았다. 유전자가 일치하는 경우에도 상대 쌍둥이가 같은 암에 걸릴 확률은 절반이 넘지 않았다. 쌍둥이가 아닌 일반 형제·자매라면 그 영향이 한참 낮아질 것이다. 이 밖에 통증 민감도, 수면 시간, 피부 탄력, 흡연·금연 여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쌍둥이 간에 차이가 난다는 연구가 나오고, 이는 나이 들수록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인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 39년 만에 다시 만난 짐과 루이스 쌍둥이는 이후 125㎞ 떨어진 곳에 살며 몇 달에 한 번씩 만났다. 그러다 46세와 60세에 미네소타대 쌍둥이 연구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둘은 해가 갈수록 성격이나 행동, 생체 등의 지표에서 서로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75세쯤에는 겉모습도 쉽게 구별이 됐다. 타고난 기질을 숨길 수 없지만, 결국 우리의 삶은 얼마나 좋은 후성 유전자를 갖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쌍둥이 대상 의학 연구의 결론은 '노는 물이 받은 피보다 더 진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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