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자신이 곧 살해할 남자에게… 범인은 왜 2차 술자리를 제안했나

입력 2016.11.19 03:00 | 수정 2016.12.16 10:07

13년 만에 밝혀진 '의성 뺑소니 청부살인' 추악한 뒷얘기

내 남편을 없애달라
보험금 5000만원 준다며 아내가 살인 청부… 처제는 범행 계획 짜고 내연남의 동창이 실행

토요일 밤에 만난 이유
휴일이나 밤에 사망 땐 보험금 최대 10배 뛰어… 자정 넘길 때까지 술 사주며 시간 끌다 범행

13년 만에 밝혀진 진실
공범이 술자리서 흘린 말 경찰에 제보되며 재수사… 13년 만에 불려온 처제, 공범과 연락하다 덜미

13년 전인 2003년 2월 경북 의성의 한적한 시골길에서 50대 남성이 차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뺑소니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결국 공소시효가 끝나 미제(未濟) 사건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 5월 이 모든 일이 남편을 죽이려고 아내가 치밀하게 준비했던 살인 사건임을 밝혀냈다.

지난 11일 대구지방법원 형사11부는 남편을 청부 살해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한 아내 박모(65)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박씨 부탁을 받고 범행에 가담한 여동생(52)과 그의 전 내연남 최모(57)씨, 최씨 동창 이모(56)씨 등 3명에게도 각각 징역 12년, 10년, 15년이 선고됐다.

영락없는 뺑소니 사고 현장

일요일이던 지난 2003년 2월 23일 오전 8시쯤 경북 의성군 다인면 마을 진입로 한가운데서 김모(당시 54세)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충격으로 깨지면서 멈춘 김씨 손목시계는 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씨 주머니에 있던 비닐봉지에는 먹다 남은 생선회 몇 점이 들어 있었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전형적인 뺑소니 사고로 봤다. 시신이 발견된 도로는 오르막이 계속되다가 갑자기 내리막으로 이어진 곳이었다. 한밤중 운전자가 도로 한가운데 있는 사람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치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현장에는 운전자가 급정거하면서 생긴 스키드 마크(타이어 흔적)가 있었다. 경찰은 오르막에서 속도를 높인 차량이 내리막길에 있던 김씨를 발견하고 황급히 제동을 걸었으나 치어 숨지게 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고의 살인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차량 수배에 나섰다.

하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한적한 시골길이라 CCTV나 목격자가 없었다. 도로 한가운데 있던 김씨가 사고 6시간여 만에 발견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마을 어귀와 이어지는 큰 도로 5~7㎞ 구간에도 CCTV가 없었다. 도로 가까운 곳에 사는 주민 한 명이 유일한 목격자였지만 그는 "새벽에 '쾅' 하는 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흰색 차가 후진하고 있었다"고만 말했다. 현장에선 차량 파편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김씨가 그 자리에서 바로 숨진 점과 타이어 흔적을 볼 때 화물차에 치였다고 보고 의성으로 들어오는 화물차 수백 대를 검문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김씨 아내는 경찰에서 "남편이 술을 좋아했고 취한 날은 마을 어귀에서 걸어 들어오곤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가 사고 직전 들른 식당을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의성 일대에 교통사고 목격자를 찾는 플래카드를 수개월간 붙여뒀지만 아무런 제보도 없었고 사건은 잊혀갔다. 지난 2013년 이 사건은 뺑소니 사망 사고 공소시효인 10년이 지나 종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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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기자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 사건

아내 박씨에 따르면 남편 김씨는 1998년부터 아내의 불륜을 의심해왔다. 아내 박씨는 2002년쯤부터 하루에 몇 번씩 여동생에게 전화해 남편을 죽여달라고 하소연했다. 무속인인 여동생은 당시 동거하던 내연남 최씨와 함께 형부를 죽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기다리다 못한 박씨가 "남편을 죽여주면 보험금 5000만원을 주겠다"고 하자 여동생은 언니 박씨가 2000년 10월 들어둔 보험금 액수를 확인했다. 또 휴일이나 야간에 교통사고를 당하면 보험금이 최대 10배까지 지급되는 조항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여동생은 형부를 죽이기 위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내연남 최씨는 친구 이씨를 섭외했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던 이씨는 "5000만원을 주겠다"는 말에 자신의 1t 트럭을 범행 도구로 쓰기로 했다. 여동생과 최씨가 범행 계획을 짜서 이씨에게 전달하고 아내 박씨에게도 알려줬다.

이들은 통화를 삼가고 주로 여동생 박씨 집에 모여 계획을 짰다. 아내 박씨는 남편이 술을 마시면 마을 입구에서 내려 걸어 들어온다는 사실을 일러줬다. 범행 현장을 답사해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사고를 낼지 논의했다. 사건 일주일 전, 이들은 김씨를 차로 친 뒤 도주할 근처 낚시터도 알아봤다. 이씨는 남편 김씨와 안면을 트기 위해 당시 김씨가 운영하던 과수원에 찾아가 "농사를 배우고 싶은데 가르쳐달라"며 접근했다.

사건 하루 전, 이씨는 "지난번에 가르쳐줘서 감사했다. 술을 사고 싶다"며 김씨를 꾀었다. 함께 있던 아내는 자리를 비켜준다며 친척 모임에 갔다. 이씨는 김씨를 데리고 자동차로 30분이나 떨어진 경북 칠곡에서 회를 곁들여 술을 마셨다. 밤늦게 횟집을 나서며 이씨는 2차를 제안했다. 자정을 넘겨 일요일이 돼야 보험금이 더 커지기 때문이었다.

2차까지 마신 뒤 거나하게 취한 김씨는 이씨 차를 얻어 탔다. 이씨는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김씨를 내려줬고, 잠시 후 마을로 걸어 들어가는 김씨를 뒤에서 트럭으로 들이받았다. 이씨는 그 즉시 5㎞ 떨어진 저수지에서 낚시꾼으로 가장한 채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 최씨는 아침 일찍 이씨가 숨어 있던 저수지로 오면서 검문소가 없는 도로를 파악했고 두 사람은 각자의 차를 몰고 그 길로 도주했다.

김씨가 숨진 몇 개월 뒤 박씨에게 보험금 5억여원이 지급됐다. 박씨는 딸 명의 계좌에 이 돈을 넣어놓고 10개월에 걸쳐 야금야금 인출해 살인에 가담한 자들에게 현금으로 '몫'을 배분해줬다. 경찰은 단순 뺑소니 사망 사고로 보고 아내를 더 이상 수사하지 않았다.

13년 만에 다시 가게 된 경찰서

작년 11월 금융감독원에 "13년 전 의성 교통사고는 가족들이 보험금을 노리고 한 짓"이라는 제보가 접수됐다. 공범 중 한 사람이 술자리에서 한 말을 어렴풋이 기억한 누군가가 보험 사기라고 제보한 것이다. 제보자는 "그 얘기를 들은 지 5년이 지났다"고 했다. 제보 내용에 구체적 단서는 없었으나 보험 사기를 의심한 금감원은 경찰에 신고했다.

경북경찰청 장기미제사건팀 최명호 경위는 13년 전 의성에서 실제로 뺑소니 사망 사건이 있었는지 뒤져봤다. 사건 장소와 시기가 일치하는 듯한 미제 뺑소니 사건 하나가 있었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은 이미 고인이 된 뒤였다. 최 경위는 검찰에서 폐기 직전인 사건 기록을 겨우 얻어냈다.

수사팀은 이 사건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기로 했다. '뺑소니로 위장한 살인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러나 수사는 6개월이 지나도록 진척되지 않았다. 김씨 아내 박씨가 받은 보험금 총 5억2000만원은 딸 이름으로 개설된 통장에서 관리되고 있었다. 한 번에 몇백만원씩 인출한 흔적은 있었지만 이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묘연했다.

보험금을 노렸다고 의심하기에는 불충분한 점도 많았다. 박씨가 김씨 앞으로 보험 두 개를 가입한 것은 사망 사고 3년 전이었다. 불입액도 많지 않았다. 하나는 보험료가 월 1만원대, 다른 것은 월 6만원대의 보험 상품이었다. 게다가 보험금 수령자인 박씨는 사건 당시 친척 모임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박씨 여동생이 보험설계사로 일한 경험이 있어 의심해 봤지만 그는 운전면허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경찰 내부에서 "여러 정황상 제보가 잘못된 것 같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가족들에 대한 직접 심문을 하지 않아온 수사팀은 마지막으로 박씨 여동생에게 '한 수'를 던져보기로 했다. 그녀를 13년 만에 경찰서로 불러 이 사건에 대해 물으면 그녀가 경찰서를 나가 분명히 공범에게 연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찰이 여동생에게 "뺑소니 사건과 관련해 물어볼 것이 있다"며 경찰서로 나와달라고 하자 마음 놓고 살던 네 사람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조사를 받은 여동생은 경찰서를 나서자마자 헤어진 내연남 최씨에게 연락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경찰은 여동생과 계좌 거래 내역이 있던 최씨가 공범일 수 있다고 추리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최씨가 직접 트럭을 운전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최씨는 경찰에서 "김씨를 죽인 트럭은 동창인 이씨가 운전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이 생각지도 못했던 살인범 이씨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경찰은 이씨를 추궁해 사건 직전 칠곡에 있는 횟집에서 술을 마신 사실도 알아냈다. 숨진 김씨 주머니에서 발견됐던 생선회 몇 점의 비밀도 풀렸다.

공범 세 명의 말들을 맞추자 마치 퍼즐 조각처럼 사건이 완성됐고, 이 모든 일의 발단은 김씨 아내임이 드러났다. 공범 중 가장 마지막에 소환된 아내는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했다. 수사팀 강병구 팀장은 "범행이 벌어진 곳이 전형적인 교통사고 현장이라 오히려 사고 직후에 이씨가 잡혔다면 뺑소니 사건으로 처리됐을 수도 있다"며 "완전히 미궁에 빠질 뻔했던 살인 사건이 주변의 제보와 수사관들 의지로 해결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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