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줄줄 샌 문화 예산

    입력 : 2016.11.15 03:07

    손진석 경제부 기자
    손진석 경제부 기자
    오래전 해양수산부 간부가 했던 말이 뇌리에 남아 있다. "우리처럼 지방과 산하기관까지 두루 잘 갖춘 부처가 없지요." 공무원의 말치고는 호기로웠다. 속뜻은 세월호 사고 이후 알 수 있었다.

    해수부에는 '청장님' 출신이 수두룩하다. 국장·과장 중 상당수가 지방해양항만청장으로 부임해 기관장의 단맛을 경험하고 돌아온다. 산하 공공 기관장을 해수부 고위 관료 출신이 독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하위직도 오랜 기간 '낙하산'이 가능했다. 지방해양항만청 과장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해수부 산하기관 이사장으로 재취업하는가 하면, 6급 주사가 항만 개발 회사 전무로 이직한 사례가 흔했다. 다른 부처에서는 "해수부가 이렇게 알짜배기인 줄 몰랐다"는 탄식이 나왔다. 해수부는 정부 안에서 비중이 크지 않다. 세월호 사고로 관피아 논란이 불거지고 나서야 그들이 '작은 리그'를 구축했던 실태가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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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400억 문화창조센터'… 7000억 대형사업으로 커져. /조선일보 DB
    최순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사리사욕에 동원된 문화 예산도 마찬가지다.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인(私人)의 의지가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다. 정부가 벌이는 문화사업은 굵어 봐야 수백억원짜리다. 400조원의 나라 살림을 짜는 기획재정부 공무원들 표현으로는 "자질구레한 사업들"이다. 내년 문화 예산 7조1000억원은 전체의 1.77%에 그친다. 130조원에 이르는 복지 예산 중 하나의 사업인 기초연금 지급액(8조원)보다 적다.

    문화 예산은 전체 규모가 작지만 세부 사업은 300개가 넘다 보니 하나씩 깊게 들여다보기 어렵다. 대충 예산을 신청해도 기획재정부 예산실과 국회에서 술술 통과됐다. 그러는 사이 돈이 줄줄 샜다. 얼마나 엉터리인지 보자. 차은택씨가 추진해 논란을 빚은 문화박스쿨(컨테이너형 문화 공간)을 해외에 하나 설치하겠다며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 예산에 5억원을 요구했다. 그런데 어느 나라에 만들겠다는 것인지조차 설명이 없다. 5억원 중 1억원을 운영에 쓰겠다며 해외 출장용 비행기 삯을 신청했는데 누가 어디에 간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문체부가 2억원을 쓰겠다고 한 '국빈 행사 계기 한식 및 전통문화 홍보'라는 사업은 더 가관이다. 그중 5000만원은 국빈을 대접하는 식사의 한식 메뉴 개발에 쓴다고 했는데, 돈을 받아다 누가 어떻게 집행한다는 설명이 한 줄도 없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예산을 신청하지만 액수가 '미미한' 문화 예산을 기재부는 "시시하다"며 적당히 심사했다. 국회도 적당히 통과시켜줬다.

    상처는 눈에 잘 안 띄는 사각지대에서 곪기 시작한다. '해수부 마피아'들이 남몰래 인사와 이권을 서로 밀어주며 안전을 뒷전으로 내팽개친 사이 세월호가 침몰했다. 문화 예산 역시 정부 예산안 중 구석에 박혀 있는지라 최순실 일당이 자신들의 이권에 동원하기 쉬웠다. 나라 살림을 맡다 보면 문화 예산이 시답잖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억원도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엄청나게 큰돈이다. 모두 피 같은 세금에서 나온 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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