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로 결심했던 날, 신춘문예 당선됐죠"

    입력 : 2016.11.14 03:33

    ['모두가 부서진' 펴낸 소설가 조수경]
    "관심사, 늘 어둡고 허물어진 쪽" 9년간 심야 라디오 작가 해와

    죄와 사랑. 사랑과 죄. 순서를 바꿔봐도 파멸을 피할 수 없다. "제 관심사는 늘 어둡고 허물어진 쪽이에요. '우울'이란 단어를 모르던 아기 때부터 그랬어요. 그런 인간들만 눈에 들어와요." 첫 단편집 '모두가 부서진'(문학과지성사 刊)을 펴낸 소설가 조수경(36)씨가 말했다.

    제목처럼 등장인물은 모두 부서져 있다. "사소한 균열이 점차 뚜렷한 붕괴가 되고 이내 걷잡을 수 없이 일상을 망가뜨린다"는 문학평론가 김형중의 평이 보여주듯, 2013년 등단작 '젤리피시' 속 분절된 신체로 가득한 성인용품점과 거기서 일하는 하반신 장애 여성의 욕구불만, '오아시스' 속 약에 취해 날카로운 것으로 자해하는 여성의 정신착란 같은 것이다. 붕괴된 인간에겐 공감각마저 피학적이다. '쇠가 잘리는 소리는 비명 같았다. 그것이 쇠붙이에서 피맛이 느껴지는 이유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 7일 서울 조선일보사 앞을 찾은 소설가 조수경씨. “내 소설은 어둡지만,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 대개 환한 대낮에 쓴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서울 조선일보사 앞을 찾은 소설가 조수경씨. “내 소설은 어둡지만,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 대개 환한 대낮에 쓴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조씨는 2006년부터 10년 동안 SBS 라디오 작가로 일하고 있다. 첫 1년을 제외하면 쭉 심야 라디오만 하고 있다. 심야의 사연은 그의 그늘을 깊게 한다. "힘들게 사는 청취자가 많아요. 병원 환자, 대리운전사, 육아에 지친 엄마들…." 2주 전에도 한 사연이 그를 쓸쓸하게 했다. "화물트럭 운전사인데, 매일 치매 노모를 옆에 태우고 다닌대요. 잃어버릴까봐. 그 삶이 얼마나 고단할까요."

    소설 속 일관적인 어둠은 주변의 걱정을 사기도 한다. "아빠가 '좀 밝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대답했죠. 한강 '채식주의자' 한번 보세요. 이건 양반이에요."

    지옥에 가까운 현실이지만, 현실에 기반한 지옥이다. 테마파크에서 좀비 분장을 하고 인간을 사냥하는 아르바이트생을 그린 '할로윈―런, 런, 런'은 대통령의 훈시 말씀 "혼(魂)이 비정상"에서 착안한 것이고, 머저리 취급을 받는 약골 남성이 노인·소녀 등을 지하실에 감금해 괴롭히는 단편 '사슬' 역시 경험에 상상을 입힌 것이다. "지하철에서 거구의 깡패가 한 남성을 두들겨 패는 장면을 봤어요. 맞고 있는 저 남자가 어딘가에선 강자로 군림하고 있진 않을까? 그런 먹이사슬을 떠올렸죠."

    모두가 사랑을 갈구하지만, 반성 없는 사랑 때문에 저주받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의 불륜을 그린 '마르첼리노, 마리안느'에 이르러 그 메시지는 확연해진다. 헤어진 내연남의 딸을 찾아가 그 앞에서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여자가 남긴 말. '이 모든 게… 사랑 때문이란다.' 그 역시 사랑을 잃고 자해하듯 살던 적이 있었다. 2012년, 애인이 암 선고 4개월 만에 세상을 떴다. 괴로워 술을 마셨고, 매일 밤 거의 기어서 귀가했다. 번개탄을 피워 죽을 결심까지 했던 날, 신춘문예 당선 전화를 받았다. 조씨는 "소설이 나를 살렸다"고 말했다.

    소설이 여전히 그를 살게 한다. "인간이 인간을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내용의 장편을 써보려 해요. 제 방향은 계속 인간의 어두운 쪽일 것 같네요." 심야 라디오 생방송이 있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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