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만 된다면 '흙수저 행세'까지…

입력 2016.11.12 03:00

취준생 83% "자기소개서에 거짓 내용 쓴 적 있어"
해외여행 경험 등 스펙 맞교환… 자기소개서 대필 업체 이용도

취업준비생 자기소개서에 거짓말 얼마나 쓰나?
취업 준비생 박모(27)씨는 지난 7일 친구 서모(27)씨를 만나 '인도 여행 경험담'을 상세히 들었다. 여행하며 보고 들은 것은 물론 일정과 경로, 식단까지 자세히 기록한 여행기(記)도 넘겨받았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서씨로부터 보충 설명을 들었다. 이처럼 과외를 받듯 '인도 강의'를 들은 이유는 박씨가 작성 중인 대기업 자기소개서 때문이다. 이 자기소개서에는 '글로벌 감각을 보여줄 수 있는 경험을 서술하라'는 문항이 있는데, 박씨는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경험이 없어서 쓸 말이 없었다. 결국 박씨는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의 경험을 마치 직접 겪은 것처럼 꾸며 자기소개서에 쓴 것이다.

대신 박씨는 물류 회사 취업을 원하는 서씨에게 자신의 택배 회사 아르바이트 경험을 상세히 설명해줬다. 취업에 필요한 '스펙(spec·자격 요건)'을 맞교환한 것이다. 박씨와 서씨는 "자기소개서를 대충 꾸며서 쓸 수도 있지만, 혹시 면접 때 깊이 있는 질문이 나오면 곤란해질 수 있다"며 "직접 겪은 것처럼 자세히 알아두기 위해 스펙 맞교환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펙 맞교환 같은 편법을 동원해 자기소개서를 꾸미는 취업 준비생이 늘고 있다. 양심에 반하는 행동이지만, 까다로운 취업문을 뚫고 취업 가능성을 1%라도 높이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취업 준비생들은 말한다.

취업만 된다면 '흙수저 행세'까지…
가장 대표적인 수법은 일명 '자기소개서 복붙(복사+붙여넣기)'이다. 남이 잘 써놓은 자기소개서를 베껴서 자기 것처럼 만드는 것이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조모(26)씨는 지난해 대기업에 취직한 선배가 썼던 자기소개서를 넘겨받아 주요 내용을 옮겨 적었다.

돈을 주고 자기소개서 대필(代筆) 업체를 이용하기도 한다. 지난달 한 중소기업에 지원한 김모(여·28)씨는 "대필 업체에 10만원 주고 자기소개서 작성을 부탁했다"며 "내 스펙이 남들보다 그리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자기소개서라도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전문가에게 맡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꼼수'를 동원한 자기소개서가 많다 보니 산업은행 등 일부 기업은 아예 손으로 쓴 자기소개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비교적 넉넉하게 자라 고생을 안 해본 구직자가 '흙수저' 행세를 하는 경우도 있다. 김모(25)씨는 지난 9월 한 공기업 자기소개서에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 시절 내내 과외로 생활비를 벌었고,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고 적었다. 그러나 김씨는 대학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아 썼다. 김씨는 "고생 안 했다고 솔직하게 적으면 '금수저'나 '온실 속의 화초'라는 부정적인 인상을 줄까 봐 일부러 역경을 딛고 일어선 강인한 사람으로 비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조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취업 준비생 66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82.9%가 자기소개서에 거짓 내용을 쓴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절반 가까운 46.6%가 죄책감을 별로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죄책감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는 응답도 13.1%였다.

그러나 기업들은 "취업 준비생들이 양심까지 버려가며 자기소개서를 윤색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자기소개서의 진위를 확인해서 과장이나 거짓말이 발견되면 감점을 준다"고 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입사원을 뽑는데 글로벌 감각이나 큰 위기를 극복해낸 경험 등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람만 써낼 수 있는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기업들도 문제"라며 "구직자들의 스펙보다는 입사 후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채용 관행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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