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보기> 옹고집이 '미슐랭 별 넷' 따냈다

    입력 : 2016.11.08 15:30 | 수정 : 2016.11.08 16:28

    “미쉐린 가이드가 뭐야?”
    “세계 최고의 맛집들이라는데…”
    그런데 이렇게 풀이하면 뭔가 이상하다. 7일 발표된 ‘미쉐린 서울’ 식당을 보면 별 하나를 받은 게장집이야말로 밥 두, 세그릇을 뚝딱 비우게 만드는 식당이고, 앞서 발표된 저가 식당 리스트에 냉면, 곰탕 등 맛있는 식당이 더 많다.

    특히 별 셋을 받았다는 신라호텔 한식당 ‘라연’, 도자기 회사 광주요가 운영하는 ‘가온’에 대해 말이 많다. 20만원 내외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 전통 한식이 아니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 음식 좀 먹는다는 돈 있는 사람들도 “비싸고 먹을 게 없다”는 혹평을 내놓기도 한다. 그렇다면 프랑스 기업 ‘미쉐린’은 왜 이 두 식당을 ‘별 셋’ 레스토랑으로 선정했을까.

    먼저, 요즘 세계 미식계가 주목하는 ‘요리 철학’을 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자기 땅에서 나는 재료에 대한 신경증적인 집착, 전통 요리법에 대한 광적인 숭배, 탐욕에 가까울 정도의 탐미적 태도 등이다. 이 중 어느 하나만 뛰어나도, 세계 미식계가 엄지를 내민다.

    한식당 가온의 홈페이지 음식 사진.


    라연과 가온, 두 ‘별 셋’ 레스토랑에는 공통점이 있다. 라연은 신라호텔이라는 든든한 배경에서 출발한다. 당연히 최고결정권자인 이부진 사장이 적자를 감수하지 않았다면 존재하기 어려웠다. ‘가온(별 셋)’, 그리고 별 한 개를 받은 이태원의 ‘비채나’는 조태권 광주요 회장의 ‘고집’ 그 자체다.

    조태권 회장에게 “한국에는 세계에 자랑할 것이 휴대폰도 있고, 반도체도 있는데 왜 그리 한식에만 매달려야 하는가”라고 물으려면, 그에게 두어 시간은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한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그저 배부르려고 밥먹는 시대는 지났다’ ‘한식의 고급화없이 미래는 없다’ ‘음식에서 그릇이 차지하는 비중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옹고집, 철학, 외골수, 확신, 정신병, 뭐라 이름을 붙이건 그 에너지가 대단하다.

    고집에 그는 적잖이 투자했다. 나파밸리에서 자비 수억원을 들여 한식을 홍보했고, 한식고급화를 기치로 내건 옛 ‘가온’을 매우 고급스럽게 꾸몄다. 이 식당에서는 10만원 삼계탕, 30만원짜리 홍게탕을 팔았다. 음식값은 비쌌지만 식재료도 그만큼 비싼 것이었다. 그러나 한 번 먹은 사람은 “그 돈 주고 갈 곳이 못 된다’고 했다. ‘싸고 배부른 음식’을 먹으려는 사람들과, ‘그릇, 식재료, 식당의 인테리어를 총체적으로 느끼는 것이 식사의 완성’이라고 믿는 싸움에서 그는 패했다. 돈 깨지는 것보다 ‘당신의 방식은 안된다’는 게 더 자존심 상했을 것이다.

    결국 폐업했다가 지난해 강남 호림아트센터에 ‘가온’을 다시 열었다. 한국 전통술을 고급화한 ‘화요’는 만든 지 10년째인 지난해 처음으로 ‘적자’를 면했다. 가온이 음식값이 비싸다해도, 아직 이익을 못내고 있다. 투자한 게 워낙 많기 때문이다.


    왼쪽 사진은 조태권 광주요 회장. 오른쪽 사진은 미슐렝 가이드로부터 '별 셋' 인증을 받는 장면으로 사진 속 맨 왼쪽이 김병진 가온 셰프.


    지난해 그의 ‘가온’을 둘러싼 평가는 그다지 우호적이 아니었다. 사람이 잘난 척해도 봐줄까 말까하는데, 식당이 잘난 척이라니!
    하지만 과거 ‘가온’과는 달라진 게 있었다. 한식의 미덕이 부각되면서, 외국인들의 호평이 줄을 이었다. 국내에도 ‘한식 미식’에 과감히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식사’를 배를 불리는 행위가 아니라, ‘기억에 남는 총체적 문화행위’로 해석을 바꾼다면 그의 식당은 분명 이런 요구에 합당한 식당이다.

    여의도 전경련 빌딩에 있는 이정국의 ‘곳간’, 압구정동 ‘권숙수’도 ‘가온’ 못지 않은 고집쟁이 주인들이 꿰어차고 앉았다. 두 식당 모두 별 두 개를 받았다.

    싸고 푸짐한 ‘가성비(가격대비 성능)’를 중시하는 이들에게 이런 식당은 ‘허영의 식당’일 뿐이다. 그러나 미쉐린 서울판은 유독 ‘고집스런 주인’의 손을 들어줬다. 우리의 입맛이 ‘배신’당한 게 아니다. 우리의 입맛도 옳고, 그들의 선택도 오류가 아니다.

    6000원 칼국수와 25만원 한식, 둘 다 우리 식문화 자산. 온통 ‘가성비’에 기울어진 식당 기준이 새 ‘균형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고집쟁이’들의 노력이 주목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선정은 나쁘지 않다. 미쉐린서울의 최고 승자는 두 식당을 합쳐 별 넷을 받은 조태권 회장인 것은 보다 분명하고 말이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