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톡톡] 비석은 옷걸이, 돌무덤은 식판… 공동묘지에 사는 200만 카이로 시민들

    입력 : 2016.11.05 03:00

    이집트 도시 개발로 집값 폭등… 수도 인구 10%가 묘지서 생활
    不法이지만 정부도 사실상 묵인… 범죄자들 은신처로 악용되기도

    3일(현지 시각) 새벽 이집트 수도 카이로 동부의 알 아라파 공동묘지. 직사각형의 돌무덤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났다. 잠옷을 벗고 비석에 걸어놓은 외출복을 가져다 입었다. 한 가족은 무덤을 식탁 삼아 빵과 '풀(현지식 콩죽)'로 아침 식사를 했다. 두 자녀를 둔 아버지인 오마르 파우지는 "3년 전 알 아라파로 이사 왔다. 집세 걱정 없이 살 수 있는데, 땅 아래 묻힌 시신이 무슨 문제냐"고 했다.

    한 여성이 무덤 사이를 가로질러 자신의 거처로 가는 모습.
    한 여성이 무덤 사이를 가로질러 자신의 거처로 가는 모습. 이곳에는 200만명이 살아‘무덤 도시’라고 불린다. /노석조 특파원
    알 아라파의 면적은 36㎢, 거주민은 약 200만명이다. 카이로 전체 인구 2000여만명의 10%가 무덤에서 '죽은 자'와 같이 사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알 아라파는 '무덤 도시'로 불린다.

    '무덤 도시'엔 상·하수도 시설이 없어 주민들은 무덤 한쪽에 세워둔 대형 물통에서 물을 길어 세수하고 찻잔을 씻었다. 주민 아이샤는 "일주일에 한 번씩 물탱크차를 불러 드럼통에 물을 채우고, 식수는 근처 이슬람 사원에 가서 떠온다"고 했다.

    집 모양은 제각각이었다. 장대를 세우고 비닐을 덮은 집, 서너 평 크기의 나무 판잣집 등이 보였다. 일반 주택과 다를 것 없는 벽돌집도 있었다. 원래 무덤 관리를 위해 유족이 지어놓은 건물인데, 양해를 구하고 입주해 집으로 꾸몄다고 한다. 벽돌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중앙에 돌무덤이 있고, 주위에 소파·탁자 등 살림살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취사는 휴대용 가스버너를 이용했다.

    화장실은 따로 없어 정부가 공동묘지 곳곳에 설치한 공공 화장실을 이용한다. 공동묘지 내 거주는 불법이지만, 거주민이 워낙 많아 이집트 정부도 사실상 용인하고 있다.

    날이 밝아오자, 알 아라파 주민은 묘지 밖 큰길로 나가 버스를 타고 일터로 향했다. 인근에 있는 한 찻집 주인은 "주민 대부분 아침 일찍 시내에 나가 일용직 건설 노동자 등으로 일하고 저녁에 묘지로 돌아온다"면서 "언젠가는 나일 강이 보이는 집 한 채 장만할 꿈을 갖고 산다"고 했다.

    '무덤 도시'는 기독교 개종자·난민의 피난처 역할도 한다. 이집트에서 개종자는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손에 살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개종자들은 이를 피해 이웃 간 간섭이 적고 경찰 등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알 아라파로 들어온다. 수배 중인 범죄자의 은신처나 마약 거래 장소로 악용되는 일도 잦다.

    알 아라파의 무덤들은 기독교 국가였던 이집트가 7세기 이슬람 제국의 속국이 되면서 만들어졌다. 이슬람 제국의 이집트 총독이었던 아므르 이븐 알 아스는 카이로 동부의 돌산 기슭인 이곳에 가족 묘지를 만들었다. 그를 따라 후대 총독들과 지배 관료들도 이곳을 묘지로 삼았고, 18세기엔 일반인 무덤도 들어와 공동묘지가 됐다. 알 아라파가 주거지로 변한 건 1950년대다. 개발 과정에서 도시에서 밀려난 서민들이 도심에서 멀지 않고 집세 부담이 없는 이곳을 생활 터전으로 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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