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조선일보
  • 이하원 논설위원
    입력 2016.11.05 03:05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불가능했다. 재임 중 가장 괴롭고 고독한 시간들이었다. 집무를 하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온갖 번민과 회한으로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차남 현철씨가 알선 수재 혐의 등으로 구속되기 직전 심경을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현철이의 등을 떠밀어서라도 진작 해외에 내보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일기도 했다"는 표현도 있다. YS는 이 시기 청와대를 감옥(監獄)에 비유해 하루라도 빨리 임기를 마치고 싶어 했다고 한다. "대체 대통령을 왜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YS로부터 직접 들은 이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임기 말에 두 아들이 구속될 때 상황은 그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우리 내외는 말을 잃었다. 각자의 서재에서 따로 시간을 보내다 늦은 밤에야 안방으로 갔다. 남편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하루속히 청와대에서 나가고 싶었다." 이 여사는 월간지 인터뷰에서 "2002년은 악몽"이라고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2년 형 이상득씨가 구속되자 고개 숙여 사과했다. "억장이 무너져내리고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며 "이제 와서 누굴 탓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제 불찰"이라고 했다. 

    [만물상]
    ▶헌정 사상 처음 국회에서 탄핵을 받는 등 곡절이 많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더 후회했다. 그는 2009년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리기 두 달 전 쓴 글에서 "정치, 하지 마라"고 했다.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여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되려고 한 것이 오류였던 것 같다"는 기록도 남겼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에 대해 두 번째 사과하면서 회한(悔恨)을 드러냈다. "밤잠을 못 이룬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5명이 하나같이 대통령 된 걸 후회하는 것을 보며 그들을 뽑은 국민들은 더 괴롭다.

    ▶정치 전문가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지적한다. 대통령의 제왕적 힘이 친인척·측근의 호가호위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결국 대통령 본인들에게 책임이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그렇다. 그는 이런 비리를 막기 위해 만든 특별감찰관이 최순실에 대해 조사하려 하자 즉각 이를 무력화해 버렸다. 시스템이 아니라 대통령 의지와 주변 관리 문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많은 잠룡들이 자신만은 예외라고 믿고 '미르(용)'가 되기 위해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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