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최순실(60)씨가 좌지우지했다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가장 많은 돈을 낸 기업이다. 삼성 계열사들은 대기업 53개사가 낸 774억원 출연금의 26%가 넘는 204억원을 내놓았다. 삼성은 두 재단을 둘러싸고 청와대가 강제 모금을 했다는 의혹이 처음 제기된 7월 말 이후 지금까지 줄곧 204억원 이외에는 최씨 측과 관련된 돈을 지출한 일이 없다고 해왔다.
◇정유라 한 사람에게 35억원 지원
그런데 삼성전자는 작년 9~10월 최순실·정유라 모녀 소유의 스포츠 컨설팅 회사인 코레(Core)스포츠와 명마(名馬) 구입 및 관리, 말 이동을 위한 특수차량 대여, 현지 대회 참가 지원 등을 위한 10개월짜리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컨설팅 비용은 280만유로였다. 2020년 도쿄올림픽 승마 유망주를 육성하는 사업에 지원했다는 게 삼성 측의 설명이다. 이 돈 가운데 10억원 넘는 돈이 그랑프리 대회 우승마(馬) '비타나V'를 사는 데 들어갔다. 그러나 이 말을 타고 독일에서 훈련한 유망주는 단 한 명. 최씨의 딸 정유라(20)씨뿐이었다. 35억원이라는 거액이 사실상 정씨 한 사람을 위해 지원된 것이다.
지난 7월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의혹이 불거졌을 때 정씨의 명마 구입 문제가 의혹으로 떠올랐다. 지난 2월 독일의 승마 잡지가 '도쿄올림픽을 준비 중인 한국의 삼성 승마팀이 10억원에 달하는 명마를 구입해 정유라를 지원하고 있다'고 보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삼성은 당시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그러나 1일 본지에는 "승마협회 회장사(社)여서 유망주 육성을 위해 지원하게 됐다"고 했다. 논란이 일자 삼성 측은 지난 8월 이 말을 판 것으로 알려졌다.
코레스포츠는 최씨 모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작년 11월에는 비덱(Widec)스포츠로 이름을 바꿨지만 주인은 그대로다. 비덱스포츠의 대표이자 유일한 직원은 정유라씨의 승마코치다. 업계에선 코레스포츠나 비덱스포츠는 '스포츠 컨설팅' 경험이 전무한 사실상의 서류상 회사라는 말이 나온다. 삼성 같은 대기업이 280만유로나 되는 큰돈을 보내면서 회사의 성격 등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데다 승마협회를 거치지 않고 컨설팅업체에 바로 돈을 보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하지만 삼성 관계자는 "원래 독일 내 승마협회장을 지낸 분이 코레스포츠 대표로 있었기 때문에 컨설팅 업무도 맡기게 된 것"이라고 했다.
◇협력업체가 독일 승마장 샀다는데…
삼성은 정씨를 위해 '승마장을 사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일부 언론은 문구업체인 모나미의 해외 계열사가 지난 5월 230만유로(약 28억원)를 주고 독일 엠스데텐에 있는 루돌프 자일링거 승마장을 사들인 것을 두고 '삼성이 샀는데 모나미가 이름만 내세운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모나미는 2018년 평창올림픽의 주요 후원 기업인 삼성과 99억원대 프린터·사무기기 관리 용역 계약을 맺었다. 이 용역 계약은 모나미의 승마장 매입과 무관치 않고, 삼성이 최순실·정유라씨를 우회 지원한 것이 아니냐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그러나 삼성 측은 "용역 계약으로 모나미가 얻을 수익은 5억~6억원에 불과하고, 모나미와 삼성은 지난 10년간 5000억원가량의 거래 실적이 있다"며 "승마장은 실제로 모나미가 산 것"이라고 말했다.
280만유로의 흐름은 금융 당국도 최근 주시해왔다. 정씨에게 특혜 대출을 한 의혹을 받고 있는 KEB하나은행에 대한 검사(檢査)를 벌이던 금융감독원이 이 돈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당국은 특히 문제의 송금 당시 1개 계좌가 아니라 독일의 K은행 등 여러 은행에 개설된 복수(複數)의 계좌가 사용된 점을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컨설팅 비용이라면 굳이 여러 개 계좌로 받을 필요가 없지 않으냐"고 했다. 금융권에는 이 송금에 관여한 국내 은행들이 '최순실 사태' 이후 송금 문제를 쉬쉬해왔다는 말이 파다하다. 국내 은행 관계자들은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해달라는 본지의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