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심상찮은 시위, 거국내각 조속히 전면에 나서야

조선일보
입력 2016.10.31 03:20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선 시민 1만2000명(경찰 추산)이 참가한 가운데 최순실 국정 농단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좌파 단체들로 구성된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주최했지만 일반 시민 참가자가 더 많은 양상을 보였다. 일반 시민이 대거 참여한 도심 시위는 2008년 이후 8년여 만이다.

많은 시민이 촛불을 들었지만 대다수의 진심은 대통령직이 공백이 되는 최악의 결말은 아닐 것이다. 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국민의 심정도 비슷하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분노해도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바뀌지 않고 이 위기만 넘기려고 한다면 국민 분노는 임계점을 넘을 수 있다. 가장 먼저 박 대통령 자신이 국기 문란의 총책임자라는 명백한 사실과 최태민·최순실 일족(一族)과의 40년 관계 실체를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그러지 않고 검찰의 압수 수색을 거부한 것 같은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계속하면 민심의 성난 파도가 모든 것을 쓸고 갈 수 있다. 위험한 상황이다.

새누리당은 30일 박 대통령에게 '여야가 동의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거국 내각 총리는 야권 출신이거나 야당이 인정하는 인물일 수밖에 없다. 거국 내각은 외교·안보는 대통령이 맡고 내치(內治)는 야권 출신 총리가 맡는 일종의 연립 내각을 내년 대선까지 한시적으로 운용하자는 제안이다.

거국 내각에 대한 박 대통령 생각이 어떤지는 명확하지 않다. 사실상 2선으로 후퇴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라는 기류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통령 주변에서도 엇갈린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이미 독자적으로 수습할 역량과 기반을 잃었다. 거야(巨野)가 반대하면 내각 개편조차 불가능하다. 명망가를 새 총리로 앉혀 포장만 바꾸는 식의 미봉책이 통할 단계도 벌써 지났다. 국민이 가만있지 않는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 "(대통령 권한을) 최순실에게 헌납해온 지가 4년이 넘었는데 이제 와서 그런 오물 위에 (거국 내각) 집이 지어지겠나"라고 거국 내각을 거부할 뜻을 밝혔다. 그간 야당은 당 차원에서 거국 내각을 요구했고 문재인 전 대표 등 야권 주요 대선 주자들도 같은 주장을 했다. 며칠도 안 돼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야당은 지금 '최순실 특검' 협상도 진지하게 하지 않고 있다.

야당의 이런 모습을 보면 국정 수습보다는 혼란 장기화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과 같은 사태가 계속되는 것이 내년 대선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으로 여권이 만신창이가 됐을 때 치러진 선거에서 오히려 야당이 참패했다. 야권의 무책임과 오만에 국민이 등을 돌린 것이다. 언제나 국민은 '국정을 맡길 만한가'라는 기준으로 정당을 선택하고 투표도 한다. '정략밖에 모르는 야당'과 '국정을 맡을 만한 야당'은 정반대 얘기다.
[키워드 정보] 거국내각 외치더니… 野 "무너지는 정권, 왜 발 담그나" 말뒤집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