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순실에게 갈취당한 기업들, 숨지 말고 진실 밝히라

조선일보
입력 2016.10.29 03:45

롯데그룹이 전경련을 통해 낸 돈과 별개로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추가로 돈 요구를 받고 70억원을 건넸던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K재단은 얼마 뒤 롯데에 돈을 되돌려 보냈으며, 그 직후 검찰이 롯데 계열사와 총수 일가에 대한 대대적 압수 수색을 벌이며 수사에 착수했다. K재단이 검찰의 내사를 받던 롯데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더 받아내려다가 생각과 달리 실제 수사가 시작되자 반환한 것으로 보인다. 최씨 측이나 미르·K재단에 개별적으로 돈을 준 사실을 인정한 것은 롯데가 처음이다. 하지만 롯데뿐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업들은 지금까지 전경련을 통해 두 재단에 800억원 가까이 낸 것만 인정하고 있다. 롯데 말고도 삼성·SK 등이 추가로 후원을 요구받았다는 관련자 증언이 쏟아지고 있지만 해당 기업은 모두 부인하고 있다. 롯데도 70억원을 준 사실을 숨기다가 K재단 전(前) 사무총장의 실명 증언이 나온 후에야 마지못해 인정했다.

이렇게 개별적으로 돈을 줬다는 얘기가 나오는 대기업은 모두 정권과 관련된 현안을 갖고 있는 곳이다. 후원금 70억원을 주었다 되돌려 받은 롯데는 검찰 수사 대상이 돼 있었다. 최순실씨 딸의 승마 선수 활동을 도왔다는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K재단에서 80억원 요구를 받았다는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지난해 특별사면을 받았다. K재단 전 사무총장은 최순실씨가 돈을 요구하라고 지시했고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개입했다고 증언했다. 약점을 가진 기업에서 돈을 뜯는 갈취 행위나 다를 바 없고 이것을 청와대 수석이 거들었다면 기막힌 일이다. 우리나라에 많은 권력 비리가 있었지만 이토록 막가는 행태는 없었다.

최씨 측이나 청와대 관계자들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거짓말을 많이 해 믿을 수가 없다. 검찰이 사실을 제대로 밝힐지도 의심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인 기업들마저 숨어버리면 자칫 진실이 묻힐 수 있다. 그런데도 해당 기업들은 "모른다" "밝힐 수 없다"면서 도망가려고만 한다.

사석에서 대기업 관계자들은 "정권 임기가 1년이나 남았는데 무슨 말을 하겠냐"고 토로한다고 한다. 우리 현실에서 이럴 수 밖에 없는 기업의 고충을 짐작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중대한 사태에서까지 기업들이 숨기고 은폐한다면 국민의 분노는 기업들에도 향할 수 있다. 공범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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