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 본사에선 치킨 튀기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 대신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이 귀를 울렸다. 경기 오산 경부고속도로변 3층짜리 건물 입구에 다다르자 교촌치킨 창업자 권원강(65) 회장이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내민 손은 그의 체형처럼 통통하고 단단했다.
―상당히 외진 곳에 사옥이 있네요.
"제 고향이 대구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서울 올라올 때 경부고속도로 타지 않습니까. 그 경부고속도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교촌' 간판 세우는 게 내 꿈이었습니다. 상행선과 하행선 두 군데서 다 잘 보이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다들 왜 이렇게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지었느냐고들 하는데 그 이유 말곤 없습니다."
―치킨 매출 1위 기업인 만큼 건물도 화려하게 지을 법도 합니다만.
"성격이 화려하지 못합니다. 남 앞에 나서는 것도 불편하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도 사실 성격과 잘 맞지 않습니다."
―남 앞에 서는 걸 꺼리나 봅니다.
"고등학교도 중간에 그만뒀지요. 대학교도 못 나왔죠. 집도 가난했어요. 배운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데 남 앞에 나설 일이 뭐 있겠습니까."
경북 구미서 10평짜리 가게로 시작
올해로 창업 25주년을 맞은 교촌치킨은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가운데 3년 연속 매출 1위를 달성했다. 매일 하루 치킨 90t을 판매하고 있다. 가맹점 수는 다른 치킨 프랜차이즈보다 적지만 매출은 1위다. 잘되는 지점은 잘되고 안되는 지점은 망하는 다른 프랜차이즈에 비해 전국 각 매장의 매출이 고르다. 매장당 하루 평균 치킨 90마리씩 팔리고 하루 100마리 이상 파는 곳이 전 지점의 45%가량이다. 장사 안되는 곳이 드물단 뜻이다. 지난 한 해 2500억원 넘는 매출을 올린 기업 '교촌 F&B' 회장이 나서기를 꺼린다는 것을 언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처음부터 치킨 튀긴 건 아니지요?
"트럭에 감자, 양파 같은 채소 싣고 다녔어요. 그쯤 결혼을 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까 트럭 장사로는 하루에 3300원짜리 분유 한 통 사기 힘들더라고요. 몸이라도 써서 돈을 벌어야겠다 싶어서 인도네시아 건물 짓는 데 나갔습니다. 그런데 돈은커녕 병을 얻어왔습니다. 갑상샘 병이었는데 이 병에 걸리면 해골처럼 몸이 비쩍 마릅니다. 그런 사람이 하루에 현금 1만원이라도 집에 가져갈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5년 정도 택시 기사 하다가 개인 택시 면허를 받게 됐습니다. 그 면허를 팔아 통닭집을 차린 거죠."
택시 기사를 그만둔 그는 1991년 고향인 대구를 떠나 경북 구미로 갔다. 면허 판 돈 3300만원으로는 대구에서 작은 상가 하나 구할 수 없었다. 구미 한 아파트 상가에 보증금 1500만원, 월세 40만원짜리 매장을 얻었다. 남은 돈으로는 배달용 중고차를 한 대 샀다. 10평짜리 매장에 주방과 탁자를 들여놓고 바깥엔 '교촌통닭' 간판을 써 붙였다. 교촌은 '향교가 있는 시골 마을'이라는 뜻이다. 페리카나, 멕시카나가 유행하던 때라 가장 한국적인 이름을 짓고 싶었다고 했다.
―왜 하필 통닭집이었나요?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통닭집을 차리려고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수중에 100만원만 더 있었으면 아마 통닭집 안 차렸을 겁니다."
―장사는 처음부터 잘됐나요?
"개업하고 2년 동안은 거의 하루에 한두 마리 팔았습니다. 우리 매장이 있던 동네에 통닭집이 이미 20곳 정도 있었어요. 그 틈을 비집고 나갈 수가 없었던 거죠."
―지금은 매출 1위인데 그땐 장사가 그렇게 안됐었군요.
"아직도 기억나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 통닭 한 마리에 6000원이었습니다. 한 마리 팔면 이것저것 다 떼고 1000원 남는 시절입니다. 배달 가는 길에 잔돈을 만들어 가려고 매장 근처 구멍가게에 들렀어요. 그냥 돈만 바꿔달라고 하기가 뭐해서 박카스나 하나 사려고 했던 거죠. 계산대 옆에 박카스가 주르륵 놓여 있고 그 옆에 그때 막 출시된 숙취 해소 음료가 있었어요. 새로 나온 거니까 그 음료를 하나 집어서 마셨지요. 1만원짜리를 냈는데 가게 주인이 7500원만 거슬러주는 겁니다. 화가 나서 따졌더니 그 음료가 2500원이었어요. 박카스가 150원이었으니까 그 음료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하루 1000~2000원 벌 때였으니까 이틀치 벌이를 한입에 털어 넣은 거죠. 지금도 그 숙취 해소 음료는 안 마십니다(웃음)."
"치킨 두 번 튀기는 레시피는 우리가 처음"
―처음에 왜 장사가 안됐을까요?
"닭 튀기는 방법을 몰랐으니까요. 어떤 날엔 닭이 딱딱하다고 전화가 옵니다. 다음 날에는 좀 짧은 시간에 튀겨보고 튀김 반죽을 좀 더 묽게 해보고…. 한 1년간 온종일 튀기는 연구만 했습니다. 이쪽 팔에 흉터들이 전부 그때 닭 튀기면서 생긴 겁니다"(그는 왼쪽 셔츠 소매를 걷고 화상 자국이 오돌토돌 빼곡한 팔뚝을 내보였다). 지금 우리 매장에서 생닭을 180도에서 10분 튀기고 꺼냈다가 다시 180도에서 2분 튀기는데 그걸 내가 그때 만들었습니다. 그게 기름이 쫙 빠지고 바삭하니 제일 맛있습니다. 내가 알기로 치킨을 두 번 튀겨서 내놓는 프랜차이즈 치킨은 교촌이 처음입니다."
―그 뒤로 장사가 잘됐습니까.
"소문 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어느 날 한 남녀가 닭 한 마리를 시켰습니다. 그 손님들이 치킨을 먹고 있는데 열 몇 명 단체 손님이 왔어요. 그때 우리 매장에 4명 앉는 테이블 3개밖에 없었거든요. 하루에 한두 마리 팔 때였으니까 욕심이 났지만 단체 손님들에게 '자리가 없어서 죄송하다'며 돌려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끼어 앉힐 법도 한데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웃음). 알고 보니 앉아 있던 남자 손님이 근처 금성사 공단 경비팀장이었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금성사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각 부서며 기숙사며 방마다 배달을 갔어요. 그 남자분 이름도 기억합니다. 조인철이라고. 그분 참 찾고 싶은데 안 찾아지더라고요."
―그 뒤로 가맹점이 생긴 건가요?
"맞습니다. 관두지 못하고 3년 정도 그 자리에서 장사를 했더니 대구나 김천에서도 우리 매장에 와서 치킨을 사가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때는 가맹점이고 그런 것도 모르고 김천에서 온 한 50대 사장님이 기술 좀 제발 알려달라고 사정을 하길래 알겠다고 했었어요. 그렇게 해서 지금은 (가맹점) 사장님들이 한 1000명쯤 될 겁니다."
폐점률 0.9%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전국 1010개인 교촌치킨은 폐점률이 낮기로 유명하다. 2000년부터 10년간 망해서 문을 닫은 가맹점주는 한 명도 없었다. 폐점률 0%를 깬 첫 사례는 "매장이 너무나 붐벼서 쉴 시간이 없다"던 서울의 한 가맹점이었다. 치킨집 경쟁이 심해진 최근에도 교촌치킨 폐점률은 0.9%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새로 생긴 상권이 아니면 더는 가맹점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배달 가능한 지역을 인구 2만5000명에 맞추고 이에 모자라면 가맹점을 내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고 했다.
―매장을 더 늘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보다 더 늘리면 통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퇴직자들이 창업 상담하러 오면 갑갑합니다. 대부분 퇴직금을 어디다 써야 할지 몰라서 오는데 치킨집 차리려면 뭐부터 해야 하는지, 계약할 때 뭘 따져야 하는지조차 모릅니다. 한 회사에서 20년씩 일한 사람들이니까 장사엔 깜깜한 거죠."
―그런 사람들한테 어떻게 하나요?
"현실적으로 말해줍니다. 치킨집 아무 데나 내면 망한다고요. 치킨은 분식하고 달라서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에요. 일 년에 한 마리 먹는 집도 있습니다. 한 번은 1000세대 정도 아파트 상가에 매장을 내고 싶다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주변에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지역에 아파트만 달랑 몇 동 들어선 거라 상권이 그 아파트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제 경험상 1000세대가 상권의 전부이면 하루 치킨 5~6마리밖에 못 팝니다. 그 아파트뿐 아니라 그 근처까지 (상권을) 넓혀서 봐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렇게 해서 본사가 돈을 벌 수 있습니까.
"교촌이란 이름을 쓰겠다고 하면 무조건 돈을 벌게 해줘야 합니다. 그게 제 책임입니다. 돈 못 벌고 그만두는 가맹점은 없어야 합니다. 어떻게든 가게 사장에 딸린 가족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도 보내고 저축도 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런 책임감을 갖게 된 동기가 있나요?
"IMF 때 퇴직자들이 늘면서 우리 가맹점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안 좋은 시절 덕을 본 것이지요. 그걸 결과적으로 이용했다는 미안함이 오죽하겠습니까. 살고 있는 아파트를 전세나 월세로 돌리고 쥔 돈으로 치킨집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 돈 벌게 해주지 못하면 그 가족들은 전부 길에 나앉아야 하는 겁니다. 치킨집 차리려고 상담을 해오는 분 대부분이 제가 처음 치킨 튀길 때랑 비슷합니다. 가진 것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손에 돈을 웬만큼 쥐었으면 좀 더 큰 사업을 하려고 하지 치킨집 안 합니다. 왜 굳이 치킨집 하겠어요?"
―고속도로에 간판 세운다는 꿈은 이뤘군요.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교촌 간판을 하나 걸고 싶습니다. 경부고속도로에 간판 세운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