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생명을 품은 유일한 행성인가. 과학뿐 아니라 철학이나 사회과학 등 모든 학문에서 답을 찾고 싶어하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지질학에 맞춰 이 질문을 바꿔본다면 '지구는 어떻게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되었나' 정도가 될 것 같다. 지구는 여러 요소로 구성돼 있다. 과학에서는 대기권(大氣圈)·수권(水圈)·지권(地圈)으로 크게 나눈다. 대기권은 생명체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수권에 있는 물은 생명의 필수조건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밟고 있는 지권, 즉 땅은 생명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지구는 마치 양파와 같이 여러 개의 다른 층으로 구성돼 있다. 중심까지의 거리는 약 6300㎞. 인류는 태양계 끝에 있는 명왕성에 행성을 보내 사진을 찍었지만 정작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내부는 보지도, 만지지도 못했다. 지구 중심의 압력은 손바닥에 자유의 여신상 100개를 올려놓은 정도이고, 온도는 태양 표면과 비슷한 섭씨 4000~6000도 정도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인간이 가장 깊게 판 시추공은 10~12㎞에 불과하다. 지구 내부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눴을 때 가장 겉에 있는 지각이 약 30㎞까지이다. 아직 지구의 껍데기조차 다 보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지구 내부를 알 수 있을까. 바로 전 세계 곳곳에 설치된 지진계 덕분이다. 지진이 일어나면 지진파가 지구 내부를 관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이 지진파의 형태를 통해 지구 내부 구조와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 엑스레이나 자기공명영상(MRI)을 통해 사람의 몸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구 표면은 약 40여개의 딱딱한 판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판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대서양의 밑바닥에는 북극에서 남극까지 이어지는 갈라진 부분이 있다. 중앙해령(中央海嶺)이라고 부른다. 중앙해령에서는 지구 내부에서 계속해서 뜨거운 암석이 밀려나오고, 새로운 지각의 일부분이 돼 기존 해양지각을 밀어낸다. 중앙해령은 생명체의 탄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뜨거운 암석이 차가운 해저의 온도를 높일 뿐 아니라, 생명체를 구성하고 자랄 수 있는 원소들도 공급해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각은 계속 움직이다가 판과 판의 경계에서 다시 지구 내부로 밀려 들어가면서 생을 마감한다. 지각이 생겨서 사라지기까지는 무려 1억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전 세계적으로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지진대가 이 판의 경계에 있다. 지각이 밀려 들어가는 충격으로 지진이 생기는 것이다.

지진파를 이용해 지구 내부를 3차원으로 재구성한 모습. 빨간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지구 맨틀에 있는 거대한 금속 대륙이다.

지각 바로 밑부터 3000㎞가량 이어진 맨틀은 지각의 고향이다. 맨틀은 고체 상태인데 마치 물이 끓을 때처럼 움직이는 대류(對流)를 한다. 아주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는 고체도 쉽게 변형되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판에서 밀려 들어간 지각은 맨틀 가장 밑바닥 부분까지 움직인다. 지구 표면에서 1억년간 생성된 것들이 다시 지구 내부로 들어가고, 대류하다가 다시 중앙해령을 통해 솟아 나오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대부분 철로 구성된 핵 역시 대류를 한다.

특히 핵의 대류는 생명체 존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철이 지구 내부에서 대류하면서 자기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 자기장은 태양이 뿜어내는 강한 에너지의 입자들이 지구 표면에 닿지 못하도록 밀어낸다. 지구 생명체를 보호해주는 보이지 않는 막을 형성해주는 것이다.

지구 내부에는 엄청난 양의 물도 있다. 400~600㎞ 깊이에 있는 '맨틀 전이대'에는 물을 1~5% 함유한 광물이 있다. 중앙해령에서 생겨난 지각 중에 간혹 이 암석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만약 200㎞에 이르는 맨틀 전이대에 물이 1%만 포함돼 있어도 지구 표면에 있는 물 전체보다 많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설이지만, 지구의 물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문의 답이 '지구 내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진파 관측에서는 지구 내부에 두 개의 거대한 대륙도 보인다. 하나는 아프리카 밑에, 하나는 미국 하와이 밑에 있다. 언제부터 이 대륙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지구가 처음 생겼을 때 무거운 물질들이 내부에서 모이면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재단법인 카오스의 '지구' 강연 시리즈 중 심상헌 교수가 진행한 '지구 내부로의 여행'을 요약·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