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 및 그의 측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4대 국정 지표 중 하나인 '문화 융성' 관련 세부 사업을 짜고 사업별 예산까지 책정했다고 TV조선이 27일 보도했다. 2014년 중반 무렵 최씨 측이 만든 5건의 문서에 12개 사업, 1800억원대 예산이 적혀 있었고 '문화창조센터 건립' '한복 패션쇼' 등 상당수가 이미 집행됐거나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표절 논란이 벌어진 '국가 브랜드 사업'처럼 이미 부실 판정을 받은 것들이 많다. 문서에 적힌 메모의 필적이 최씨의 것과 같다고 한다.
이 보고서들이 작성된 시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융성위원회'를 만들어 범정부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하던 때다. 문체부에선 유진룡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이 청와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 밀려나고 최씨, 차은택씨와 가까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장악하던 바로 그 시기다. 그렇게 정부 안에 자기들만의 은밀한 조직을 만들어놓은 뒤 최·차씨가 사업안을 만들면 이것을 청와대와 문체부가 다듬어 정부 사업으로 결정한 뒤 세금까지 대고 최·차씨가 만든 회사들이 다시 사업권을 따내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확인된 것은 이 정도지만 실상은 훨씬 곪았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대통령 연설문이나 비서실장·민정수석 인사 서류를 최씨가 미리 받아본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렇게 정부 예산에까지 개입해 국민 세금을 제 돈 취급했다니 이게 정말인가 싶다. 이 사람들이 이것도 모자라 아예 재벌들 돈을 800억원이나 모았고 그걸 청와대가 도왔다. 롯데에선 70억원을 따로 더 받아냈다가 돌려주기도 했다. 돌려준 뒤 10일도 되지 않아 검찰의 롯데 압수 수색이 시작됐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던 때의 문체부 김종덕 장관은 차은택의 대학 은사,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차씨의 외삼촌이었다. 장관과 수석이 최씨나 문화계 황태자라는 차씨의 하수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유 전 장관은 "내가 나가자마자 바퀴벌레들이 일제히 출현했다"고 했다. 모두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