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통일준비위 오찬 연기… 대변인 "대통령 숙고 중"]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최순실씨 국정 농단에 대국민 사과를 한 지 사흘이 지났다. 신뢰를 잃은 정부가 작동 불능 상태로 가고 있는데도 대통령은 어떤 결단도 내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와 행정부, 여당 등 국정을 책임진 주체들은 그저 대통령만 쳐다볼 뿐이다. 이 정권이 해온 행태 그대로다. 이 와중에 박 대통령은 27일 부산 지방자치박람회에 참석했다. 전날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다"고 했던 사람이 맞느냐는 생각이 든다. 부산 행사장 뒷자리는 텅 비었다. 평소 같으면 꽉 찼을 자리다. 대학생들의 기습 시위도 있었다. 이 풍경이 바로 민심이다. 그래도 박 대통령은 귀중한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수술을 늦출수록 병은 더 깊어진다. 대통령만 쳐다보는 청와대 참모들과 친박들 사이에 현 사태를 '최순실 비리'로 규정해 처리하면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기류까지 일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도 최순실에게 속은 피해자'라는 식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듯하다. 모두가 최순실을 넘어 박 대통령을 주시하고 있다. 대통령 주변은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 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한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어제 국회에서 의혹의 핵심인 안종범 경제수석과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옹호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진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대학생들과 교수, 시민단체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고 보수 진영에서마저 '대통령 하야(下野)' '총리에게 권한을 이임하고 외치(外治)에 전념하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주말 서울 광화문에서는 대규모 촛불 집회가 예정돼 있다. 박 대통령이 결단을 미루고 주변에서 엉뚱한 꼼수를 연구하면 민심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누가 어떻게 그 사태를 막을 수 있는가. 그런데도 황교안 총리는 국회에서 거국(擧國) 내각에 대해 "말 잔치가 되고 말지 않겠느냐"는 한가한 답변을 했다. 지금이 비상이란 사실을 절박하게 느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순실씨에 대한 수사도 국민의 분노를 돋울 수 있다. 여야의 특검 협상이 지지부진해질 우려가 있다. 최씨도 건강을 핑계로 귀국하지 않을 뜻을 밝혔다. 최씨 귀국은 박 대통령이 직접 그에게 연락해 귀국을 지시하면 바로 해결될 문제지만 그것도 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복안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다만 대통령에게 촌각을 다투는 인식이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큰 오산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