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칼럼] 여성의 임신 중절 결정권을 제한하는 개정 법안

  • 조병구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공보이사

    입력 : 2016.10.28 03:11

    조병구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공보이사
    조병구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공보이사
    낙태 전면 금지법의 입법을 강행하려던 폴란드 집권당에 맞서 폴란드 여성들은 검은 옷을 입고 '나의 자궁은 나의 것'이란 구호를 외치며 파업과 시위를 벌인 끝에 전면 철회를 얻어냈다. 이 '검은 옷 시위'가 서울·부산 등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비윤리적 의료인 면허정지 12개월' 입법 예고 내용에 '불법적 인공 임신중절'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현재의 인공 임신중절, 즉 낙태는 형법상 중대 범법으로, 임신부와 방조자 및 의료인 모두 처벌되는 쌍벌죄이다. 그러나 최고 200만원 벌금형인 임신부와 달리, 의사는 벌금형이 없어 징역형을 면하기 어렵고 면허도 취소되는 이중 처벌을 받게 된다. 정부는 "실제로 기소돼 처벌받은 사례가 없다"며 사문화된 법을 폐기하지는 않고, 기소 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 면허정지 12개월을 보태겠다는 것이다.

    개정이 강행된다면 중국 원정 낙태 여행과 미성년 산모 양산, 영아 유기와 살해, 아동학대 증가, 산부인과 폐업으로 인한 분만실 부족 같은 부작용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아이를 낳든, 중절을 택하든 어떤 결정이든 쉽지 않았을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한다. 이에 따라 인공 임신중절 허용 사유에 '사회 경제적 사유'를 추가할 것을 요구한다.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빌딩 앞에서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를 한 여성들이 임신중단(낙태) 합법화에 찬성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조인원 기자
    현재의 모자보건법은 허용 사유로 '임신부, 배우자의 우생학적 장애나 전염성 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인한 임신,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 임신, 임신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하게 해치는 경우'만 인정하는데, 이런 중절은 전체의 5% 정도로 추산된다. 나머지 95%, 즉 미성년 임신, 실수에 의한 미혼 임신, 다자녀를 둔 기혼 여성처럼 낳더라도 양육하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사유'에 해당하는 낙태가 모두 '불법'인 것이다. 낙태에 대한 국민 법 감정과 괴리가 크다. 최근 한국갤럽 발표에 따르면, 성인 남녀 101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74%가 '필요한 경우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물론 낙태를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허용하면 낙태가 만연하게 될 것이고, 생명윤리 경시 풍조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은 당사자인 여성의 임신 지속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고 있다. 미국 만 23주, 영국 만 24주, 프랑스는 만 12주 미만의 중절을 전면 허용하고, 독일도 12주 미만은 의사 상담 후 요건을 갖추면 허용한다. 일본의 '모체보건법'도 '사회경제적 사유'를 인정한다. 개정안이 원안 통과된다면, 임신부 측 사정이 아무리 딱해도 사실상 폐업인 '면허정지 12개월'의 모험을 안고 수술할 의사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상당수가 외국으로 원정 낙태 여행을 떠날지 모른다. 아이를 키울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는데 무조건 낳으라는 것이 여성과 아이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특히 다자녀 여성에게 불리하고, 국민의 평등권과 여성의 행복 추구권을 저해하므로 헌법에 위배될 가능성도 크다.

    중절에 대한 의사들 입장을 '낙태로 돈 벌겠다'는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시선은 편견이다. 중절은 병원에 한번 다녀가면 끝나지만, 임신과 출산은 10개월의 산전 진찰 및 분만 등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진료비를 생각했다면 정부 방안에 부응했을 것이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신념에 따라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여성의 결정을 계속 존중할 것이다. 다만 여성의 입장에서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의사로서 도울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키워드 정보] 국민 74% "낙태 수술, 필요한 경우 허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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