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보기> 대통령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다?

    입력 : 2016.10.27 15:14 | 수정 : 2016.10.27 16:23

    이원종 비서실장 "대통령도 아프다"
    이정현 새누리대표 "나도 친구에게 도움받는다"
    대통령 담화 속 최순실은 여전히 '도움을 준 사람'

    “국민들에게 많은 아픔을 줬지만 그에 못지 않게 피해 입고 마음이 아픈 분이 대통령이다”
    25일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회에 출석해 이런 말을 했다. 당연히 여론이 들끓었다.
    이 수석은 “오해가 있었다. 최순실을 믿었는데,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는 차원에서 말씀 드린 것”이라고 했다. 먼저 한 말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다.

    “나도 연설문을 쓸 때 친구에게 도움받는다.” 이정현 새누리 당대표는 25일 이런 말을 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심심해서 화 내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터무니없는 사인(私人) 한 명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집단적으로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 마음따위는 알 바 없는 이른바 ‘친박(親朴)’들의 입에선 아직도 이런 말이 나오고 있다. 그들에겐 수천만 국민의 마음이 ‘한 사람 마음’보다 가벼운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들은 대통령 마음이 되어 그를 이해하려는 이른바 ‘내재적(內在的) 접근’의 왕자들이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정현 새누리당대표. 둘 다 적절하지 못한 발언으로 여론의 화살을 맞고 있다.


    박근혜대통령-최순실의 커넥션이 언제부터 형성됐는지 베일에 싸여있지만, 여러 정황상 80년대 이후부터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신뢰관계는 아직도 끊어지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그 느낌을 25일 대통령의 긴급담화에서 받았다.

    대통령은 25일 담화에서 최순실에 대한 어떤 ‘가치평가’적 단어도 쓰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최씨는 여전히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사람”으로만 묘사된다.
    최씨는 유승민 의원보다 1000배쯤 대통령을 힘들게 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배신의 ㅂ 자’도 꺼내지 않았다.
    대통령에겐 ‘여전히 고마운 사람’인 것인지, 아니면 화를 누르고 점잖게 표현한 것인지 알 길 없다.

    대통령이 과연 언론 보도로 드러난 다양한 사실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로 인지하고 있는지 의아스럽다.
    “목욕탕에서 온갖 진상 짓을 했다. 그 딸이 8살일 때 때 밀어주는 사람의 따귀를 때렸다” 같은 세신사의 새 ‘증언’까지 나와 최순실 인성 수준을 말해준다. 그가 이 나라 고위관료 위에 군림하고, 대기업에 돈을 가져오라고 시키고, 대학에 가서 행패를 부렸다는 사실도 증언 형태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를 여전히 ‘고마운 사람’으로 보고 있다면, 이건 ‘그들의 주장’일 뿐이다.
    ‘내재적 접근’ 방식으로 보면, 최순실은 악녀는 커녕 깔끔한 사람이다.
    사실 최근 언론의 집중 취재를 통해 사건이 무더기로 밝혀지기 전까지, “최순실이 대통령 이름을 팔고 다닌다” “최순실이 권력을 등에 엎고 패악질을 부린다”는 소문은 매우 희박했고, 그 관련 증거를 찾는 일은 더 어려웠다.
    둘 중 하나다. 대한민국 기자가 무능했거나, 최순실이 대통령 관련 사항을 철저히 보안에 부쳤거나. 전자의 책임도 있으나, 후자 쪽이 더 컸다.

    최순실의 전 남편, 정윤회씨의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아들이 보좌관을 할 때는 심부름만 잘하면 됐다. 대통령 비서관 자리는 책임이 무겁고 힘들다. 아들이 그 자리에 미치지 못하자 (며느리가) 대통령에게 진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들이 대통령과 멀어지게 된 일로 이혼까지 결심한 것 같다.”
    한마디로 “대통령님, 제 남편은 그릇이 되지 않으니 쓰지 마옵소서” 했다는 얘기다. 최순실은 적어도 자신의 딸의 출산 전까지는 남편까지 쳐 내는 ‘진실한 마음’으로 대통령 곁을 지켰다.

    대통령을 안다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이 최순실의 ‘호가호위’를 알고도 참았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스탠스’는 무엇일까. 대통령은 수십년 간의 ‘진실한 마음’에 도취, 혹은 마취되어 있었던 걸까.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선택이 남았다. 국민이 ‘대통령’을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드는가다.
    ‘최순실의 악행을 알고도 묵인한 나쁜 사람’, 그리고 ‘최순실의 진심에 속은 아픈 사람’ 두 가지 선택이 있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최측근들은 대통령을 ‘나쁜 사람’이 아닌 ‘아픈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듯 행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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