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의 맛 세상] 청탁금지법이 '저녁 접대'를 '미팅 런치'로 바꿔놓을까

    입력 : 2016.10.27 03:14

    외식업계 청탁금지법 대책 분주
    접대 많은 한식·일식당 가장 바빠… 양식당·호텔은 대응 움직임 적어
    업무회식 저녁에 해 온 한국
    3만원 이하 메뉴로 점심 먹고 '저녁이 있는 삶' 만들 계기 되길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김영란법) 발효 한 달여가 지났다. 외식 업계는 이 법 시행 전부터 대책 마련으로 분주했다. 가장 바빴던 건 아무래도 접대 자리가 많은 한식·일식 쪽이었다.

    서울 정동에 있는 한식당 '콩두'는 청탁금지법이 발효된 9월 28일 '928'이라는 새로운 점심 코스 메뉴를 내놨다. 3코스로 구성되며 1인분 2만9800원으로, 이 법이 규정한 식사 접대 상한액 3만원에서 200원 빠진다. 그동안 이 식당이 선보인 코스 메뉴 중 가장 싸다. 마포 '목포낙지'는 민어·참돔·광어 등 제철 생선 3~4가지를 모음회로 내고 탕이 딸려 나오는 '영란세트'를 선보였다. 7만원으로 3~4명이 먹을 만한 양이다. 넷이 먹는다 치면 1인당 1만7500원으로, 술을 곁들이더라도 3만원 이내로 먹을 수 있다. 서울 서초동 일식당 '아카사카'는 10명 이상 사전 예약 주문을 조건으로 2만9000원짜리 메뉴를 판매하기로 했다. 일본 유학파 요리사가 운영하는 이곳은 최고급 풀코스 저녁식사가 1인분에 15만원, 가장 저렴한 정식도 5만5000원이었다.

    프랑스·이탈리아 등 서양 음식점에서는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는 분위기다. 점심 4만5000~6만5000원, 저녁 9만8000 ~12만8000원인 서울 청담동 이탈리아 음식점 '리스토란테 에오'는 새 메뉴를 내놓지 않고 기존 메뉴를 그대로 내고 있다. 이 식당 어윤권 오너셰프(주인 겸 주방장)는 "현재 가격도 겨우 손해나지 않는 정도"라며 "어차피 우리 식당은 음식 때문에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라 (청탁금지법 시행 후에도) 법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 분들이 이용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15위에 오른 모던한식 레스토랑 '밍글스' 강민구 오너셰프는 "접대 손님이 원래 많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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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특급호텔 중에서도 27일부터 타파스(가벼운 안주 거리) 뷔페를 매일 오후 5시 30분~10시 39분 사이에 3만원에 내놓은 그랜드하얏트서울을 제외하면 청탁금지법 관련 새 메뉴를 내놓은 곳이 드물다. 한 호텔 관계자는 "호텔 외식업장은 일반 식당보다 많은 인력을 투입해 인건비 부담이 높아 3만원 이하로 식사비를 맞추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호텔 관계자는 "여러 대책을 고민하고 있지만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게 해결책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3만원 이하 '청탁금지법 메뉴'는 대부분 점심용이다. 식당 주인들은 "저녁에 3만원 이하 코스 메뉴를 팔면 이윤은커녕 임대료 내기도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따라 저녁에 주로 이뤄지던 접대가 점심 시간대로 이동하면서 '파워 런치(power lunch)'가 국내에도 정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식사 접대비가 20~25달러로 엄격한 미국에선 대부분 접대가 점심때 이뤄지는데, 이러한 업무상 미팅 성격을 겸한 점심을 파워 런치라고 한다.

    파워 런치라는 말은 1979년 만들어졌다. 작가이면서 1970~1980년대 미국 남성지 '에스콰이어' 편집장을 역임한 리 아이젠버그(Eisenberg)는 힘깨나 쓴다는 이들이 매일 점심 뉴욕 유명 레스토랑 '포시즌스'에 모여 사업 상담을 하고 인맥을 구축하는 광경을 주목했다. 그리고 이를 1979년 에스콰이어에 '미국의 가장 파워풀한 점심(America's Most Powerful Lunch)'이란 제목으로 기고했다.

    파워 런치란 표현은 37년 전 만들어졌지만 파워 런치 자체의 역사는 길다. 출발이 18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27년부터 지금까지 영업 중인 '델모니코스'는 지금도 그렇지만 개업 당시에도 뉴욕의 실력자들이 즐겨 찾는 고급 음식점이었다. 파워 런치는 금융·법률·출판·광고·영화·출판업계에 종사하는 파워 엘리트들 사이에서 주로 이뤄졌지만 비즈니스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정보 교환과 네트워킹의 장(場)으로 범위가 확장됐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선 저녁은 가족과 함께하는 문화라 파워 런치가 만들어지고 정착했지만, 한국처럼 접대가 저녁이나 밤에 이뤄졌다면 '파워 디너'가 됐을지 모른다.

    한국의 오랜 밤 접대 문화가 낮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는 않을 듯하다. 청탁금지법 시행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가족을 중시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흐름이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서울 광화문 한우전문점 '한육감' 이준수 대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점심 세트 메뉴를 내놓은 이후 직장인의 점심 회식 예약이 늘었다"고 했다. 필자도 전에는 부서 회식 때 노래방이 필수 2차 코스였지만, 요즘은 가지 않는 경우가 더 잦다. 문화나 관습은 의외의 계기로 갑자기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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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란법 한달, 혼술과 더치페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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