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케르치 해협에선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19㎞ 길이 교량 공사가 한창이다. 철도와 4차선 자동차 도로가 나란히 달리는 교량은 러시아가 2279억루블(약 4조원)을 들여 201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다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크림반도 합병 '완결판'이다.
2014년 3월 러시아와 합병 이후 크림반도는 심각한 물자 부족과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땅을 빼앗긴 우크라이나가 상품·서비스 공급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케르치 해협 페리선이 러시아에서 식품과 생필품, 연료를 실어 날랐지만 악천후로 운항이 자주 중단됐다. 케르치 교량은 크림반도의 고통을 상당 부분 해소할 전망이다. 케르치 교량은 크림반도가 정치·군사 측면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도 러시아에 확고하게 편입되는 걸 의미한다.
유럽과 러시아의 갈등과 마찰은 군사 분야에서 더욱 첨예하다. 러시아는 이달 초 발트해(海)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이스칸데르-M 미사일을 배치했다. 러시아 본토에서 발진한 투폴레프 Tu-160 전략폭격기 두 대가 노르웨이 앞바다를 거쳐 스페인 공해까지 날아오자 노르웨이·영국·프랑스·스페인 전투기가 긴급 출동하는 일도 있었다. 유럽 접경 지역에 3개 사단 창설·배치 작업이 진행 중이고, 최근엔 시리아 전장(戰場)으로 향하는 항공모함 쿠츠네초프함이 영국과 프랑스 사이 도버 해협을 버젓이 통과해 유럽을 초긴장 상태에 빠뜨렸다.
유럽은 발트 3국 등에 대대급 병력 배치, 폴란드에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등으로 맞서고 있지만 군사적 능력과 규모, 특히 '의지' 면에서 러시아에 훨씬 못 미친다. 강력한 상대와 맞서려면 단결이 중요한데 유럽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2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는 그 단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회의는 시리아의 반군(叛軍) 거점 도시 알레포 폭격 사태와 관련, 러시아에 새 제재를 가할 것이냐가 최대 관심이었다. 시장과 병원, 학교, 국제기구 구호 차량을 무차별 폭격하는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과 이를 지원하는 러시아를 강력히 제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독일·프랑스·영국은 "알레포에서 전쟁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러시아와 알아사드 정권도 이런 압력을 의식했는지 알레포 폭격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유럽 정상들은 "잔혹 행위가 계속된다면 모든 가능한 옵션을 고려할 것"이란 애매한 결론으로 회의를 끝내버렸다. 러시아 제재는 무산됐다.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는 "추가 제재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 (러시아와) 폭격 중단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푸틴은 외부 압력을 받으면 더욱 강하게 반발하는 성향을 보여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푸틴에게 '후진 기어'가 없다"고 했다. 유럽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강력한 경제 제재로 맞섰지만 푸틴은 굴복하지 않았다. 크림반도에 이어 시리아에서도 무른 모습을 보인 유럽이 푸틴의 향후 공세를 제대로 막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국제관계에서 한번 우습게 보이면 상대의 폭주를 제어할 수 없다. 이는 북·중·러에 맞서 북핵과 사드 배치 문제를 풀어야 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