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선은 우리가 먼저 통과하는 거다. 할 수 있지?"

김종배 연세대 교수가 자신이 만든 전동 휠체어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김 교수는 이 휠체어를 타고 이달 초 스위스에서 열린 사이보그 올림픽에 참가했다.

[사이베슬론 (사이보그 올림픽)이란?]

지난 8일(현지 시각) '제1회 사이배슬론(Cybathlon)'이 열린 스위스 취리히 아이스하키 경기장. 출발선에 선 김종배(56) 연세대 작업치료학과 교수가 자신의 전동 휠체어에 속삭였다. 사이배슬론은 중증 장애인들이 특수 자전거, 전동 휠체어, 외골격 로봇 등을 이용해 승부를 겨루는 대회로 '사이보그 올림픽'으로 불린다. 가슴 아래가 마비된 김 교수는 직접 만든 휠체어로 전동 휠체어 장애물달리기 종목에 출전했다.

깃대 장애물 피하기와 경사로, 요철, 울퉁불퉁한 길은 순조롭게 넘었다. 하지만 휠체어는 계단을 오르지 못했다. 예상보다 계단이 약간 높은 것이 문제였다. 내심 금메달을 기대했던 김 교수는 세계에서 출전한 12개 팀 중 9위에 머물렀다.

김 교수는 17일 본지 인터뷰에서 "메달을 따진 못했지만 대회장을 가득 채운 응원 소리 속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전동 휠체어로 계단을 오르는 시범을 보이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김 교수는 한국장애인럭비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장애가 심해 장애인 럭비를 해보지 못했다. 1년 전 사이배슬론 대회 소식을 들었을 때 드디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생겼다는 생각에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장애 보조 기구 업체인 '인에이블' 연구팀과 함께 부품을 하나씩 깎아가며 계단을 오르내리고 거친 길을 달리는 전동 휠체어를 만들었다. KT가 1000만원을 지원했다. 모자라는 비용은 김 교수 자비와 친구들이 모아준 돈을 썼다.

김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85년 옥탑방 계단을 내려오다가 굴러떨어지면서 하반신이 마비됐다. 25세 청년이 방 밖으로 나오겠다고 결심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 장애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다가 나이 마흔에 미국 피츠버그대 재활공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1988 서울 장애인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로리 쿠퍼 교수가 그의 스승이다. 피츠버그대가 교수직을 제안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고국 장애인들을 돕고 싶어 한국행을 택했다.

김 교수는 "내가 처음 장애인이 됐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전동 휠체어가 보급되고 저상 버스, 장애인 택시가 나오면서 큰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됐다"면서 "장애는 신체 등급 같은 척도가 아니라 생활에 얼마나 불편을 느끼는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 극복은 결국 주변 환경 개선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기들을 끊임없이 발명하고 있다. 사지 마비 장애인인 서울대 지구환경공학부 이상묵 교수는 김 교수가 제작한 식사용 거치대를 이용한다. 발과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들에게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전동 이젤(그림판을 놓는 틀)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번에 만든 전동 휠체어와 최근 개발을 마친 욕창 방지 방석 등을 상용화할 꿈도 갖고 있다. 그는 "좋은 외국산 전동 휠체어는 4000만~8000만원에 이른다"면서 "더 저렴하고 더 뛰어난 성능의 전동 휠체어를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