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에 치마저고리… 한주얼, 출근복 되다

조선일보
  • 이제남 기자
    입력 2016.10.19 03:00

    [Fashion] 요즘 인기몰이 '캐주얼 한복'
    2030 여성들, 경성 新여성 스타일 한복 입고 '인증샷' 찍어
    하이힐·티셔츠와 믹스매치… 한복 같지 않은 한복으로 인기

    옷고름을 매며 망설였다. '밖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다 쳐다보면 어쩌지?' 한데 아무도 몰라봤다. "이게 한복이라고?" 오히려 되묻는 이도 있었다. 길거리에서 스친 젊은 청년은 뒤돌아보기까지 했다. "와, 원피스 독특하네!"

    얼마 전 명동에 문 연 캐주얼 한복집에서 큰맘 먹고 산 한복 배자 스타일의 네이비색 원피스. 풀 먹인 듯 빳빳한 천, 안으로 여미는 옷깃, 지퍼가 아닌 옷고름을 매는 방식은 한복과 같지만 겉보기엔 그냥 원피스다. 노리개 스타일의 액세서리가 이 옷의 포인트! 안에 검은색 기본티를 받쳐 입고 발엔 슬립온을 신었더니 아주 잘 어울렸다.

    하루종일 서울 광화문, 강남, 신촌 등을 누볐지만 캐주얼 한복을 낯설게 보는 이는 없었다. 고층 빌딩, 회색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오가는 바쁜 도심에서 한복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상복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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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이킴의 턱시도저고리와 검은색 사폭바지 / 2 리슬의 데일리 두루마기 코트 / 리슬의 무궁 저고리와 살랑 원피스 / 4 자주의 새로운 패션 한복 '자아 원피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리슬 ·자주 제공
    운동권? 한복의 흑역사 잊어주세요

    패셔니스타도 반할 만한 생활 한복, 캐주얼 한복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패션 트렌드에 발 빠른 인스타그램에선 한복을 입은 사진이 일상복을 뜻하는 '#OOTD(Outfit Of The Day)' '#데일리한복' 등의 해시태그가 달려 끊임없이 올라온다. 생활 한복으로 검색되는 게시물만 7만여 건. 전주 한옥마을부터 유럽·남미 등 해외여행지, 홍대 카페까지 서슴지 않고 생활 한복을 입고 누빈 '인증샷'을 올린다.

    광화문 사거리 일대도 마찬가지. '한복 소녀'들이 가장 즐겨 입는 생활 한복은 1930년대 경성의 신여성 '모단걸'을 떠올리게 하는 근대 한복 스타일이다. '빈티지' 인기에 힘입어 종아리까지 깡총 올라오는 치마에 가슴 살짝 아래까지 내려오는 꽃무늬 저고리를 풀세트로 입는 게 단연 인기다. 이와 함께 '허리치마' '철릭원피스' 등 한복적 요소를 가미한 기성복 스타일의 일명 '패션 한복'도 인기다. 인스타그램 검색 키워드로 허리치마는 1만8000여 건, 철릭원피스는 9000여 건에 이른다.

    허리치마와 철릭원피스는 2013년 '차이킴'이 처음 선보여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생활 한복의 대명사가 됐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허리치마, 철릭원피스란 이름으로 수십 개 상품이 판매 중이다. 허리치마는 랩스커트처럼 허리에 두르는 무릎길이 치마로, 플레어스커트처럼 단독으로 입거나 청바지·레깅스 위에 레이어링하면 멋스럽다. 철릭원피스는 옛 무관복인 철릭을 모티브로 만든 원피스다. 옷고름을 풀어 재킷처럼 입을 수도 있는데 '한복스럽지 않은 한복' 콘셉트로 떴다. 최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도 입점한 차이킴은 고급스러운 소재와 디자인으로 20대부터 40대 여성까지 두루 인기다. 올가을에는 버건디 컬러·트위드 소재 코트인 '액주음코트', 바지 정장으로 입기 좋은 '턱시도저고리'와 '당코바지' 등 다양한 레디투웨어(기성복)도 내놓았다.

    한복과 캐주얼 합친 일명 '한주얼'

    '차이킴'보다 소재와 가격 면에서 힘을 뺀 생활 한복 '리슬'도 20~30대 젊은층에 인기다. 재기 발랄한 색감과 젊은 여성들 체형에 잘 맞는 깔끔한 핏이 특징. 일상에서 많이 입는 면 소재를 주로 사용해 평상복과 매치했을 때의 괴리감을 없앴다. 한복과 캐주얼을 합친 일명 '한주얼'. 기본 생활 한복은 물론이고 일상복에 걸치기 좋은 두루마기 스타일의 네이비색 재킷 등 옷 스타일이 다채롭다.

    '천의무봉' '기로에' 등도 수많은 카피 제품이 나올 정도로 사랑받는 생활 한복 브랜드. 천의무봉 베스트셀러는 '당의'를 모티브로 만든 '해밀핏 당의저고리'다. 청바지, 원피스 등에 재킷이나 카디건처럼 걸쳐도 아무도 한복인지 몰라봐 남녀에게 두루 인기다.

    기로에는 세련된 '댄디남'을 떠올리게 하는 남성 한복 패션으로 유명하다. 특히 깃 부분만 한복스럽고 나머지는 고급 정장 느낌이 물씬나는 '당코깃정장'이 베스트셀러. 파티나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에 입고 나가도 손색없다. 몇 달 전 K팝 콘서트에서 사회를 맡은 '슈퍼주니어' 이특이 입고 나와 문의가 빗발쳤다.

    생활 한복 온라인 쇼핑몰도 몇 년 새 수십 개로 늘었다. 명동 '꼬레아노', 신촌 '치마저고리' 등 생활 한복을 직접 입어볼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도 하나둘 생겨나는 추세. 20대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패션 한복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온라인 한복 셀렉트숍 '낯선(www.notssun.com)'도 등장했다.

    20대 여성들 감성과 맞아떨어져

    한복 열풍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1980~90년대 88서울올림픽 개최 등으로 한국적 자부심이 고조되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우리옷 입기 운동'이 전개됐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신토불이"를 외치며 전통 한복의 모양을 단순화한 개량 한복이 쏟아져나온 것도 그즈음이다. 하지만 스타일보다는 실용성과 편리함만 강조해 일명 '운동권 한복'으로 전락했다. 2000년대 초반 웰빙 문화가 확산되며 천연 섬유를 소재로 한 생활 한복이 친환경적 이미지로 주목을 끌었으나 이 역시 잠깐이었다.

    그런데 이번은 태생부터 다르다. 2014년 한복 여행가 권미루(36)씨가 자신의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한복을 입고 유럽 여행한 사진을 올렸다. 해외여행을 즐기고, 예쁜 옷을 입고 싶고, 셀카로 돋보이고 싶어 하는 20대 여성들의 감성 트렌드와 맞아떨어졌다. 때마침 생활 한복 디자이너 황이슬(30)씨가 20대 감성을 자극하는 생활 한복 브랜드 '리슬'을 론칭했다. 20대 여성들은 열광하며 지갑을 열었다. 정부도 한몫했다. 2014년 6월에는 한복진흥센터를 설립하고 '신(新)한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일상에서 한복 입는 문화 전파와 젊은 패션 한복 디자이너 발굴에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 이달 21~22일엔 '한복의 날'을 맞아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 '달빛 한복패션쇼'와 '한복체험관'을 연다.

    평소 한복을 즐겨 입는 배소윤(26)씨는 "한복이 예쁘다는 건 진작에 알았지만 그동안 남들 시선이 신경 쓰여 못 입었다. 그런데 요즘 경복궁 등 고궁에 한복을 입고 가면 무료 입장이다. SNS를 타고 한복 스타일의 옷도 인기다. 일상에서 한복 입을 핑곗거리가 생겨서 마음껏 입는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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