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교수협의회(교협)는 16일 "미래라이프대학(평생교육 단과대) 사태로 촉발된 이화의 위기는 이제 정치 문제로까지 비화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며 "19일 오후 '최경희 총장 해임을 촉구하는 이화 교수들의 집회 및 시위'를 연다"고 밝혔다. 이대 교수협의회에는 교수 1000여명 전원이 가입해 있고, 이 중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는 교수는 140여명에 달한다. 교수들이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집단 시위를 예고한 것은 1886년 개교한 이대 130년 역사상 처음이다.

교협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김혜숙 교수(철학과)는 본지 통화에서 "입학과 학사 관리 관련 의혹 보도가 연일 터져나오고 있으나 학교 당국은 옹색하고 진실과 거리가 먼 변명으로 일관한다"며 "총책임자인 총장이 사퇴해야 한다. 아니면 재단이 책임지고 총장을 사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기-승-전-총장 책임론'… 왜?

평생교육 단과대 설립이나 현 정부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 딸 정유라(20)씨의 입학·학점 특혜 의혹 등 최근 이대 사태는 출발점은 다르지만 모두 '최경희 총장 책임론'으로 귀결되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7월 28일 평생교육 단과대 설립에 반대하며 본관 점거 농성을 시작했던 이대 학생들은 학교 측의 설립 계획 백지화 방침에도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81일째 점거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최순실 딸 풍자한 이대 게시물 - 16일 이화여대 교내에 현 정부의 비선 실세라는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학점 특혜 의혹을 풍자하는 게시물이 붙어 있다. 정씨는 지난 8월 3~8일 중국 구이저우의 패션쇼에 계절학기 현장실습을 다녀올 때 보디가드를 대동하고 비즈니스석을 이용했고, 평소 수업에 제대로 출석하지 않았는데도 학점을 인정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누구?]

[이화여대 '기-승-전-총장 책임론'… 왜?]

총장 퇴진을 주장하는 교수와 학생들은 "최 총장의 불통(不通·소통을 안 함) 행정이 이대 사태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2014년 8월 취임한 최 총장은 올해 3월 코어 사업(인문 역량 강화 사업)과 5월 프라임 사업(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 대학), 평생교육 단과대 사업까지 교육부 재정 지원 사업들을 따내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최 총장은 이런 사업들을 학내 의견 수렴 없이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교협은 "이화 추락의 핵심에는 최 총장의 독단과 불통, 재단의 무능과 무책임이 자리하고 있다"며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버티기로 일관하는 총장 때문에 이화인 모두의 자존심이 짓밟혔다"고 밝혔다.

현대판 '수렴청정' 의혹도 제기

이대 학내 분규의 밑바탕에는 재단 이사회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대는 학교법인인 이화학당 이사회가 총장 선임·해임을 포함한 대학 운영 전반을 관장한다. 현재 이사회 의장은 이대 출신으로 한국일보 사장을 지낸 장명수(72)씨다. 그러나 "실제 이사회의 의사 결정은 장 이사장이 아니라 윤후정(84) 명예총장이 쥐락펴락한다"는 얘기가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퍼져 있다. 윤 명예총장은 이대 총장(1990~1996년)과 이사회 이사장(2000~2011년)을 지냈다. 총장 퇴임 직후인 1996년 9월 사상 첫 명예총장에 올랐고, 현재 재단 이사를 겸하고 있다.

장 이사장은 지난달 교수 116명이 총장 퇴진 요구 성명을 내자 "서명에 동참하지 않은 교수들이 80%가 넘는 상황에 이사회가 총장 해임을 논의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7일 재단 이사회에서 윤 명예총장이 "우리 학교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경찰을 부른 적이 없다. (학생들의 점거 농성 초기에) 총장과 처장들이 학생들과 대화로 해결했어야 한다"고 하자, 장 이사장도 "총장에게서 비롯된 일인 만큼 총장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익명을 요구한 이화여대 교수는 "윤 명예총장은 '대왕대비'이고 장 이사장과 최 총장은 '아바타'에 불과하다"며 "이 정도면 현대판 '수렴청정' 아니냐"고 했다. 한 이대 교수는 교협 자유게시판에 익명으로 "명예총장직은 종신직인가. 윤 명예총장이 대학 설립자나 오너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는 비판 글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