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다른 사람으로 살아온 12년… 살인범은 자기 생일도 기억 못했다

조선일보
  • 김수경 기자
    입력 2016.10.15 03:00

    19년만에 잡힌 안양 호프집 살인범

    지난 1997년 경기 안양의 한 호프집에서 여주인 최모(당시 42세)씨가 한밤중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최씨 몸에선 흉기에 찔린 상처 11군데가 발견됐다. 그중 두 군데는 복부였지만 깊은 상처 9곳은 모두 목 근처에 나 있었다. 당시 수사를 맡은 경찰은 잔인하게 살해된 것으로 보아 치정에 의한 범행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이 호프집에 자주 오가며 최씨와 가깝게 지냈던 중국인 강모(47·당시 28세)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사건 현장에 있던 맥주병과 유리잔과 탁자에서 강씨의 지문이 발견됐고, 강씨의 등산 스틱도 있었기 때문이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은 강씨를 잡으려고 다음 날 안양 호계동 강씨 집을 급습했다. 하지만 강씨는 이미 중국으로 달아난 상태였다. 이후 강씨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고 19년간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 7월 이 사건 범인으로 강씨가 아닌 이모(52)씨가 붙잡혔다. 이씨가 과거에 살인을 하고 중국으로 도피했다는 첩보가 경찰에 접수된 것이다. 그런데 이씨의 지문이 강씨 지문과 일치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경찰은 이씨의 사진과 사건 당시 수사기록 사진을 대조했다. 이씨는 성과 이름, 나이를 세탁하고 밀입국해 살고 있던 강씨였다. 수원지검 안양지청은 지난 6일 최씨를 살해한 혐의로 강씨에게 징역 20년형을 구형했다.

    아들 병실서 우연히 알게 된 연하남

    경찰 조사에 따르면 강씨가 최씨를 만난 건 지난 1996년 12월 안양 한 종합병원 병실이었다. 당시 최씨의 중학생 아들이 자전거를 타다 교통사고로 입원한 상태였는데 마침 비슷한 시기 교통사고로 다리에 골절상을 입은 강씨가 최씨 아들과 같은 병실에 입원했었다. 최씨 아들이 강씨를 잘 따르자 아들 병간호를 위해 병실을 자주 찾은 최씨도 강씨와 친하게 지냈다. 최씨가 안양 시내 호프집을 운영하는 것을 알게 된 강씨는 퇴원하고 나서 최씨 호프집을 매일같이 찾았다. 몇 달 뒤엔 함께 성관계를 갖고 돈도 빌려주는 사이가 됐다.

    사건이 일어난 1997년 4월 10일은 강씨 생일이었다. 어머니와 집 근처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은 강씨는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 뒤 호프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강씨가 예정보다 일찍 호프집에 도착했을 때 최씨는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한 뒤 옷을 추스르고 있었다. 화가 난 강씨는 최씨에게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라고 따졌고 최씨는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상관하지 말라"고 대응했다. 강씨가 최씨에게 "불륜 사실을 아들에게 말하겠다"고 협박하자 최씨는 "네가 불법체류자라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맞섰다.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말다툼을 이어가던 강씨는 곧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씩씩거리며 집에 도착한 강씨는 어머니에게 "중국으로 가야겠다. 1시간만 나갔다 오겠다"고 한 뒤 호프집으로 돌아갔다. 경찰은 강씨가 이때 이미 최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보고 있다. 강씨가 호프집에 다시 찾아가자 두려워진 최씨는 부엌칼을 들고 방어하려고 했고 강씨는 이 칼을 빼앗아 최씨의 배를 찔렀다. 강씨는 이후 쓰러진 최씨의 목을 잔인하게 찔러 살해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교통사고로 다친 다리가 다 낫지 않은 상태였던 강씨는 늘 갖고 다니던 등산 스틱도 내팽개치고 줄행랑쳤다. 최씨는 과다출혈로 그 자리에서 숨졌다.


    불법체류 자진신고 후 출국

    곧장 집으로 간 강씨는 신분증과 통장,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 인천으로 향했다. 새벽 2시쯤 연안부두 근처 모텔에 짐을 푼 강씨는 스스로 불법체류 사실을 신고하면 별다른 처벌 없이 과태료만 내고 출국할 수 있는 출국명령 제도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날이 밝자마자 인천출입국관리소를 찾은 강씨는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계셔서 급하게 출국해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은 과태료 250만원을 받고 별다른 확인절차 없이 강씨에게 출국 명령 서류를 지급했다. 불법체류 사실을 신고한 다음 날 오후 2시쯤 강씨는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중국 다롄(大連)항으로 출국했다. 최씨를 살해한 지 40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살인범을 순식간에 놓친 셈이다.

    고향인 중국 선양(瀋陽)으로 달아난 강씨는 이후 각종 사업을 벌였다. 강씨 진술에 따르면 갓 도착했을 때 장례식 상여 꽃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을 했지만, 돈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고압설비 설치 일을 하면서 300만원에 가까운 월급을 받았던 강씨는 줄곧 '한국에서 일하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하고 생각했다. 미련을 떨치지 못한 강씨는 꽃 사업을 접고 한국에 대리석을 수출하는 무역업을 시작했지만, 그 수입도 한국에서 벌던 것에는 못 미쳤다. 2004년 급기야 강씨는 다시 한국에 들어갈 궁리를 했다. 출국명령을 받은데다 정상 입국하면 체포될 것으로 예상한 강씨는 사촌 동생에게 한국에 들어가서 돈을 벌고 싶은데 방도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강씨는 밀입국 브로커와 접선했다. 선양 한 술집에서 만난 브로커는 강씨에게 "문제없이 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며 "신분증에 필요한 사진 한 장과 미화 7000달러를 들고 단둥(丹東)항 시계탑 앞으로 나오라"고 지시했다.

    7000달러에 신분 세탁 '뚝딱'

    브로커 말대로 준비해 단둥항에 나간 강씨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 11명 정도와 함께 배를 탔다. 강씨 진술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눈이 가려진 상태로 8~10시간 후에야 배에서 내렸다. 인천항이었다. 살인을 저지른 지 7년 만이었다. 배에서 내려 승합차에 한 사람씩 타는 과정에서 강씨는 '이○○'이라고 쓰인 호구증(戶口證·중국의 신분증)을 건네받았다. 생년월일도 새로 받았다. 강씨의 원래 나이보다 다섯 살이 많고 태어난 날짜도 달랐다. 호구증엔 중국 동북부에 있는 랴오닝성(遼寧省)에서 발급했다는 도장도 찍혀 있었다. 경찰은 "실존 인물 개인정보에 사진만 강씨 것을 붙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브로커는 "과거 이름과 생년월일을 사용하면 안 된다. 지금 나눠준 신분증에 적힌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이 된 강씨는 이후 철저히 '이○○'로 살았다. 수원에 살면서 과거에 배웠던 고압전기설비 설치업체를 운영하며 직원 10여 명을 거느린 회사 대표가 됐다. 한 달 600여만원의 수익을 올리며 전세 5500만원짜리 집도 얻었다. '이○○'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은 여전했다. 강씨는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들키면 과거 범죄까지 들통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2011년 1월부터 6개월간 법무부가 '재외동포 고충해소' 정책을 시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10년 이상 불법체류한 사람이 해당 기간에 불법체류 사실을 자진하여 신고하면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구제해주는 제도였다. 체류허가신청서, 불법체류 입증서류, 호구증 등 서류 3가지만 있으면 합법체류자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강씨는 우리나라에 10년 이상 살아온 것처럼 서류를 위조해 중국인 '이○○'로 등록을 했고 외국인 등록증도 발부받았다. 1997년 법무부 자진신고 제도를 이용해 출국명령을 받은데 이어 우리나라 제도의 허술한 점을 또다시 악용한 것이다. 강씨는 그 이후로도 조용히 '이○○'로 살았다. 2012년엔 결혼도 했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살인범 처지를 벗었다고 생각했다.

    술 취해 털어놓은 '살인의 추억'

    지난 7월 "이○○이 예전에 사람을 죽이고 중국으로 도망쳤었다"는 내용의 첩보가 경찰에 입수됐다. 술을 마시면서 털어놓은 과거 이야기를 누군가 듣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이○○을 붙잡은 경찰이 지문을 채취해 보니, 1997년 호프집 살인사건 용의자 강씨가 자진 출국할 때 찍었던 지문과 일치했다. 경찰이 "당신이 강○○ 아니냐"고 추궁하자 강씨는 처음엔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자진 출국 서류에 있던 강씨 사진을 보여주며 재차 묻자 강씨는 고개를 떨궜다. 이후 강씨 조사는 19년 전 사건을 조사했던 안양 동안경찰서 최대준 경위가 맡았다. 최 경위는 "강씨는 자신의 진짜 생일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이씨로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2012년 강씨와 결혼한 아내도 경찰 조사를 받은 뒤에야 남편 본명이 강○○라는 것을 알았다고 진술했다.

    법무부는 1997년 강씨가 불법체류자 자진신고로 출국명령을 받아 곧바로 출국한 것에 대해 "수사기관이 사건을 인지하기 전 출국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최근엔 경찰과 공조하는 '외국인 신원확인 시스템'을 구축해 신분을 확인하고 있어 과거보다 외국인 범인을 찾아내는 시간이 단축됐다"고 했다. 2011년 시행한 '재외동포 고충해소' 제도에 대해서는 "불법체류자들을 양성화해 외국인으로 관리하기 위한 한시적인 정책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강씨는 오는 21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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