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名品가방 못사더라도, 高價 수건·치약 쓰며 대리만족?

조선일보
  • 유소연 기자
    입력 2016.10.15 03:00

    주방·욕실에 '스몰 럭셔리' 열풍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여·36)씨는 최근 쓰던 생활용품을 싹 바꿨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1만원 미만의 리필용 세제를 사서 쓰던 그는 이번엔 프랑스 천연 세제를 샀다. 2L에 3만원대로 기존에 쓰던 것보다는 배 이상 비싸다. 세안 수건은 최고급 면화로 만들었다는 3만원대 일본 제품으로, 치약은 개당 1만원대의 영국 제품으로 바꿨다. 김씨는 "월세를 살고 있기 때문에 집 인테리어를 바꾸기보다는 쓰던 물건을 고급으로 바꿔 기분 전환을 해봤다"며 "큰돈을 쓰지 않고도 호텔 같은 분위기를 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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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일본 미소카 칫솔, 독일 뫼베 수건, 프랑스 에타민 듀 리스 세제, 미국 칼드레아 세제. 불황기에는 고가(高價)의 소비재를 사는 ‘작은 사치’ 성향이 뚜렷해진다. /코트라·엠아이인터내셔널 제공
    고가의 가방 대신 유명 브랜드의 카드지갑·열쇠고리 등 소품(小品)을 사는 것으로 만족감을 채우는 '스몰 럭셔리(small luxury)' 열풍이 주방과 욕실 안으로 불어들고 있다. 대형 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기적으로 사서 채우는 생활용품을 해외에서 공수해오는 경우가 특히 많다. 고급 향수를 사진 않아도 섬유 유연제만큼은 프리미엄 제품을 쓰는 식이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화장품이나 향수 회사에서 방향제, 세탁 세제, 섬유 스프레이 등 생활용품을 출시하고 있다. 영국 향수 회사 '조 말론 런던'은 지난 2013년 175mL에 9만3000원짜리 섬유 전용 향수를 내놓았다. 프랑스 향수 브랜드 '메종 프란시스 커정'은 자사에서 인기를 끈 향수의 향(香)을 담은 세탁 세제를 1L에 5만원대 가격으로 출시했다. 올해 초부터 섬유 전용 향수를 쓰기 시작한 주부 전모(여·27)씨는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부분까지 투자하는 데 특별함을 느낀다"고 했다.

    생활용품의 고급화 바람은 점점 더 작은 물건으로 옮겨오고 있다. 한 장에 약 1만6000원인 독일의 뫼베 수건은 단독으로 울 세탁 해야 하는 등 관리가 번거롭지만 이른바 '명품 수건'으로 알려지면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수제(手製) 칫솔로 유명한 일본의 미소카 칫솔(약 1만1700원)도 출시된 지난 2007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전 세계에서 300만개 넘게 팔렸다. 치약은 미국의 테오던트, 이탈리아의 마비스, 영국의 유시몰, 스위스의 벨레다 등 선택 폭도 넓고 가격 부담도 크지 않은 편이다. 직장인 유모(53)씨는 "국내 치약 일부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해서 해외구매대행 사이트로 독일 치약을 사봤다"며 "작은 부분에서도 나를 소중히 여기는 기분이 들어 주방용품과 비누도 해외 브랜드로 바꾸게 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스몰 럭셔리 소비 역시 경기 불황의 한 단면이라고 분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자신의 경제 상황에 비해 원하는 소비 수준이 너무 높다고 생각되면 특정 제품에서는 사치스러운 소비를 해 스스로 위로하는 경향이 있다"며 "아무리 남루한 현실을 살더라도 명품 수건을 쓰는 순간만큼은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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