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1819년엔 '福쌈'이라 불려… 이젠 프리미엄 김밥도

조선일보
  •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입력 2016.10.12 03:00

    [52] 김밥

    김밥 사진
    소풍과 운동회, 야유회가 잦은 가을이면 김밥의 인기는 상한가를 친다. '전남 주민들은 해태(김)를 속칭 밥도둑놈이라고 부른다. 해태로 밥을 먹으면 밥이 속히 먹혀진다는 말이다. 우리는 벌써 원족(소풍)이나 운동회나 여행시에도 김밥을 먹는 습관이 들었다.'(1955년 5월 28일자 경향신문)

    달고 감칠맛이 강한 김과 밥을 같이 먹은 역사는 오래되었다. 이색(李穡·1328~1396)의 목은시고(牧隱詩藁)에는 말린 김을 일컫는 '해의(海衣)'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김은 짐, 해의, 자태(紫苔), 청태(靑苔), 건태(乾苔) 등으로도 불렸다. 한양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1819년)에는 복을 싸먹는다는 의미의 '복쌈'을 '박점(縛占)'이라고 부르면서 김에 밥을 싸먹는 것으로 적고 있다.

    김에 밥을 싸먹는 기록은 오래전부터 나오지만, 요즘 같은 형태의 김밥 기록은 20세기 들어서 나온다. 이 때문에 일본 김초밥(노리마키·海苔卷き)이 김밥의 원조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우리 김밥에는 초를 섞지 않고 속에 들어가는 재료가 노리마키보다 월등히 많다는 이유를 들어 일본 영향설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1950년대 후반이 되면 김밥은 소풍, 꽃구경, 기차 여행에 빠지지 않는 먹거리로 등장한다. 당시에는 김밥 속에 왜무짠지, 박오가리, 시금치, 표고 등을 넣었다. 통영의 뱃머리 김밥은 꼬치반찬 때문에 유명했는데, 1981년 여의도에서 열린 '국풍 81' 행사 때 '충무김밥'으로 널리 알려졌다.

    1986년 김밥용 김과 길이를 맞춘 소시지가 출시됐다. 1990년대 초에는 김밥용 치즈가 등장하는 한편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김밥 체인점 본사가 서울에만 30여개(1996년 6월 4일자 매일경제)에 이를 정도였다. 기존 분식집과 달리 손님이 주문하면 즉석에서 김밥을 말아줘 '즉석김밥'이라 불렀다. 2013년에 처음 등장한 '프리미엄 김밥'은 2016년에도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김밥 한 줄을 먹다 보면 여전히 한민족이 밥의 민족임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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