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치가 벌거벗은 날

    입력 : 2016.10.11 03:00 | 수정 : 2016.10.11 07:34

    [클린턴·트럼프 2차 TV토론]

    "힐러리를 감옥 보내겠다" vs "음담패설이 트럼프 실체"

    상대 가족 앞에서 "성추문" "악마" "부적격자" 90분 인신공격
    '더 나은 미국' 주제는 사라져… 美언론들 "사상 최악의 토론"

    - 성추문 공방
    "트럼프, 선거 내내 여성 모욕" "빌 클린턴은 여성 학대했다"
    - 클린턴 이메일 공방
    "승리땐 특검 통해 클린턴 조사" "트럼프가 나라 이끌지않아 다행"
    - 칭찬도 한마디
    "헌신적인 트럼프 자녀 존경" "클린턴은 포기 모르는 파이터"

    미국 미주리주(州)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학에서 9일(현지 시각) 열린 대선 2차 TV토론은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이었다. 시작부터 분위기가 냉랭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은 악수도 하지 않고 토론을 시작했다.

    음담패설 동영상 공개 파문으로 낙마 위기까지 몰린 트럼프는 클린턴이 아닌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공격으로 반격의 가닥을 잡았다. 토론 시작 90분 전 트럼프는 인근 호텔에서 빌 클린턴과 성추문으로 엮였던 여성 3명 등과 나란히 앉아 기자회견을 했다. 그중 한 명인 후아니타 브로드릭은 "행동이 말보다 더 나쁘다. 트럼프는 나쁜 말을 했을지 모르지만 빌 클린턴은 나를 성폭행하고 힐러리로부터는 위협을 당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 여성들을 토론장에도 데리고 왔다. 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딸 첼시 부부, 그리고 이 여성들과 함께 아내의 대선 토론을 지켜봐야 했다

    9일(현지 시각) 미국 미주리주(州)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에서 열린 미 대선 2차 TV 토론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오른쪽)가 방청객 질문에 답하고 있는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왼쪽)의 발언을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다.
    9일(현지 시각) 미국 미주리주(州)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에서 열린 미 대선 2차 TV 토론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오른쪽)가 방청객 질문에 답하고 있는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왼쪽)의 발언을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다. 이날 토론에서는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늘어지는 인신공격이 난무했다. /Getty Images 이매진스
    이렇게 시작한 토론이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두 후보는 성추문과 이메일 스캔들, 세금 의혹 등에 얽힌 서로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클린턴이 "마음에 엄청난 증오를 담고 있다"고 했고, 클린턴은 트럼프가 "사과를 할 줄 모른다"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클린턴을 '거짓말쟁이' '악마'라고 불렀고, 클린턴은 트럼프를 '대통령직에 부적합한 인물'이라고 했다. 토론 형식은 유권자 질문을 직접 듣는다는 '타운홀 미팅'인데, 두 후보는 서로 싸우느라 '더 나은 미국'에 대해 고민할 겨를이 없어 보였다.

    CNN은 "미국 정치가 일요일 밤을 기해 바뀌었다"고 했고, 워싱턴포스트는 "대선 토론 역사상 유례없는 어둡고 쓸쓸한 대결"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가장 지저분한 대결",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미 대선 역사상 가장 추잡한 싸움"이라고 했다. 토론 직후 여론조사 결과는 클린턴이 트럼프를 앞선 것으로 나왔다. CNN 조사에선 57% 대 34%, 유고브는 47% 대 4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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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토론장에 나온 빌 클린턴과 '클린턴의 여인들' - 9일(현지 시각) 미국 미주리주(州)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에서 열린 대선 2차 TV 토론장에서 빌 클린턴(오른쪽) 전 대통령과 딸 첼시가 토론을 지켜보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토론장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들도 참석했다. 앞줄 왼쪽부터 1990년대 백악관 직원으로 일할 당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캐서린 윌리, 1978년 아칸소 양로원에서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한 후아티나 브로드릭, 자신을 강간한 성폭행범을 클린턴 후보가 변호사 시절 변호했다는 케이티 셸턴(오른쪽 사진). /AP·AFP 연합뉴스
    하지만 트럼프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이날 트럼프는 빌 클린턴의 성추문을 집중 공격하면서 음담패설 파문을 어느 정도 희석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토론을 지켜본 한 공화당 인사는 "지난 48시간의 악몽이 잦아들기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반면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이날 한 어떤 해명도 음담패설 논란을 잠재우는 데 충분치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성추문 대결

    토론은 두 번째 질문부터 곧장 트럼프의 음담패설 파문으로 들어갔다. 트럼프는 "라커룸(탈의실)에서 하는 개인적 농담이었다"는 말로 무마하려고 했다. "자랑스러운 일이 아닌 걸 알고 있으며 미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여성을 엄청나게 존중한다"고도 했다. 이 말에 기자들 사이에 웃음이 터졌다. 그러고는 갑자기 말을 돌려 IS 테러 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클린턴은 "그 (음담패설) 동영상 테이프가 곧 트럼프"라고 말했다. 그 동영상이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선거 기간 내내 여성들의 얼굴을 거론하고 점수를 매기는 등 여성들을 모욕해왔고 흑인, 히스패닉, 장애인, 전쟁 포로, 무슬림 등을 공격해왔다는 점도 지적했다. 트럼프는 "정치역사상 빌 클린턴처럼 여성을 대한 사람은 없었다. 여성을 학대하고 힐러리 클린턴도 피해자들을 부당하게 대했다"고 맞받아쳤다. 클린턴은 남편과 관련해선 "그가 말한 것 중 많은 부분이 맞지 않는 얘기"라고만 했다.

    "클린턴을 감옥으로"

    트럼프는 1차 토론 때 클린턴의 정교한 공격을 방어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번엔 공세적이었고 자신감도 있어 보였다. 준비도 많이 한 것 같았다. 트럼프가 '별로 이룬 것도 없는 30년 정치인'이라고 몰아붙이자 클린턴이 "또 시작이네"라면서도 변명처럼 자신이 해온 일을 설명했다.

    미국 대선 2차 TV토론 주요 발언
    트럼프는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사적으로 쓴 이메일을 지워버린 데 대해 "부끄러운 줄 알라"고 했다. 유세할 때처럼 남을 비꼬고 약 올리는 듯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내가 승리한다면 법무장관에게 특별검사를 선임하게 해서 당신을 조사하겠다"고 했다. 클린턴이 "트럼프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이 이 나라를 이끌지 않는다는 게 감사한 일"이라고 하자 트럼프는 "당신은 감옥에 있을 테니까"라고도 했다. 트럼프는 유세 중에도 "힐러리를 감옥으로!"라는 구호를 자주 외친다.

    트럼프는 마이크 펜스 주지사가 지난주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 러시아에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과 관련,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해 자신의 러닝메이트 입장도 무시해버렸다.

    긍정적인 측면도 얘기하라

    이날 토론의 일반 질문자는 세인트루이스 지역에 사는 '무당파' 유권자들이다. 여론조사 회사가 선정했다. 클린턴의 눈은 이들에게 가 있었다. 질문자를 향해 무대 끝까지 걸어가 눈을 맞추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는 클린턴에 대한 공격에 전력투구했다. 사회자를 향해 "클린턴은 1분 넘게 얘기해도 뭐라고 하지 않고 왜 나는 몇 초만 초과해도 저지하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클린턴이 말하는 동안 뒤에서 삐딱한 자세로 바라보기도 했다.

    마지막 질문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한 청중이 두 후보에게 "당신이 존경하는 상대방의 긍정적인 측면을 하나씩 말해 달라"고 했다. 클린턴이 먼저 "나는 트럼프의 자녀를 존경한다"면서 "그들은 정말 능력 있고 헌신적"이라고 덕담을 했다. 자식들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트럼프는 "클린턴은 중단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파이터"라고 했다. 진흙탕 싸움으로 범벅이 됐던 90분 토론은 이 질문 덕에 그나마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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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선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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