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로봇 다리 달리기, 뇌파 컴퓨터 게임…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입력 : 2016.10.01 03:00

    다음주 제1회 '사이보그 올림픽'
    중증 장애인+첨단 기기의 결합… "궁극적으론 인류 위한 미래기술"

    지난 23일 서울 고려대 뇌공학과 이성환 교수 연구실. 휠체어에 앉은 김지아(35)씨의 머리에는 선이 주렁주렁 매달린 하얀 장치가 씌워져 있었다. 팔다리를 쓸 수 없는 사지마비 환자인 김씨는 모니터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지만, 비디오 게임 '브레인 러너'의 캐릭터는 자유자재로 장애물을 피해갔다. 김씨의 생각을 센서가 읽고 컴퓨터가 자동으로 키보드를 작동해 게임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성환 교수는 "사람이 특정한 행동이나 생각을 하면 뇌에서 전자기파의 일종인 뇌파(腦波)가 나온다"면서 "이를 머리에 쓴 센서로 읽고 분석하면 의도를 파악해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석 달 동안 전신마비 환자 4명이 같은 훈련을 했다.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불안감이나 피로를 호소하거나, 심하면 경련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이 교수는 "어떤 생각을 할 때 어떤 뇌파가 나오는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고, 정확히 특정한 뇌파만 나오도록 집중하기도 어렵다"면서 "현재 인식률이 70~80% 정도 된다"고 말했다. 브레인 러너는 일반인이 키보드를 이용하면 50초 정도에 끝낼 수 있다. 장애인이 뇌파로 조종하면 120~150초 정도가 걸린다. 이 교수팀의 김정우 연구원은 "몸을 오랫동안 쓰지 않은 선수들이기 때문에 원하는 동작을 떠올리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사이보그 올림픽에 한국 3팀 참가

    이 교수는 함께 연습한 4명 중 한 명을 뽑아 10월 초 스위스로 떠난다. 다음 달 8일 스위스 국립로봇연구센터 주최로 취리히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열리는 '제1회 사이배슬론(Cybathlon)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서이다. 사이배슬론 참가 선수들은 모두 중증 장애인이다.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은 장애 선수들이 순수한 신체적 능력을 겨룬다. 반면 사이배슬론은 로봇과 뇌파 탐지기, 특수 자전거 등 첨단기기를 착용한 채 하는 경기이다. 사이배슬론이 '사이보그(기계와 인간이 결합된 형태)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사이배슬론은 '로봇 의족 달리기' '특수 자전거 경주' '외골격 로봇 장애물 달리기' '로봇 의수 장애물 경기' '전동 휠체어 경주' '뇌 조종 컴퓨터 게임' 등 6종목이 있다. 미국·독일·일본 등 25국에서 72팀, 300여 명이 참가 신청을 마쳤다. 한국도 3팀이 출전한다. 이성환 교수팀이 뇌 조종 컴퓨터 게임, 공경철 서강대 기계공학과 교수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팀이 외골격 로봇 장애물 달리기, 김종배 연세대 작업치료학과 교수팀이 전동 휠체어 달리기에 각각 출전해 한국의 기술력을 선보인다. 이성환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뇌파를 감지하고 분석하는 연구가 활발하지만, 우리는 뒤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15팀 중 중위권 정도가 목표"라고 말했다.

    공경철 교수팀은 18년 전 뺑소니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1급 지체장애인 김병욱(42)씨를 선수로 선발해 공개 훈련을 진행해왔다. 김씨는 공 교수팀이 개발한 보행 보조 외골격 로봇 '워크온'으로 대회에 출전한다. 손에 쥔 버튼을 조작하면 워크온이 자연스럽게 원하는 대로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대회 코스는 경사로를 걸어올라 문을 연 뒤 계단을 내려와 지그재그로 놓인 징검다리를 통과하는 방식이다. 김씨는 "6개월 전 처음 공 교수가 훈련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다시 두 발로 걷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아직은 불안정하고 어색하지만,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움직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고려대 이성환 교수 연구실에서 뇌파 센서가 달린 두건을 머리에 쓴 마비환자 김지아씨가 생각만으로 컴퓨터 게임 속 캐릭터를 조종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이 교수팀은 10월 스위스에서 열리는 제1회 사이배슬론 대회에 출전한다. / 고운호 객원기자
    생각으로 가전제품 작동하는 헤드셋

    사이배슬론에는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재활로봇 세계 1위 기업인 이스라엘의 '리워크' 등 세계적인 연구 기관과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다. 조직위원장인 로버트 리너 취리히 연방공대 교수는 "장애인들을 위한 과학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전 세계에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미국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하고 있는 대회를 벤치마킹했다"고 말했다. 현재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무인비행체(드론), 무인자동차, 인간형 로봇 등이 모두 DARPA가 주최한 대회를 통해 개념이 확립되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사이배슬론도 외골격 로봇, 뇌파 인식 등 장애 극복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환 교수는 "장애인을 위한 기술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인류 전체를 위한 미래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팀은 뇌파 인식 기술을 사물인터넷과 결합한 헤드셋을 만들 계획이다. 이 교수는 "이 헤드셋을 착용하면 생각만으로 집 안의 가전 기구를 켜거나 끌 수 있고, 먼 거리에 있는 자동차나 비행기를 조종할 수도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경철 교수도 사람의 힘을 강화해주고 어려운 작업을 보조해주는 영화 '아이언맨' 속 슈트를 꿈꾼다. 그는 "한국의 외골격 기술은 리워크 같은 세계적인 회사에 뒤지지 않는다"면서 "다만 장애인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떨어져 아직 연구실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