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27세에 주지를 맡은 이래 50여 년을 살아온 김제 금산사 미륵전 앞에 선 월주 스님. 그는 건강 유지 비법을 묻자“늦게 자면 늦게 일어난다. 하루 7시간을 꼬박 잔다. 잠을 잘 자야 판단력과 체력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캄보디아 등에 우물 2300개를 팠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 식수난 겪는 사람이 16억명이에요.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부족합니다. 내 역할은 지금도 진행형이지 완성형이 아닙니다. 미수(米壽·88세)까지는 할 것 같고, 그 후에도 건강하면 더 해야죠."

전북 김제 금산사 조실(祖室) 월주(月珠·81) 스님이 최근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조계종출판사)과 법문집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민족사)를 펴내고 지난 26일 기자들을 만났다. 회고록 제목은 중국 선종(禪宗) 혜능 스님의 '육조단경'에 나오는 구절에서 따왔다. '세간(세상)에서 불법(佛法)을 찾고 깨닫고 전하고 더불어 살아야지, 속세를 떠나서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토끼 뿔, 거북 털처럼 불가능한 것을 찾는 헛된 일'이란 뜻이다.

월주 스님은 젊은 시절 '화두 공부의 즐거움'을 체험했다고 했다. 스승 금오 스님이 주신 '이 뭣고'를 화두로 수행하면서 어느 순간 번뇌망상이 멀어지는 경험을 했다는 것. 하지만 이후에도 종무행정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일하면서 싸운다'는 예비군 구호처럼 '공부하면서 실천하자'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회고록은 한국 현대 불교의 역사와 불교계 사회복지 역사와 다름없다. 월주 스님은 이날 "제 인생은 40년씩 두 시기로 나뉜다"고 했다. 전반 40년은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받고, 출가해 수행하면서 종무행정을 겸했던 시기. 후반 40년은 바깥으로 눈을 돌려 '깨달음의 사회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인 기간이다.

193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세 때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그는 조계종이 독신 승려 종단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고, 1980년과 1994년 두 차례 총무원장을 지내면서 종단의 토대를 튼튼히 닦았다. 승려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원, 포교를 맡는 포교원을 별원(別院)으로 독립시켰고,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을 만들어 불교에도 사회복지 개념을 도입했다. 총무원장 중심제 역시 그의 소신이었다. 그가 첫 번째 총무원장을 맡았던 1980년 10월 27일에는 신군부가 전국 사찰을 덮쳐 스님들을 연행해 구타·고문한 '10·27 법난(法難)'이 벌어졌다. 당시 그는 총무원장직을 내놓고 외국으로 3년을 떠돌아야 했다.

월주 스님은 "그때 미국과 동남아 등을 돌아다니면서 복지에 눈떴다"고 말했다. 대부분 나라 종교는 모두 고아원, 양로원 등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더라는 것. 당시의 자각은 경실련, 공선협,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으며 국제 구호단체인 '지구촌공생회', 위안부 피해 할머니 쉼터인 '나눔의 집', 함께일하는재단 등으로 구체화해 현재까지 이어진다. '굶는 이에겐 법(法·진리)보다 밥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펼쳐온 일들이다.

2010년 캄보디아에 1000번째 우물을 완공해 학생들에게 물을 퍼주는 월주 스님. 지구촌공생회는 현재 캄보디아에만 우물 2200여 곳을 파줬다.

그가 머무는 금산사 만월당엔 통나무를 켠 다탁(茶卓)도 없고, 책장도 나무 무늬 테이프를 붙인 검소한 것이다.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성격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회고록에서 불교계의 '오도송(깨달음을 얻은 후 읊는 게송)'이나 '임종게(입적할 때 남기는 게송)'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님은 "살아온 생애가 훌륭하면 그것으로 족하지 임종게 없이 돌아가신 분의 상좌(제자)들이 임종게를 (만들어) 발표하거나 어설프게 수행한 사람이 오도송 내는 것은 부당하다"며 "나는 임종게 없다"고 했다. 이런 '까칠함'은 그가 교유한 불교계와 사회 인사 70여 명에 대한 평(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불교계 선배이건 전직 대통령이건 자신의 입장에서 본 공과(功過)를 분명히 적고 있다.

그의 평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균형'이고 신념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월주 스님은 "그동안 시국 발언도 여러 차례 했으나 이념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한 것"이라며 "원칙에 입각한 대안 제시만 했지 투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최근 활동에 대한 뿌듯함은 감추지 않았다. "지구촌공생회가 저개발 국가에 우물과 학교를 만들어 준공식 하는 날은 아침부터 그렇게 좋고 행복할 수가 없다"며 "주는 기쁨, 받는 기쁨이 합쳐지면 평화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