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고은과 하루키의 차이

    입력 : 2016.09.26 03:04

    정상혁 문화부 기자
    정상혁 문화부 기자
    노벨문학상의 계절이 돌아왔다. 고은 시인이 또 후보로 불려 나왔다. 동시에 그를 향한 비아냥도 시작됐다. 10년 넘게 치르는 연례행사다. 외국 도박꾼들이 유명 베팅 사이트를 통해 노벨문학상 후보를 점친 뒤 배당금을 걸고 순위를 발표하는데, 대략 10위권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 측이 후보를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기에 진짜 고은이 심사 대상에 올랐는지 알 수 없다. 도박적 예견에 따르면, 이번에도 수상 가능성은 크지 않다. 네티즌들은 벌써부터 고은을 향해 '스파링 파트너' '직업적 만년 후보'라며 이죽대기 시작한다. 수상자 발표일에 맞춰 자택에 취재진이 몰려드는 야단법석을 피하기 위해 이번에 고은은 외국에 머물 예정이라 한다.

    고은은 억울할 것이다. 매년 국가대표로 차출돼 연전연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이 전적으로 작품성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 역학관계 등이 고려되기 때문이다. 2012년 노벨문학상을 탄 중국 소설가 모옌도 "노벨상 수상자가 반드시 가장 탁월한 건 아니다"라고 단언하지 않았던가. "노벨상 갈망은 변형된 서구중심주의의 발로"라며 노골적으로 폄훼하는 한국 작가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노벨상 상사병'은 지난 5월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때 단적으로 드러났다. 언론이든 출판사든 수상 소식 앞에 "노벨문학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는 수식을 붙였다. 그것은 '맨부커상' 수상이 아니라, '노벨문학상에 버금가는 맨부커상' 수상이었다.

    처지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비슷하다. 일본을 대표해 거의 매년 최고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또 자국민의 절대적 관심 속에서 매년 좌절하고 있다. 다만 고은의 사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국에서만 수백만 권의 책이 팔린다는 점이다. 2013년 근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발매 당시 서점 앞에서 장사진을 치던 일본인들을 기억한다. 발간 1주일 만에 발행 부수 100만권을 찍는 나라. 노벨문학상이 국가의 문화적 위상을 상징한다면, 작가뿐 아니라 그 나라 국민 역시 노벨상 수상에 일정의 지분과 책임이 있다. 그러니 일본인들은 하루키와 노벨상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을 갖춘 셈이다.

    지난 1월, 미국 문학평론가 마이틸리 라오는 미국 시사 주간지 뉴요커에 한국의 노벨문학상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내다본 글을 썼다. 내용이 이렇다. "서울의 가장 큰 서점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 식자율은 98%에 달한다. 출판사는 매년 4만권의 새 책을 내놓는다. 다만 2005년 경제 규모 상위 30개국 중 한국의 1인당 독서 시간이 가장 짧았다. 고은 시인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되지만, 정작 그의 시는 한국에서 많이 읽히지 않는다." 통계청이 지난 4월 발표한 '한국인의 생활시간 변화상'에 따르면, 독서 시간은 평일 기준 1999년 9분에서 2014년 6분으로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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