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클래스] 화사함을 자아내는 예리하고 화려한 연주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입력 : 2016.10.16 09:36

    “베토벤은 제멋대로이고 괴팍한 인물이었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내면이 참 따뜻한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워낙 커서 그렇게 강렬하게 표출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6월 서울 LG아트센터와 성남 티엘아이아트센터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베토벤을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는 오는 10월 18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리는 마티네 콘서트에서 또다시 베토벤 소나타를 들려준다.

    세계적인 콩쿠르 석권한 순수 국내파


    “연주를 앞두고 있으면 그 작곡가가 추구했던 음악이 무엇이었는지 연구합니다. 연주할 곡을 해석한 책을 읽고 작곡가의 생애도 다시 보면서 그 작곡가가 그때 느꼈던 감정을 저도 함께 느껴보려고 하지요. 그다음 내 색깔을 입힙니다. 그렇게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저도 연주 색깔이 강해 ‘대장부 같다’는 소리도 듣지만, ‘내 음악의 따뜻한 면도 알아줬으면’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베토벤에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신지아의 연주는 예리하면서 화려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크리스털같이 명징한 소리가 화사함을 자아낸다. 그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라 너무 솔직하게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남들보다 감정의 진폭도 커서 슬픈 감정은 더 슬프게, 기쁜 감정은 더 기쁘게 느끼죠. 그게 제 연주에 묻어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은 그에게 일상이었다.

    “엄마가 저를 임신했을 때부터 모차르트를 들려줬다고 합니다. 태어나보니 네 살 위 언니(바이올리니스트 신아라)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죠. 만 세 살 때 엄마가 과자 상자로 바이올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진짜 바이올린을 주면 망가뜨릴 수 있으니까요. 과자 상자에 30cm 자를 붙이고, 수수깡을 활 삼아 켜게 하셨죠. 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없듯 바이올린은 제게 그냥 일상이었습니다. 머리로 배우기 전에 본능적으로 흡수했습니다. 몇 년 전 연기 학원을 다녔고, 그게 제 연주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연기에 대해 체계적・이론적으로 가르치면서 ‘이 부분을 어떻게 표현할지’ 말로 풀어 설명하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전에는 누군가 제게 ‘어떻게 연주하느냐?’ 물으면 ‘그냥 나오지 않아?’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는 외국 유학 경험이 전혀 없으면서 세계적인 콩쿠르들을 연달아 석권한 순수 국내파로 유명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합격한 그는 주말마다 전주 집과 서울을 오가며 김남윤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를 사사했다. 김남윤 교수를 그는 ‘제2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전주예중과 전주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해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그는 유학 대신 콩쿠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다. 2001년 대한민국 청소년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은 이래 예후디 메뉴인 국제 콩쿠르 주니어 부문, 요한슨 국제 청소년 현악 콩쿠르,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 티보바가 국제 콩쿠르,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 하노버 국제 콩쿠르,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등에서 수상한 데 이어 2008년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2012년 퀸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3위를 했다. 지독하게 노력했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실패나 좌절 없이 승승장구한 연주자로 보인다. 그에게 좌절한 경험은 없는지 물었다. “바이올린을 시작한 때부터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목표로 쉼 없이 달렸습니다. 한 콩쿠르가 끝나면 수상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도 잠시, 바로 다음 콩쿠르를 준비했으니까요. 그냥 밥 먹듯이 연습하면서 바이올린에 대해 한 번도 회의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뒤늦게 사춘기가 왔었나 봐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행복하지도 않은데 평생 힘들게 해야 하나?’라고 처음으로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꽤 오래 갔어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앞두고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으니까요. 그러다 ‘이왕 할 것 죽기 살기로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원없이 연주했고, 결과도 좋았어요. 뭔가가 안 풀리면 바로 그 일로 극복할 수밖에 없나 봐요. 연주 때문에 생긴 문제는 결국 연주로 돌파했으니까요. 그때가 제 음악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이후 연주 하나하나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음악 인생을 콩쿠르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콩쿠르로 실력을 입증하는 게 초급 과정이었다면 이제 중급 과정 정도를 밟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게 콩쿠르라면, 콘서트에서는 아무리 완벽하게 연주해도 내 틀 안에 갇혀 있으면 청중의 공감을 얻을 수 없죠. 콩쿠르에 참가할 때는 아무리 멋진 풍경을 봐도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순간순간을 마음속에 담으면서 성장하려고 노력합니다. 고전음악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숙제 같아서 길게 봐야 합니다. 나 자신이 매년 달라지듯 음악도 해마다 무르익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이든 정신이든 너무 혹사하면 힘들어서 놓아버릴 수 있으니, 나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려고 합니다. ‘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는 게 목표입니다. 다가오는 30~40대는 더욱 기대돼요. 경험과 감수성은 풍부해지고, 그것을 몸으로 뽑아낼 체력도 뒷받침될 테니까요.”

    그는 지난해 기타리스트 두 명과 함께 세계 민속음악을 연주한 앨범 〈칸토 안티고(Canto Antigo)〉, 올해 6월에는 바흐와 슈베르트 곡을 연주한 앨범 〈인 라이브(In Live)〉를 냈다.

    “바흐는 서양음악의 출발점과 같은 음악가라 시도하기 조심스럽고 심리적 압박감이 크지만 그만큼 계속 욕심이 생깁니다. 슈베르트는 바이올린 독주곡이 얼마 되지 않아 기회가 왔을 때 무조건 해야 해요. 너무 자극적이지 않게 보여줄 듯 말 듯 강약 조절을 해야 하는 표현이 제게는 조금 생소했습니다.”

    개성을 지키되 폭을 넓혀가는 연주자

    그는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지 KBS 고전음악 프로그램 〈문화빅뱅 더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대중과 더 가까워졌다.

    “한 회에 많으면 4~5명씩 다양한 분야의 음악가들을 만나 연주할 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어떤 감정을 싣는지 물어보면서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너무 가벼워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되 대중 눈높이에서 쉽고 재미있게 풀어가려고 노력했죠. 밤을 꼬박 새우고 녹화하러 가도 힘든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카메라가 꺼졌을 때도 방청객과 대화하며 다양한 분야의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그는 앞으로도 기회가 되는 대로 대중과 소통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다. 9월 말 그는 도쿄에서 일본 음악가들과 함께 실내악 콘서트를 연다. 2008년 롱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부터 그는 일본에서 인기 연주자로 떠올랐고, 우리나라 공연까지 쫓아오는 일본 열성 팬들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제가 일본인은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한다면서 ‘사이다 같은 느낌’이라고 하시더군요. 제 옛날 사진까지 챙겨 와서 사인을 받아 가시는 분들도 있어요.”

    10월 16일에는 대한민국국제음악제 폐막 공연에서 스승인 김남윤 교수와 함께 무대에 서고, 12월 25일에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와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콘서트, 12월 31일에는 예술의 전당 제야음악회 무대에 오를 계획이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의 새 앨범에도 참여해 4곡을 함께 연주한다.

    “제가 가진 색깔이 너무 강해 버려야 하나 고민한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색깔을 지키면서 점점 폭을 넓혀 다양성을 갖추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거의 무의식적으로 해왔지만 갈수록 음악이 정말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져요. 제가 전하는 음악을 듣고 사람들이 위안과 행복을 느꼈으면,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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