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주민증 나이, 건강 나이

  • 송태호·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입력 : 2016.09.24 03:00

    [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병원 찾는 어르신들 나이 올려 말하는 경향
    나이는 숫자에 불과… 올리거나 내리지 말고 활기차게 사는게 중요

    주민증 나이, 건강 나이
    진료를 받으시던 할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내 나이가 낼모레면 팔십인데 몸에 좋은 운동이 뭐가 있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74세 아니신가요? 팔십 되시려면 6년이나 남았는데…" 하고 하마터면 대꾸할 뻔했다. 그분은 만 74세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나 "팔십이시면 아무래도 관절에 무리가 가는 요가나 에어로빅보다는 물속에서 걷는 운동이나 게이트볼 같은 것이 좋지요"라며 분위기를 맞춰드렸다. 어르신들은 나이를 올려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80대 중반이면 벌써 마음이 90줄에 가 있다. 어떤 분은 묻지도 않았는데 호적이 잘못되었다며 슬그머니 5~6세 올려 말하기도 한다. 나이를 많이 먹는 게 좋은 일도 아닌데 반올림을 잘도 하신다.

    대학 신입생이 술병으로 고생하기에 술을 줄이라고 충고하며 "아직 법적으로 술집에 다닐 나이도 아닌데…" 했더니 자기가 스무 살이라면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진료 기록부를 보니 1998년생으로 만 18세였다. 술집에서 주민등록증을 검사하면 걸리는 나이다. 1998년생인 내 큰딸도 자기가 20세, 2001년생인 둘째 딸은 자기가 16세라고 주장한다.

    진료실에 꼬맹이가 왔기에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펴고 "다섯 살"이라고 대답했다. 그 아이를 데려온 할머니는 굳이 여섯 살이라고 다시 말하며 아이에게 말했다. "○○야, 넌 여섯 살이야." 아이는 자기가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인지 의아한 표정이 됐다. 물론 주민등록번호에 따르면 만 5세다. 10대와 어르신들은 왜 나이를 올려서 말할까? 10대라면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에 그런다고 하지만 이미 나이 드신 것에 대해 대접을 받고 있는 어르신들의 심리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혼기가 꽉 찬 사람들에게 명절은 결코 반가운 시절이 아니다. 만나는 집안 어른들마다 나이를 들먹이며 한마디씩 하니 말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에 살다가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사촌 동생이 추석날 아침 일찍 왔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30대 중반 아가씨에게 내 부모님은 "어서 짝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며 은근한 압력을 가하신다. 나도 한마디 해야 하는 분위기라서 "아직 좋은 사람이 없냐"며 나이를 물었다. 1983년생이니 33세인데 우리 집에서 그녀의 나이는 물경 34세로, 33세라고 말하는 사람은 당사자와 나밖에 없었다. 그녀는 생일이 지나야만 나이가 바뀌는 것으로 알고 있는 미국 시민권자여서 자기 나이를 왜 34세라고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대한민국에 있는 동안만큼은 34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 만났을 때 나이부터 파악한다. 나이가 많으냐 적냐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를 정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여서, 학번을 묻든지 친구가 누구인지를 물으면서 나이를 짐작하고 "그러면 ○○년생이겠네요" 하며 상대방을 대한다. 모르는 사람과 시비가 붙어 말싸움을 하다가 결국 "너 몇 살이야?" 하고 느닷없이 나이를 묻는 건 우리가 세계에서 유일한지도 모른다.

    평균 수명과 건강 상태가 좋아지면서 생물학적 나이에 0.8을 곱한 나이가 진짜 자기 나이라는 말도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 나이를 올리거나 내릴 게 아니라 나이에 상관없이 활기차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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