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만화 다 죽어가고 있다." 10년 전, 서울 코엑스에서 '2006 산다! 우리만화' 전이 열렸다. 불법 스캔과 도서 대여점 난립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 만화계의 현실을 진단하고 부흥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당시 만화가들은 "출판사나 작가 모두 붕괴 직전"이라고 호소했다. 10년이 지난 현재, 한국 만화계는 사상 최고의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종이에서 디지털로 이동해 웹툰으로 진화한 한국 만화는 차세대 문화 산업의 기수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웹툰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5년(4360억원)까지 하락세를 보이던 전체 만화 시장 규모는 2012년 7600억원으로 증가해 배 가까이 성장했다. 지난해 KT경제경영연구소는 2020년까지 웹툰 시장 규모가 1조원 이상이 되리라 전망했다.

◇종이→화면, 유료→공짜, '판' 뒤집자 길 열렸다

2003년 포털사이트 다음을 통해 본격 개막한 웹툰 시장은 'PC'와 '공짜'의 파격으로 시작됐다. 만화 컷을 세로로 배열해 마우스 스크롤로 내리며 소비하는 새로운 스타일은 PC 환경에 최적이었다. 지난달 방한한 미국 만화이론가 스콧 매클라우드는 "한국 웹툰의 세로 형식은 혁신 그 자체"라며 "웹의 무한한 화폭(infinite canvas) 덕에 공간 제약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웹툰이 인기를 끌면서 일부 유명 작가는 회당 500만원 이상을 받게 됐고, 연 10억원 가까이 버는 작가도 등장했다. 원고료, 광고료, 2차 콘텐츠 관련 수익 등을 통한 부가 수익도 크게 늘었다. 모바일 시대와 함께 웹툰 시장이 지속 확장하면서 유료 보기, 웹툰 연재 후 종이 출판의 관행도 정착되고 있다. 이현세·문정후 등 종이만화계의 스타들도 속속 웹툰 시장에 진입하고 있고, 이말년·조석 같은 웹툰 작가들은 TV 예능 프로그램에 불려 나올 만큼 인기 스타가 됐다.

①데뷔 20년 문정후의 ‘고수’②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③조석의 ‘마음의 소리’.

◇칸이 비좁다… 무한 확장하는 만화

만화 분야에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는 이미 구문(舊聞)이다. 만화 원작 첫 케이블 드라마 OCN '키드갱'(2007) 이후 수많은 작품이 TV와 극장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2013년 만화가 정연식은 본인의 웹툰 '더 파이브'를 영화화했고, 2014년 '미생'의 대성공을 경험한 윤태호는 "웹툰 플랫폼은 이미 드라마·영화 등 수많은 매체와 이해 관계자의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연예기획사 판타지오는 아이돌 웹툰 출시 뒤, 웹툰 속 등장인물을 실제 아이돌로 만들어 데뷔시키는 시도를 감행했다. 판타지오 관계자는 "웹툰은 이미 10~20대 젊은이의 생활 콘텐츠가 된 지 오래"라며 "이 파급력을 연예 산업에 활용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좁다… 만화 한류(韓流) 새 바람

웹툰 업체들은 미국과 일본·중국 등 글로벌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NHN이 만든 코미코는 2013년 일본에 처음 진출한 뒤 현지 웹툰 플랫폼 1위에 오를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다졌다. 레진코믹스는 북미 사이트에서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올해 들어 활발하게 현지화를 시도하고 있다. 펀툰엔터테인먼트는 지난 6월 중국 바이두 애니(Baiduani)그룹에 웹툰 60편을 수출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도 한국 웹툰의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달 발간한 '동남아시아 만화·웹툰 콘텐츠 시장조사 연구보고서'를 통해 "현지 소비자들이 직접 생산·소비할 수 있는 웹툰 플랫폼 제공, 한류 콘텐츠와 연계한 웹툰 인지도 확산, 다양한 상품화, 단계별 부분적 유료화" 등 동남아 진출 전략을 제시했다.

기업들도 바빠졌다. KT는 지난 5일 기존 '올레마켓웹툰'을 확대 개편한 '케이툰'을 새로 출시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웹툰 사업 부문을 별도로 떼어내 '네이버웹툰'을 설립했고, 다음도 지난 1일 '다음웹툰 컴퍼니'를 설립했다. 기획 단계부터 하나의 소재로 웹소설·웹툰·웹드라마를 동시에 제작하기도 한다. 카카오페이지가 웹소설을 웹툰으로 옮겨 중국 포털사이트 QQ닷컴에 수출한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는 일일 유료 차트 1위, 베스트셀러 만화 1위, 최단 기간 1억 뷰를 돌파했다.

◇외형 확장… 내실 가다듬을 때

현재 웹툰 제공 업체는 포털 및 유료 사이트를 포함해 47개에 달하고, 지난해 상위 5개 사(社)를 합산하면 웹툰 회원은 1000만명에 육박한다. 너도나도 웹툰 사업에 뛰어들면서 독자 확보를 위한 선정성 경쟁 심화와 업체 난립에 따른 콘텐츠 부실도 우려된다. 웹툰산업협회 임성환 이사장은 "비슷비슷한 작품으로 이뤄진 과잉 공급 시장이 돼 갈 우려가 있다"면서 "장르 다변화와 작품성 유지가 뒷받침돼야 현재의 위상이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