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미국 대선 민심

    입력 : 2016.09.18 03:16

    미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 유세장에 가보면 중년 백인 남성이 주축이 된 지지자들이 주먹을 흔들며 낮고 굵은 목소리로 "그녀를 감옥에 가둬라!(Lock her up!)"고 외친다. 얼마 전 워싱턴에서 열린 보수 정치 단체 회의에선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이 연단에 올라 "클린턴이 권력을 잡으면 미국이 유럽식 사회주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어느 보수 강성 정치인은 "할리우드에선 늘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데 계획경제에 사회주의 하자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슷한 시기 뉴햄프셔주에선 민주당 경선에서 패했지만 여전히 지지자를 몰고 다니는 샌더스 상원의원을 위한 행사가 열렸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을 받아 워런이라는 작은 마을에 가봤다. 노천극장에 모인 동네 사람들은 "진보 정치의 고향 뉴햄프셔에서 혁명은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상위 1%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경제'를 주장해 온 샌더스는 "투쟁을 계속해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지나가던 관광객이 "경선 끝난 지가 언젠데"라며 혀를 찼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요즘 미국 정치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분열'이다. 인종·세대·지역을 기준으로 나누면 전혀 다른 나라처럼 소통이 안 된다. 워싱턴을 둘러싼 495 순환 고속도로 '벨트웨이'만 기준 삼아도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벨트웨이 안은 클린턴, 밖은 트럼프 지지자가 많은 식이다. 다른 접전 주(州)도 비슷해서 도시는 클린턴, 농촌은 트럼프 구도다. 8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일흔 다 된 후보들이 험하게 싸우는 선거가 그저 악몽일 뿐"이라고 말한다.

    ▶며칠 전 클린턴이 뉴욕 9·11 기념식장에서 일찍 빠져나가다 실신하다시피 한 모습이 공개됐다. 클린턴 캠프는 왜 아픈지 쉬쉬하더니 사실은 사흘 전 폐렴 진단을 받았노라고 밝혔다. 그러자 트럼프 측이 집요하게 제기한 클린턴 건강 이상설이 사실일 수 있다며 온갖 불치병 이름이 나돌았다. 언론은 뭐든 일단 숨기고 보는 '은폐병'이 클린턴에겐 폐렴보다 더 심각한 병이라고 꼬집었다. 건강과 신뢰에서 다 타격을 입은 클린턴 지지율은 접전 주 곳곳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 미 대선에서 가장 희한한 점은 유권자들이 클린턴과 트럼프를 불신하다 못해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예측 불허라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갈지 몰라 두렵고, 힐러리는 도통 마음을 알 수 없어 무섭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선거엔 도무지 긍정과 희망의 기운이 없다. 선거에 대해 물어보면 다들 헛웃음을 짓는다. 잘못 뽑았다가 4년 견딜 일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올 법하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