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의 新줌마병법] 그 댁 아내는 안녕하십니까?

    입력 : 2016.09.13 03:05

    착하고 야무진 아내, 대가족 중노동 명절에 응석도 불평도 없더니 몸과 마음에 병이 났네
    억척 여인인 줄 알았더니 따뜻한 엄마 품 필요했네

    김윤덕 문화부 차장
    김윤덕 문화부 차장
    제 이름은 마동수입니다. 자동차 부품 만드는 회사의 만년부장입니다. 부장만 10년짼데 빽, 능력, 입담 모든 면에서 부실하여 은퇴 전 상무님 소리 듣기는 그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들딸 대학 보내고, 저축은 없지만 빚도 없으니 이만하면 80점은 되는 인생 아닐까요?

    실은 제 가장 큰 자랑은 20년을 돈독히 살아온 아내입니다. 마누라 복은 업계 최고라고 동료들 부러워할 만큼 괜찮은 여자지요. 회사 경리였는데 심성도 곱고 1원의 오차도 없이 일을 야물딱지게 해내 별명이 '소장금'이었습니다. 미인은 아니지만 플레어스커트 밑으로 드러난 종아리가 어찌나 단아한지 멀대 같은 숫총각 마음을 단박에 앗아갔지요. 고졸이라고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사랑에 학력이 어디 있나요? 아버지 형제 다섯에 우리 형제만 넷, 1년에 제사만 자그마치 여덟 번인 종손 집안에다 층층시하 동서들이 진을 쳤는데도 시집와준 게 감지덕지하지요. 전생이 바위였던 양 무뚝뚝한 시어머니에게도 어찌나 살갑게 대하는지요. 명절이면 이삼십 명 손님은 기본인데도 아내는 "초등학교 때 엄마 돌아가시고 아버지 남동생이랑 단출히 살아 그런지 일가친척 모여 시끌벅적한 풍경이 항시 부러웠어요" 하며 봉선화처럼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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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아이 중학교 들어가면서는 아내 일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장남인 큰형이 미국으로 이민 가면서 집안 제사를 떠맡게 된 겁니다. 둘째 형 내외는 맞벌이고 셋째 형수님은 툭하면 앓아누우니 별수 있나요. 거기다 새벽예배 다녀오시던 어머니가 빗길에 넘어져 허리를 다치신 뒤로는 일이 산더미로 불었지요. 거동 불편해지신 어머님이 기어이 저희 아파트로 들어오신 겁니다. 그래도 아내는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집안에 계시면 아이들 교육에도 좋고 살림과 인생의 지혜도 배울 수 있다며 반가워했지요.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그 댁 아내는 안녕하십니까?
    /이철원 기자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심신이 예민해진 어머니는 밤이고 낮이고 아내만 찾습니다. 잠시 잠깐 외출도 못하도록 달달 볶습니다. 아내가 시들시들 마르기 시작한 건 그 무렵입니다. 복숭아처럼 통통했던 뺨은 움푹 패고, 밥술도 뜨는 둥 마는 둥에, 말수도 나날이 줄었습니다. 아내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안 건 지난 봄 아버지 제사 때입니다. 복도에서 도둑 담배 피우던 제게 둘째 형수님 다가오시더니 "서방님, 동서한테 신경 좀 써주세요" 합니다. 느닷없이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니 형수님 왈, "제사에다 어머님까지 떠넘긴 게 미안해 시내로 불러 점심을 한번 샀는데 동서가 눈물을 펑펑 흘리더라"는 겁니다. "너무 힘들고 외롭다고, 언젠가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는 거예요. 내가 심리학 전공해서 아는데 동서처럼 저렇게 속내 안 드러내고 쌓아두는 사람이 나중에 큰일 저질러요."

    그로부터 며칠 지난 날입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거실로 나갔는데 화장실 앞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아내였지요. 아랫배를 부여잡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왜 그래 여보? 아픈 거야?" 하고 어깨를 흔드니 아내가 바락 소리를 지릅니다. "아파요. 왜 안 아프겠어. 나도 아프다고요!" 그러더니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낍니다. 어린애처럼 "엄마, 엄마~" 하면서요. 아내도 아플 수 있다는 걸, 억척 내 아내에게도 모든 걸 받아줄 어머니 품이 필요하다는 걸 그날 밤에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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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는 지금 수술 중입니다. 자궁에 커다랗게 부풀어오른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입니다. 벌써 두 시간째입니다. 수술실로 들어갈 때 아내는 내 손을 꼭 잡았습니다. "여보, 무서워…." 금방 끝난다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된다고 달래주었지만 실은 제가 더 무서웠습니다. 아내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으니까요. 아내의 바지런한 걸음걸이와 무구한 웃음소리 사라진 집안은 이미 무덤입니다. 병원 창밖으로 청승맞게 내리는 가을비를 보며 다짐했습니다. 수술만 잘되면 집안 제사는 두 번으로 줄여 집집이 돌아가면서 하고, 명절도 한 번만 치를 거라고요. 나머지 한 번은 아내와 단둘이 여행을 떠날 거라고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톨스토이가 말했던가요. 아내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응석과 불평을 이제 남편인 제가 받아줄 겁니다. 상무도 전무도 못 된 남편이지만 더없이 포근한 어머니 되어 물집과 굳은살뿐이었던 아내의 인생을 보듬어줄 겁니다. 사람을 살리는 건 의사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으니, 이 사내 웃어야 할까요 울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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