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보랏빛 투구꽃은 식물계 毒性 챔피언

    입력 : 2016.09.08 03:05

    요즘 高山에 흔한 투구 닮은 꽃… 병정들이 나란히 보초 서는 듯
    매년 새 뿌리 만들어 조금씩 이동… 필요한 양분 얻기 위한 지혜
    맹독성 덩이뿌리는 사약 재료… 독성은 생리작용 노폐물 쌓인 것

    김민철 논설위원
    김민철 논설위원
    오대산 상원사에서 미륵암 가는 길엔 이른 가을꽃들이 가득했다. 키가 큰 산비장이, 각시취, 까실쑥부쟁이가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며 반겼다. 물봉선도 지천이고 살짝 벌어진 과남풀 꽃에 벌이 들어가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신비한 보랏빛 투구꽃도 나타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올여름 긴 폭염을 견뎌내고 피어난 꽃들이라 유난히 대견했다.

    투구꽃은 꽃 모양이 정말 특이하다. 한 송이 길이가 3cm 정도 될까. 꽃을 보면 왜 투구꽃이라 하는지 금방 짐작할 수 있다. 위쪽 화피가 투구 또는 고깔처럼 전체를 덮고 있는 것이다. 한 꽃대에 10여 송이까지 달려 있는 모습이 병사들이 질서 정연하게 보초를 서고 있는 것 같다.

    투구꽃은 제주를 제외한 전국 산에서 비교적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해발 400m 이상 계곡과 능선에서 산다고 하니 웬만한 등산로에선 볼 수 있겠다. 8월 말 피기 시작해 9~10월 절정을 이루기 때문에 가을을 대표하는 꽃으로 손색이 없다. 꽃 색깔도 가을 높은 산에 많은 보라색이다.

    사람들에게 투구꽃은 몇 년 전 나온 영화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로 익숙할 것이다. 여주인공 한객주로 나오는 한지민이 투구꽃을 고깔처럼 쓰고 있는 영화 포스터도 인상적이었다. 영화 초반엔 대규모 각시투구꽃 농장이 나오는 등 이 꽃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김탁환의 소설 '열녀문의 비밀'을 원작으로 한 것인데, 소설에는 각시투구꽃이 아예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영화 제목을 그렇게 붙였는지 의아하다. 각시투구꽃은 1m까지 자라는 투구꽃에 비해 크기가 20㎝ 정도로 작다고 '각시'라는 접두사가 붙었다. 꽃 이름에 각시, 애기 등이 붙어 있으면 작다는 뜻이다. 각시투구꽃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고 북한이나 중국 쪽 백두산에 가야 볼 수 있다.

    [김민철의 꽃이야기] 보랏빛 투구꽃은 식물계 毒性 챔피언
    /김성규 기자
    투구꽃만큼 얘깃거리가 많은 꽃도 드물다. 먼저 이 꽃은 식물은 움직이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식물이다. 투구꽃에는 큼직한 덩이뿌리가 달리는데, 이게 해마다 썩고 이듬해에는 옆으로 뻗은 뿌리에서 새싹이 나와 조금씩 이동한다. 뿌리가 같은 장소에만 있으면 필요한 양분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자리를 옮기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투구꽃 뿌리를 약으로 쓰기 위해 캐려면 6~7월에 캐는 것이 좋다고 한다. 너무 일찍 캐면 알이 없고 8월부터는 꽃을 피우느라 영양분이 빠져나가 알이 부실해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투구꽃은 맹독성 식물로 유명하다. 덩이뿌리 독성이 식물계 최강으로 알려져 옛날 사약의 재료로 쓰였다. 이 덩이뿌리에 있는 아코니틴이라는 성분이 몸속에 들어가면 내장출혈, 신경마비, 호흡곤란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뿌리가 독성이 가장 강하지만, 꽃잎이나 잎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투구꽃을 만진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면 퉁퉁 부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갈 때 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꽃이다. 다만 한방에서는 투구꽃 뿌리를 '초오(草烏)'라 부르며 희석시킨 다음 몸을 따뜻하게 하고 원기를 회복하게 하는 약재로 쓰고 있다.

    투구꽃 외에 천남성, 협죽도, 팥꽃나무도 맹독성 식물이다. 천남성도 사약 재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봄에 피는 꽃은 뱀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처럼 독특하게 생겨 한 번 보면 잊기 어렵다. 가을에 빨갛게 익는 열매도 인상적이다. 팥꽃나무는 주로 남쪽과 서쪽 바닷가에서 자라는데, 이른 봄 잎이 나기 전에 가지를 덮을 정도로 많은 꽃이 달린다. 연보라색 꽃이 향기도 좋다. 그러나 꽃에 호흡 억제와 경련을 일으키고 낙태를 유발하는 유독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 옛날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팥꽃나무꽃으로 낙태를 시도하다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아 나라에서 이 나무를 베어 내도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연을 안 다음부터는 팥꽃나무꽃을 보면 애잔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남부지방에서 조경수로 쓰는 협죽도(夾竹桃)는 독성 때문에 수난을 당하고 있다. 댓잎 같은 잎, 복사꽃 같은 붉은 꽃을 가졌다고 이 같은 이름을 얻었다. 꽃은 한여름에 주로 붉은색으로 피는데, 강한 독성이 알려지면서 근래 일부 지자체에서 제거 작업을 벌였다. 일부러 먹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데 베어 내기까지 하는 것은 심한 것 같다.

    식물 독성은 왜 생기는 것일까. 학자들은 식물이 방어용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리 작용의 노폐물이 쌓인 것으로 보고 있다. 동물처럼 노폐물을 배설할 통로가 마땅치 않아 체내에 쌓인 형태라는 것이다. 식물이 살다 보니 만들어지는 부산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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