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값 깎다 보니… 책 가치도 깎아내리더라"

    입력 : 2016.09.06 03:00 | 수정 : 2016.09.06 11:16

    [도서정가제 보완 앞두고 프랑스·영국 대표 서점 가보니]

    - 佛 최대 개별 서점 '지베르 조제프'
    새 책과 중고 책 나란히 진열 "종이책 위기·高價 속 생존 전략"

    - 자유가격제 英서 할인 없는 '돈트'
    국가별 문학·정치·역사서 전시, 할인보다 추천 내세워 흑자 달성
    非영어권, 다양성 지키려 정가제… 영어권은 美아마존 때문에 불가

    같은 유럽이지만, 책값에 관한 한 프랑스와 영국은 정반대 지점에 있다. 1981년부터 엄격한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있는 프랑스와 달리, 1995년 이후 도서정가제를 폐지한 영국은 할인이 자유로운 자유가격제다. 11월 21일은 현행 도서정가제 시행 2주년. 수정·보완을 앞둔 우리나라 입장에서의 교훈은 어떤 게 있을까. 두 나라의 대표적 서점을 찾아 문화 다양성, 중고책, 구간(舊刊) 할인 등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현안들을 살폈다. /편집자

    프랑스 소르본 대학 거리의 지베르 조제프(Gibert Joseph) 서점 파리 본점. 30만종·100만권 보유로 개별 서점 중 프랑스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에는 특유의 진열 방식이 있다. 새 책과 중고 책을 같은 공간에 나란히 전시한다는 것. 최고의 해설과 특유의 가죽 장정으로 이름난 갈리마르 출판사의 플레이아드 총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2층 문학 코너의 플레이아드 서가는 오카지옹(Occasion·중고)이라고 쓰인 노란색 스티커가 붙은 책들 투성이였다. '팡세'가 포함된 파스칼 전서(全書) 한 권의 정가는 70유로(약 8만6500원). 하지만 바로 옆 '오카지옹' 딱지 붙은 '중고책 파스칼'은 40유로였다.

    ◇중고 책 함께 파는 파리의 조제프

    아이러니다. 프랑스는 1981년부터 엄격한 정가제를 실시한 도서정가제 종주국. 5% 이상 할인은 절대 금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선택적 융통성'이 있었다. 지베르 조제프는 한국이 주빈국이었던 지난 3월 파리 도서전의 후원사이자, 전국 18개 지점을 보유한 프랑스 최대 서점 체인 중 하나. 파리 본점 5층 회장실에서 만난 올리비에 조제프 회장의 일성(一聲)은 물론 도서정가제 지지였다. 그는 "도서정가제 덕분에 프랑스 작가의 인적 다양성과 지역 서점의 다변화가 가능했다"면서 "출판 산업은 가격이 아니라, 서점의 서비스와 책의 가치로 경쟁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주제별 분류가 아니라 나라별 분류로 이름난 영국의 돈트 서점 내부. 그 나라의 여행서뿐만 아니라, 정치, 역사,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겠다는 야심이다. 특유의 아치형 창문과 스테인드글라스도 이름났다. 이 서점이 직접 제작한 에코백(천가방)은 런던 멋쟁이들의 필수품으로 꼽힌다.
    주제별 분류가 아니라 나라별 분류로 이름난 영국의 돈트 서점 내부. 그 나라의 여행서뿐만 아니라, 정치, 역사,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겠다는 야심이다. 특유의 아치형 창문과 스테인드글라스도 이름났다. 이 서점이 직접 제작한 에코백(천가방)은 런던 멋쟁이들의 필수품으로 꼽힌다. /어수웅 기자
    하지만 종이책 독자가 줄고 있는 건 프랑스라고 예외가 아니다. 일반인에게는 또 책값 부담도 크다. 서점의 '생존'이 관건이 된 상황에서, 지베르 조제프의 전략 중 하나는 중고 책이라고 했다. 그는 "하루에 중고 책을 1만권 사들이고 있다"면서 "우리 서점 전체 매출의 30%는 중고 책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정가제 폐지한 영국에서 할인 없는 돈트

    하이드 파크 북동쪽 말리본가에 자리 잡은 런던의 돈트 서점(Daunt Books) 본점을 찾았다. 1995년 도서정가제가 폐지된 뒤 영국은 '1+1/2'(하나 사면 두 번째 책은 반값), '3 for 2'(두 권 값에 세 권) 할인이 난무한다. 하지만 돈트는 한 푼 에누리도 없는 것으로 이름났다. 그런데도 승승장구. 1990년 제임스 돈트가 처음 이 동네에서 시작한 이래 2016년 현재 6개 지점으로 늘었을 만큼 급성장했다.

    지베르 조제프 서점의 올리비에 회장. 노란색 중고 딱지가 붙은 플레이아드 총서 앞에 섰다.
    지베르 조제프 서점의 올리비에 회장. 노란색 중고 딱지가 붙은 플레이아드 총서 앞에 섰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름다운 아치와 스테인드글라스가 매혹적인 창문이 손님을 맞았다. 현판에는 'Through Books Arranged by Country'라고 적혀 있다. 돈트가 성공 이유로 자처하는 특유의 분류 방식이다. 주제별 분류가 아니라, 국가별 전시. 지난해까지 탈북 작가 장진성의 '위대한 지도자'가 먼저 보이던 한국 서가에는 이제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가 첫 줄에 꽂혀 있다. 여행 서적은 물론, 그 나라의 문학·정치·역사도 한눈에 보여주겠다는, 순발력 있는 큐레이션이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창립자 제임스 돈트는 한때 280개 지점까지 보유했던 영국 최대 서점 체인 워터스톤스(Waterstones) 사장으로 2011년 스카우트됐다. 당시 도산 위기였던 워터스톤스는 이후 무분별한 할인보다 '추천'에 집중했고, 도산 위기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를 달성했다고 했다. 돈트 말리본 지점장 잭 로노(Rono)는 "가격 경쟁은 결국 그 서점과 책의 가치를 스스로 갉아먹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의 추천을 신뢰하는 독자들 덕분에 돈트는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비영어권 국가에서나 가능한 정가제


     

    프랑스 파리 서점 수 그래프
    도서정가제 실시 여부와 상관없이 두 나라의 서점 숫자는 줄고 있다. 베스트셀러만 팔고 있는 마트나 신문 가판대 덕에 영국 전체 서점 숫자는 유지되고 있지만, 주제별·취향별 장서를 보유한 전통적 서점은 급감 추세다. 영국의 독립 서점은 2013년 905개에서 2016년 786개로 줄었고, 파리의 서점은 2000년 1051개에서 2014년 756개로 급감했다.

    우리나라의 현행 도서정가제는 3년 한시법으로 올해 말부터 보완·수정 논의가 시작될 예정이다. 책을 문화로 볼 것이냐 상품으로 볼 것이냐의 관점과 별도로, 도서정가제에 관해 영국과 프랑스를 갈라놓은 또 하나 이유가 있다. 영국은 미국처럼 영어를 쓰는 나라이자 시장이라는 점. 수시로 대폭 할인을 시행하는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직접적 지배하에 있다. 영국 출판인협회 사이먼 리틀우드(Littlewood) 대외협력위원장은 "미국과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호주나 영국이 도서정가제를 실시한다는 것은 난센스"라면서 "그 나라 고유의 문화적 다양성을 지킨다는 취지의 도서정가제 실험은 비(非)영어권 국가에서나 가능한 호사(luxury)"라고 했다. 그는 또 "돈트 서점 사례에서 보듯 결국 중요한 것은 제도보다 사람"이라면서 "한국이 현지 사정에 맞는 도서정가제로 고유의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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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는 어떤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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