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조선] 서지민 옥공예가 & 예명지 주얼리디자이너 “너는 할 수 있다”

    입력 : 2016.09.25 17:52

    모녀는 보석을 다루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어머니는 전통이라는 이름의 보석을, 딸은 현대라는 이름을 가진 보석을 다룬다.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면서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서지민 옥공예가와 예명지 한양대 금속공예과 교수이자 주얼리디자이너 모녀를 만났다.

    인터뷰를 나누는 두 시간 내내 두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덕분에’였다. ‘딸 덕분에’ 이 나이에 이런 인터뷰 자리가 다 생겼다는 어머니와 ‘어머니 덕분에’ 보석디자이너로서 살 수 있는 큰 행운을 가지게 됐다는 딸. 어머니 덕분에 좋은 길을 걷게 되었고, 딸 덕분에 항상 좋은 자극을 받고 있으며, 서로의 존재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도 했다. 성격도 생김새도, 유난히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이는 모녀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태도가 꼭 닮은 보석디자이너이자 교수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 위치한 ‘예명지-궁중옥’ 매장이자 쇼룸은 모녀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다. 우아하면서도 깊이 있는 색감의 전통 옥은 어머니 서지민 씨의 작품이고, 화려하고 현대적인 보석은 딸 예명지 교수의 작품. 각자의 작품들이 대략 절반의 비율로 사이좋게 나뉘어 진열되어 있는데, 전혀 다른 느낌의 보석들이지만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

    서울산업대 등 강단에 주로 섰던 서 교수는 지금 은퇴를 한 상태. 여든을 바라보는 40년 차 디자이너 어머니는 그럼에도 여전히 전통을 공부하고 있고, 한창 활발하게 활동할 시기인 25년 차 딸은 본인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예명지 교수는 한양대 금속공예과 등에 출강하면서 한창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외국에서 여는 전시가 많아 굉장히 바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9월에는 런던에서 전시가 있어서, 막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참이었다.

    쇼룸이 근사하고 보기 좋네요. 두 분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공간이에요.

    서지민 저는 이제 나이가 팔십이 다 되었어요. 그런데 딸 덕분에 공부를 할 수 있고, 하루에 하나라도 디자인을 볼 수 있어요. 이곳(쇼룸)에서요. 인생이 새로 피어나듯이 제가 되레 딸에게 배우는 것이 많아요. 알게 모르게 가슴 포근히 안길 수 있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는 요즘이에요. 산업대 교수를 오래 하다가 퇴직을 했는데, 아직도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쁩니다. 딸이 옆에 있으니 든든한 지원군이에요.

    예명지 제 나이가 오십이 다 되어가서 그런지, 어디 가면 언니냐고 많이들 물으세요.(웃음) 남들이 생각하기엔 감도 떨어질 것 같고 아직까지 활동하느냐고 보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팔십이 다 되셨는데 더 열심히 공부하세요. 제가 외국에서 사 온 책은 어머니가 다 보고 계시고요. 학문적인 어머니를 늘 가까이에서 지켜보다 보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크게 배울 수 있어요.

    보통 같은 길을 걷는 모녀는 풍기는 느낌이 비슷한데, 두 분은 결이 많이 다르신 것 같아요. 외모부터 스타일까지.

    예명지 어머니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인데, 딸은 놀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웃음) 보시면 아시겠지만 외모도 많이 다르고, 어머니와 저는 결이 달라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길을 따라 걸으신 건가요? 어떻게 보석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셨어요?

    예명지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어요. 그저 평범하게 졸업하고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어머니도 저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대학교 졸업반 시절 어머니와 함께한 파리여행이 모든 것을 바꿨어요. 어머니가 ‘조선 최고의 옥 남양옥’이라는 이름을 달고 전시를 하는데, 현장에서 보니 저도 꿈이 생기더라고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죠. “너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서지민 전시를 하면서 파리에 있는 동안 딸을 보면서, ‘저 아이는 뭔가 자기 느낌이 있는 대로 하겠구나’라는 생각은 했어요. 자기 갈 길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좋아하는 일을 목표로 삼는다는 것은 중요하거든요. 돌아와서 가족회의를 하고 결정을 했지만, 딸이 잘할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예명지 그때 어머니의 “너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어요. 지금도 기쁜 일이 있을 때면 어머니께서 그 누구보다 기뻐해주시는데, 가장 힘이 되는 것은 마음이에요. 제가 앞으로 가는 데 있어서 신념이 강한 편인데, 어머니께서 긍정적인 말씀을 해주신 것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기에 선뜻 권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딸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힘든 모습을 가까이에서 봤기에 선뜻 하기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한데요.

    서지민 그렇진 않았어요. 같은 디자인을 하더라도 딸은 재해석을 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가능성을 봤어요. 아주 어렸지만, 좋아하는 일에 목표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예명지 사춘기 때는 머리 한번 안 묶어주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없지 않았죠.(웃음) 엄마의 힘든 모습을 봤다기보다는, 일을 시작하면서 힘든 지점이 있었죠. 2대째 자연스럽게 일을 하는 사람을 금수저라고 부른다면, 처음 시작하는 사람보다 배로 힘들다는 생각은 많이 했어요.

    너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후 예명지 교수는 일본의 보석학교인 히코미즈노 보석전문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보석디자이너로서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옥공예가의 원조 격인 서지민 교수의 딸이라는 편견의 시선도 많았지만, 유학시절 1등으로 학교를 졸업할 정도였던 본인만의 재능을 숨길 순 없었다.

    대를 이어서 같은 길을 걷는 경우, 초반에 겪는 편견은 통과의례인 것 같아요.

    예명지 제가 운이 좋게 청와대에서 상도 받고 인정을 꽤 많이 받았었어요. 여기저기서 상을 많이 받았는데 어머니가 줬다는 헛소문이 돌기도 했죠. 그런 일들을 겪다 보니까, 그게 초반에는 스트레스였는데 그걸 극복해야겠더라고요. 그것보다는 앞으로 해나가는 데 있어서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그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냥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주위의 시선을 버티고 나아가는 힘이 제게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금수저 이야기 때문에 인간이 싫어질 때도 있었어요. 제가 노력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까요.

    그 과정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도 편치는 않으셨겠어요.

    서지민 저는 원래 교수가 되려고 역사학과에 들어갔었는데, 공부를 하다가 옥을 만나게 됐어요. 저는 옥 광산이라는 물려받은 금수저가 있었어요. 숙명적으로 받은 걸 어떻게 만들까, 하는 정도였어요. 딸은 타고난 금수저는 아니에요. 딸은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 자기가 개발한 것을 구축해나가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가 감탄을 하고 놀랄 때가 많아요. 예술혼이라는 것이 자기의 영감 안에서 튀어나오는 거잖아요.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 제1기법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고 감동이에요. 예술혼이라는 것은 각자가 타고나는 것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도 가장 힘이 되는 존재는 어머니시죠?

    예명지 제가 이 길을 택하고 방향을 정하는 데 있어서, 어머니께서 “네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어떤 방향을 찾았을 때 “너에게 맞는 길을 찾았구나” 해주실 뿐이에요. 제가 어머니께 물려받은 가장 큰 것은 긍정적인 마인드예요. 남들은 어머니가 오랫동안 보석을 해오셨으니까 대물림처럼 자연스럽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시작부터 달랐잖아요.

    어렸을 때는 일하는 엄마한테 서운할 때가 많은데. 두 분은 어떠셨어요?

    예명지 저도 초등학교 때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서운할 때가 많았어요. 사회생활 하시니까 엄마의 부재에 대한 서운함이 있어요. 제가 열한 살 아들이 있는데 사춘기가 왔어요. 제 어릴 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미안하다, 엄마가 다른 것은 해주지 못했지만 평생 친구가 될 수 있고, 같이 할 수 있다. 꿈이 생겼다면 이야기해줄래. 너의 꿈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가 될 거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어머니가 제게 해주신 이야기더라고요.

    그런 조력자가 있으면 참 든든할 것 같아요.

    예명지 저는 고민이 생기면 친정에 가요.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지난 일요일에도 어머니 집에서 잤어요. 여러 가지 결정에 대해서 고민이 생길 때 가면 어머니에게서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힘들 때 도움이 되는 존재인 거네요.

    예명지 아주 힘든 시기에 어머니도 포기하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한 2년 정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극복했어요. 그 이후에 어머니가 “난 네가 무섭다”라고 하셨어요. 좋은 표현인 거죠. 그만큼 성장했다는 말이잖아요. 예전에 해주신 “할 수 있다”라는 말보다 강렬해진 표현이에요.

    서지민의 딸에서 예명지의 엄마로

    시간이 흐르면서 세대교체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터뷰에 응하면서 모녀는 서지민의 딸에서 예명지의 엄마로 권력구조가 바뀐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현역에서 물러나 딸의 활약을 지켜보는 엄마의 시선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지고, 엄마의 뒤를 이어 시작한 일에서 본인의 이름에 존재감이 생긴 딸의 얼굴에서는 뿌듯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분의 시선에서 다양한 감정이 느껴지네요.
    예명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존경의 대상이었어요. 사람들이 다 좋아하니까요. 지금은 그런 어머니가 저를 가장 많이 격려해주시니까, 그런 부분이 참 좋아요.
    서지민 잘하고 있으니까 기대가 되고 좋죠.

    세대교체가 잘 이루어진 것 같아요.

    서지민 이제 서지민이 아니라 예명지 엄마로 나가잖아요. 그게 좋고 뿌듯해요.

    예명지 저도 이번에 인터뷰하면서 생각했어요. 제가 요즘 개인적으로 사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넘어서는 거예요. 아버지가 광산을 하시고 어머니는 옥공예를 하신, 장신구의 세계에서 거의 원조 격이니까요. 어머니가 해외박람회에 처음 나가셨던 40년 전의 사진을 보면 그런 느낌을 더 많이 받아요. 저는 요즘 해외활동이 많은 편인데,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찾고자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보석디자이너로서 서로의 칭찬을 해주신다면.

    서지민 저는 받은 것을 그대로 한 건데, 딸은 끊임없이 기법 연구를 하고 노력을 해요. 우리가 했던 것은 궁중유물이니까 박물관에 있는 것들을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데, 딸은 재해석을 하는 거잖아요. 자기가 개발하고 개척하면서 새롭게 걷는 모습을 보면 감탄을 보내게 돼요.

    예명지 어머니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시는 스타일이에요. 끝까지 도전하는 정신, 긍정적인 마음, 세상을 보는 직관력, 자기의 위치를 만들어가는 것이 정말 대단하세요. 제가 요즘 어디 가면 나이에 비해서 활동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데요. 그게 어머니의 영향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공부를 놓지 않으시고 열심히 하시니, 저도 자연스럽게 자극이 되거든요.

    돌아보니 우리 어머니의 달랐던 점은 무엇이던가요.

    예명지 어머니는 늘 저를 격려해주고 칭찬을 해주세요. 어떤 날은 듣기 좋을 때도 있고, 화가 많이 났을 때는 또 그게 삐딱하게 들릴 때도 있어요. 그럴 땐 “엄마는 내가 진짜 잘하고 있어서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거야, 아니면 긍정적인 멘트가 입에 밴 거야” 하면서 투덜대기도 해요.(웃음) 어머니는 가만히 계시다가 나중에 말씀해주세요. 진지하게 나를 믿고 있다고요. 기본적으로 누가 나를 믿고 있는데, 그분이 내가 봐도 괜찮은 분이라면 그보다 더 큰 힘은 없죠.

    앞으로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으세요?

    예명지 하이클래스의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나가고 싶어요. 나이 들면 그런 말을 못 해요. 어렸을 때는 ‘대통령이 될 거야’ 이야기를 해도 고학년 올라가면 ‘대통령이 되려면 무엇 무엇을 해야 하는데’ 느낌이 들잖아요. 저도 그런 시기가 있었는데, 요즘 생각은 다시 그런 말을 해볼까? 그런 마음이 들어요. 그런 길을 향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웃음)

    서지민 잘 가고 있다. 바로 가고 있는 거예요.(웃음)

    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어머니는 “잘하고 있다”, “맞아”, “그럼” 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경청하는 태도, 그것이 이 어머니가 물려준 최고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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