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진해운 거센 후폭풍, 문제해결 못 하는 정부 왜 필요한가

조선일보
입력 2016.09.05 03:12

한진해운 선박에 대한 입항·하역 거부가 계속 확산되는 등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의 후폭풍이 예상보다 거세다. 미국·일본·싱가포르·인도 등 주요국 항구에서 입·출항 불허 조치가 잇따르면서 한진해운 선박 141척 중 절반(68척)의 발이 묶였다. 운항이 정상화되려면 당장 각국 항구에 밀린 외상 대금 수천억원부터 갚아야 하나 정부와 채권단은 "자금 지원 불가(不可)"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 여파로 우리 수출 업체들이 해외 납기를 못 맞추는 사례가 속출하는 등 수출 전선에도 차질을 주고 있다.

이제 외국에서는 한국 정부가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국가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는 휴일인 4일에도 관계 부처 회의를 열어 대체 선박 투입 등 대책을 내놓았으나 이 정도로는 진정될 기미조차 없다고 해운업계는 밝혔다. 주무 부처 장관은 "향후 2~3개월 동안 상당한 어려움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평론가 같은 말만 하고 있다. 한진해운은 망할 지경인데 그 결과 운임이 올라가 외국 해운사들만 장사시켜주는 꼴이 됐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가능성은 유동성 위기가 시작된 지난 5월부터 예상됐던 일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주주인 한진그룹과 산업은행에 책임을 떠넘기고 어떤 대비책도 준비하지 않다가 지난 31일에야 겨우 비상 대책 회의를 열었다. 석 달 동안 손 놓고 있었던 정부의 무사안일이 한진해운 사태를 속수무책의 물류 대란으로 키웠다.

지금 가장 우려되는 것이 한진해운의 영업망이 무너지는 사태다. 법정관리 신청으로 국제 신인도가 떨어지면서 한진해운의 취항 노선 네트워크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진해운이 40년간 쌓아온 귀중한 자산이 빈 껍데기가 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진해운의 우량 자산을 현대상선에 넘겨 사실상 합병 효과를 내겠다는 정부 계획도 수포로 돌아간다. 세계 7위의 국적(國籍) 해운사를 그냥 송두리째 죽이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한진해운 사태는 정부와 관료 집단에 과연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해운 산업을 책임진 해수부는 "구조 조정은 금융위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팔짱만 끼고 있었다. 금융위는 "한진그룹의 추가 자구 없이는 지원도 없다"고 배수진만 쳤다. 부처를 조율해 범정부 대책을 만들어야 할 유일호 부총리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신속히 비상벨을 울려야 할 최고 컨트롤 타워도 없었다.

관료 집단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작금의 상황은 보통 심각하지 않다. 한진해운뿐 아니라 미세 먼지 파동이나 전기료 누진제 문제 등에서도 해당 부처는 엎드린 채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구조 조정을 논의한 서별관 회의에 대한 청문회가 관료들을 더 얼어붙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제 관료의 정책 판단에 과도한 정치적·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정부와 관료 집단은 '최후의 해결자'여야만 한다. 문제 해결 능력을 잃은 정부가 왜 필요한가.


[키워드 정보] 법정관리 제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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