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연습생 생활을 거쳐 댄스 혼성그룹으로 데뷔했지만 가수로서의 무명생활은 길디길었다. 국내 최고의 기획사에서 보컬트레이너로 활동하며 크게 성공했지만, 벌어들인 돈은 사업으로 전부 날리고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던 그 시절, 교제하던 여자친구와의 사이에서 딸이 태어났지만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 참 굴곡진 인생이었다.

그런 그의 삶에 반전이 찾아온 것은 2012년, 를 통해서였다. 당시 더원은 매 경연마다 1위에 선정되며 초고속 명예졸업을 했고 비로소 가수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데뷔 14년 만이었다. 이후 , 등에 출연하며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한 그는 최근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가왕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중국 후난위성TV의 무대에 올라 첫 경연에서 1등, 최종 3위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이제 그는 중국 중학교의 영어시험 문제에 등장하고, 상하이 최고층 빌딩에 옥외광고가 걸릴 정도로 유명인사가 됐다. 중국말도 못하고 노래할 때 발음이 어색한 부분도 있을 텐데 이해심을 갖고 사랑해준다는 게 너무나 감사하단다.

중국 팬들에게 받은 선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10대인 팬이 제 사진으로 직접 디자인한 1만 피스짜리 퍼즐도 받았고, 상아나 몸에 좋다는 희귀 돌 같은 특이한 선물도 많이 받았어요. 또 중국 분들이 염주를 좋아하는데 저희 집에 한 200개 정도 있죠.(웃음) 그런데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말 한마디였어요. “중국 내에서 활동하는 타국 연예인 중에 밉지 않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고, 유일하다.” 그 말을 듣고 ‘아 내가 잘하고 있구나’ 생각했죠. 잘못 비쳐져서 거만하게 보이고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마음먹고 있는 걸 알아주는 것 같아 고마웠어요. 팝송이나 다른 해외 음악을 들을 때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느낌이 오는 것, 누구나 경험하잖아요. 중국 땅을 밟으며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게 그거였어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노래에 진심을 담아 전달하자.’ 제가 노래하는 공연장에 계속 찾아와 주시는 것, 우울증이 심했는데 제 노래를 듣고 나았다거나 삶의 희망을 갖게 됐다는 편지를 보내주시는 걸 보면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요.

중국 노래를 부르기도 하던데 중국어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한국에서도 활동하다 보니까 요즘에는 잘 못 해요. 말이 트이려고 하면 까먹어요. 내 생각을 깊이 있게 얘기할 수 있겠다거나 뭔가 들리는구나 싶으면 한국에 오니까. 중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고 저번 주에 교보문고 가서 책을 한 7권 샀어요.(웃음)

중국 음악과 한국 음악은 무언가 다른 점이 있나요?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굉장히 다른데도 비슷한 느낌이 있어요.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문화교류가 많았고, 또 같은 아시아라 그런지 모르겠는데 정이나 한처럼 비슷한 정서가 있더라고요.

최근 한국 팬들과는 을 통해 만났다. 9연승을 거두며 인기몰이를 한 음악대장 하현우를 꺾고 2연속 가왕 자리에 올랐지만, 아이유의 ‘좋은 날’을 부른 후 가왕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호불호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더원 씨가 부르는 밝은 노래들도 좋아합니다. 정규앨범에 들어 있는 ‘그랬음 좋겠다’ 같은 노래요.

발라드나 느린 템포의 곡들엔 해피엔딩보다는 이별, 그리움, 자기만의 애잔한 사연에 대한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잖아요. 제가 그런 노래를 부른 경력이 오래되다 보니 어색해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밝은 노래를 불러야 할 때도 됐다는 분들도 있죠. 저는 호불호 반응들이 다 마음에 들어요. 안 어울린다는 분들은 어쨌든 제 발라드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참신하고 재미있다는 분들은 가능성을 봐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해요. 내년 초에 앨범을 내려고 곡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밝고 행복한 업템포 곡도 두 곡 정도 준비하고 있어요. 10년만 어렸으면 댄스곡도 했을 텐데.(웃음)

더원 씨 음악을 들으면 왠지 태어났을 때부터 노래를 잘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에요. 감수성은 있었던 것 같은데 진짜 많이 연습했어요. 뻔한 말이지만 운동이든 공부든, 뭐든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기본을 무한 반복하다 보니 컴퓨터에 입력이 되듯 몸에 각인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새로운 곡을 접하고 이렇게 노래를 해야겠다는 작전을 짜기도 전에 빨리 습득이 돼요. 운전면허증 따고 나면 운전하는 법을 까먹지 않는 것과 비슷하죠.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연습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다시 못하게 되죠?

그렇죠. 연습도 못 하고 어떤 식으로든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은 채로 1주일 2주일이 지나면 기본 컨디션보다 조금 못하다는 걸 스스로 느껴요. 대중은 모를 수 있지만요. 10곡을 불러도 안 힘들었는데 9곡만 불러도 힘들거나 음정이 흔들리죠. 그런 것들이 기본에 대한 영향력 안에 있는 거거든요.

23살부터 29살까지 6년 동안은 매일 8시간씩 스스로 일종의 훈련을 했다. 고음 내는 법과 호흡 조절하는 법은 물론 비성·진성·탁성·갈성·흉성·복성 등 6가지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법을 목에서 피가 나도록 연습했다. 선생님도 없이 다른 가수들의 앨범을 수도 없이 들으며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아갔다.

누군가에게는 거만한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무대에서 느껴지는 자신감, 음악에 대해 무거운 진지함을 갖고 있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그만큼 노력한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연으로 음악 인생에 반전이 왔습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운이 아니라 준비돼 있던 사람이 잡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행운이죠. 그런데 준비돼 있었다는 것도 맞는 것 같아요. 허참 선생님을 행사장에서 만났는데 이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네가 쭉 음악을 하는 동안 네 노래를 듣고 좋아했던 사람들이 가졌던 기원들, 너의 목소리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했던 그 마음들이 너를 들어서, 뚝 들어서 라는 자리에 놔준 거라고… 그러니 네가 잘한 거라고 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했고,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저는 방송을 많이 하겠다는 생각도, 방송을 안 하겠다는 생각도 한 적 없이 그저 내 음악을 스스로 열심히 하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만 갇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해온 게 손바닥이 뒤집힐 때가 되니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할 기회로 온 것 같아요. 그것도 인생의 한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해요. 준비돼 있었다는 말을 제 식대로 표현하면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정말 힘들었을 때도 3~4일 노래를 못 하면 차 안에서 소리 지르고 그랬거든요. 선배들이나 동료들과 회식 자리 가면 일부러 노래를 많이 부르면서 예전과 비교해 어떤지 확인하고요. 결국 계속 긴장하고 지켜나가서 잘된 게 아닌가 싶어요.

노래마다 각각의 메시지가 있고 감성이 있잖아요. 그 노래의 감성과 현재 나의 감성이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을 텐데 어떤 식으로 이입을 해내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불일치하는 노래도 있고, 또 제가 다 표현할 수 없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고민도 하고 노력도 해요. 그런데 저는 제 목소리나 제 노래가 무언가를 해결해주려 하기보다는 그냥 옆에 있는 존재가 됐으면 좋겠어요.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 이런 말을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제 노래로 그 순간의 용기를 툭 건드려주기도 하고요. 울고 싶은데 자존심이 세서 그러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연스러운 순간을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또 하고 싶은 말을 대신 건네주는 메신저 역할도 하고 싶어요. 그런 게 제일 좋은 음악이 아닌가 생각해요.

내년 초에 나올 음반에도 그런 음악들이 수록되겠네요.

‘그댈 사랑해도 될까요~ 내가 그대에게 다가가도 될까요~’ 이런 노래도 있고요. 또 무지하게 사랑하지만 말로는 표현을 못 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모르고 자리에서 일어나요. 그때 남자가 부르는 거죠.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잖아~’ 결국 말로는 못 했지만 말하고 있었다는 내용이에요. 아무리 내 방식대로 마음을 표현해도 상대방이 그걸 알아채 주거나 이해해야 교류가 되는 거잖아요. 그 교류가 안 되는 순간들 덕분에 사랑도 성숙해지고 관계도 성장해가는 것 같긴 하지만요. 여러 곡들을 만들고 있는데요. 노래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제가 여러분한테 가장 당당하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음반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준비 중이에요. 사람과 사람을 소통하게 하고, 제 노래를 건넸을 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하는, 대변인 역할을 하는 곡을 만들고 싶어요.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나요?

사랑한다는 말을 가족들이나 동료들에게는 가끔씩 해요. 그런데 이성에게는 잘 못 하는 것도 같아요. 한번 마음먹으면 쫙 표현을 하긴 하지만 그럴 때 빼고는 잘 못 하죠. 표현은 표현이 필요할 때 해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버스 떠난 다음에 정류장에 아무리 서 있으면 뭐해요. 상대와 교류하고 있는 당시에 해야 가장 행복한 건데 말이에요. 지금 저는 혼자 살아가고 있는데, 7년 동안 이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동안 만난 한두 분 정도는 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는데 저는 그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많이 해야 하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인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 번 사랑에 실패하고 나니까…. 그때는 실패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내가 그 말을 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가 별로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인지 그 이후에 만난 사람들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마지막 사람에게 주려고 그러나 싶기도 한데 지나고 나니 후회는 많이 돼요. 사랑한다는 말은 어떨 때 보면 그 말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돌려줄 수 있어야 하는 말인 것 같아요. 그런데 나 혼자만의 기준을 너무 세게 잡고 있었던 게 아닌가. 언젠가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려고요.

7년 전에 헤어진 분과는 오랫동안 교제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오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짧지 않은 시간을 만났죠. 그 헤어짐 뒤로 느낀 건데,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헤어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구상에 헤어지려고 만나는 연인은 없죠. 평생 갈 줄 알잖아요.(웃음) 그런데 대부분이 헤어져요. 좋게 잘 헤어지는 게 성숙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이별이 슬픈 것만은 아니에요. 성숙을 위한 가르침이 되기도 하기도 하니까요.

그분과의 사이에 딸이 있죠. 지금 7살인가요?

네.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가요. 벌써 그렇게 됐어요. 함께 시간을 자주 보내지 못하는 게 미안하죠. 원체 일에 바쁜 아빠였으니까…. 다행히 아직까지는 불만이 없어요. 가끔 만날 때마다 원하는 걸 무조건 다 해주거든요.(웃음) 일단 선물공세를 시작해요. 인형가게에 가서 무조건 다 사줘요. 또 아이가 과일을 좋아하거든요. 블루베리를 왕창 사요.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저번 주에 만나서는 용돈으로 5만원을 주면서 제가 그랬어요. “이건 아빠가 너한테 준 거야. 엄마한테 뺏기면 안 돼~.” 그랬더니 빌려달라고 해도 안 주고 “이건 아빠가 준 거야!” 그런대요.(웃음)

아빠가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이제 아는 것 같아요. 제 노래를 흥얼거려요. 커서 뭘 하고 싶은지 물으니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어렸을 때 의사가 꿈이었거든요. 아이들은 커가면서 하고 싶은 것도 계속 달라지니까 아마 꿈도 바뀌겠죠.

딸이 태어나던 시기에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잖아요. 사업이 잘 안 돼서 20억 빚을 졌던 게 60억으로 불어나기도 했다면서요.

그때 모든 게 날아갔죠. 잠깐 갖고 있었던 재물이 사라진 것도 모자라 마이너스가 됐으니까요. 집도 없이 친구네 집에 1년 정도 얹혀살았고, 저희 어머니는 누나네서 모시게 되고 그랬어요. 그렇게 빚을 갚는 데 모든 인생이 걸려 있던 시기에 운명적으로 에 나가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때 ‘지나간다’를 부른 거고요. 이후로 번 돈은 채무를 정리하는 데 다 소진했어요. 아직 조금 남았는데 내년 초 되면 다 갚을 거예요. 예전에는 수입의 100%를 채무 갚는 데 썼다면 지금은 40%를 쓰거든요. 저도 이제는 가끔 옷이라도 좀 사 입고, 그동안 자장면만 먹었다면 고기 맛도 봐야겠다 싶어서요.(웃음)

거의 다 갚았다니 저도 기쁘네요. 빚, 정말 무서워요.(웃음)

그다음부터는 제가 신용카드를 안 써요. 체크카드만 갖고 있죠. 바로바로 나가는 게 낫지, 다음 달? 아흐. 세상에서 제일 안 좋은 게 다음 달로 넘기는 거예요.(웃음)

여러 고생에도 버틸 수 있었던 힘으로 음악, 스스로에 대한 믿음, 그리고 어머니를 꼽은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들을 엄청 자랑스러워하시겠어요.

누구에게나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잖아요. 그런데 여성들이 말하는 엄마와 남성들이 말하는 엄마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아버지는 존경스럽고 또 애잔한 사람이지만, 성인이 되고 나면 남자로서 라이벌 비슷한 느낌이 있기도 하거든요. 반면 엄마는 늘 지주 같은 느낌이죠. 나를 배 속에 잉태하고 세상에 나오게 한 나의 첫 집이잖아요. 어머니를 지켜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힘들어도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되지, 더 잘해야지 그랬어요. 이제는 “더원 어머니시네요” 그런 얘기도 들으시고 슈퍼에서 토마토 하나라도 더 받으시고 한대요. 결혼에 한 번 실패한 게 죄송하긴 하지만요. 마지막으로 기회가 되거나 운이 따르면, 에 나갔듯이 스펙터클하고 천사 같은 아름다운 사람이 저를 사랑해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가사를 그렇게 만들어야겠다.(웃음)

10대 때 했던 행동들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격하게 보냈나 봅니다.

두발자유 고등학교에 들어갔거든요. 머리를 기르니까 옷에 신경이 쓰이고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고, 어울리다 보니 성숙지 못한 판단으로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고 그랬던 거죠. 섭섭해도 표현을 안 하고 참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러다 표현하면 갑자기 화가 난 줄 알아요. 저는 이해하려 하고 참으려다가 말해야겠다 싶어서 말하는 건데 말이에요. 여자친구 있었을 때도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음악 하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크잖아요. 저는 약간의 감정표현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일반인한테는 화를 내는 소리인 거예요. ‘야! 너 그렇게 하지 마!’가 아니라 ‘이거 아니잖아~’ 이런 느낌이거든요.(웃음) 근데 어떤 후배도 “형, 무서워!” 그러더라고요. “아니야~ 아니야~ 나 화낸 거 아니야~” 그러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꿈이 달라졌다고요.

제가 고등학교 졸업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집안에 아들이 저 혼자니까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급했어요. 작게 사업을 했다가 실패도 했죠. 그래도 오직 음악만은 포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껴요. 원래는 자동차공학도가 꿈이었어요. 일본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와서 우리나라 자동차회사에 들어가 멋진 자동차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죠. 만약 아버지가 안 돌아가셨으면 자동차공학 관련 일을 하면서 직장인 밴드 같은 걸로 음악을 병행하면서 살지 않았을까…. 나중에 상황이 되면 자동차 관련 일을 해보고 싶어요. 늘그막에 창고라도 하나 빌려서 나 혼자 납땜을 하든, 모형자동차라도 만들든 그러고 싶어요.

8월 말부터 전국투어 콘서트가 시작되잖아요. 특별한 무대를 준비 중이라고요.

아이오아이의 ‘픽미’를 준비하고 있어요. 더원이라는 사람이 이런 것까지 시도하네, 이렇게 즐거운 에너지도 갖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제 콘서트에 와보셨던 분들은 그런 말씀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의외로 인간적이다, 위트가 있다, 진짜로 그렇게 두 시간 내내 한다.(웃음) 힘들어요. 이번 콘서트 큐시트에는 높은 노래들이 너무 많아요.

높은 노래가 많다고 하니 기대하는 분들이 많겠어요.

‘좋은 날’은 복면가왕에서 불렀지만 숨 쉴 데가 없는 노래거든요. 그거 부르고 나면 3분을 쉬어야 하는데, 만약 콘서트에서 하게 되면 바로 뒤에 게스트 순서를 넣어야겠어요.(웃음)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온몸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서 노래하고 나면 공연 후에 허전하지 않나요?

저는 ‘저 사람은 나이가 몇 살이든, 상황이 어떠하든 노래할 때만큼은 100을 다 하는구나’라는 말을 듣는 게 목표예요. 전부를 쏟고 내려오니까 허전하죠. 그런데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무대에 올라갔을 때 주는 가수, 함께하는 가수, 받는 가수가 있다고요. 사람들 환호성을 받아서 에너지가 충전되는 가수도 있고, 같이 즐기는 가수도 있고, 즐기면서도 관객에게 에너지를 다 주는 가수가 있대요. 저는 주는 쪽인 것 같아요. 어쨌든 제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은 말하지 못하는 허함이 있거나, 사랑에 대한 상처가 있거나, 인생의 실패를 경험했거나 하는 분들일 거예요. 저는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거든요. 저도 그렇게 살아왔고요. 요즘 경기 때문에, 집안 살림 때문에 전반적으로 힘든 분들이 많아요. 저도 지금 힘내고 있거든요. 힘내시라고, 제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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