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다고 나를 얕봐?… 김정은의 '단두대 정치'

    입력 : 2016.09.01 03:00 | 수정 : 2016.09.01 09:31

    [집권 이후 간부 100여명 처형]

    건성건성 박수 친 장성택·회의 때 졸았던 현영철…
    처형한 이유 대부분은 '나이 콤플렉스' 자극한 탓
    2인자·실세 출현도 경계… 리영호 숙청이 대표적
    농장 노역 등 심복들에게도 끊임없이 충성심 시험

    통일부가 31일 확인한 북한 김용진 내각부총리의 처형 소식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집권과 동시에 시작된 '단두대 통치'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김정은이 2011년 12월 집권 후 4년 8개월간 잔인하게 처형한 당·정·군 간부만 1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김정은의 잔인한 숙청 이유는 대부분 '나를 무시해서'였다"며 "기대에 못 미치는 충성심, 일부 간부의 거만한 태도 등이 28세에 집권한 김정은의 '나이 콤플렉스'를 자극했다"고 말했다.

    북한 권부 내 숙청의 '피 냄새'는 김정은 집권 직후부터 물씬 풍겼다. 김정은은 2012년 초 "장군님(김정일) 애도 기간에 허튼짓을 한 놈들을 모두 제끼라(없애라)"는 지시를 내려 김철 인민무력부 부부장 등 군 고위 간부 10여명을 처형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은 처형 명분으로 김정일 상중(喪中)에 술을 마시는 등 '일탈 행위'를 들었지만, 실제 처형 이유는 '어리다고 나를 얕봤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간부들의 '자세 불량'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2013년 12월 처형된 고모부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죄목 중엔 '건성건성 박수를 쳤다'가 있었고, 작년 4월 처형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회의 때 졸았다가 꼬투리를 잡혔다. 정보 소식통은 "김정은은 '불손한 태도'를 자신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인다"며 "당 조직지도부 등 사찰 기관들이 김정은의 나이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보고를 올리면 김정은은 곧바로 '반당·반혁명분자' 등의 낙인을 찍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2인자' '실세'의 출현을 극도로 경계했다. 김정일이 김정은을 위해 군(軍)에서 직접 발탁한 리영호 전 총참모장을 2012년 7월 전격 숙청한 데 이어 김정은 정권의 최대 후견인으로 불리던 고모부 장성택 당 행정부장을 2013년 12월 고사포로 처형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두 사람의 숙청은 당 조직지도부가 군부와 당 행정부를 상대로 권력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며 "조직지도부에서 '리영호·장성택이 김정은을 무시한다'는 취지의 보고를 생산한 것이 발단이 됐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숙청을 비켜간 심복들에게도 끊임없이 충성심을 시험하고 있다. 장성택 처형 후 실세로 떠오른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은 작년 11월부터 석 달간 '혁명화 처벌'을 받았다. 작년 12월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양건 뒤를 이어 당 통일전선부장에 오른 김영철도 최근까지 지방 농장에서 '혁명화'를 겪었다고 정부가 밝혔다. 통일부 전직 관리는 "김정은은 천안함 폭침 등 김영철의 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가 거만해지는 것은 참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군 장성의 계급을 수시로 강등하거나 총참모장·인민무력부장 등 핵심 보직 인사를 걸핏하면 단행하는 것도 특정 인사에게 권력이 쏠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이 같은 '공포정치'로 김정은 권력은 매우 공고해 보인다. 하지만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북한 엘리트층 사이에선 복지부동 현상이 만연해 있고, 불만이 자꾸 커지면서 체제 내상(內傷)이 심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김정은 주변 고위 간부들의 직언(直言)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김정은의 충동적·즉흥적 지시가 아무런 견제 장치 없이 그대로 이행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김정은은 ▲러시아 전승 70주년 행사 참석 의사를 번복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을 허용했다가 바로 뒤집었으며 ▲모란봉 악단의 방중 공연을 행사 당일 취소시켰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선 '뒤통수 외교의 달인'이란 말이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는 "간부들은 김정은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칠까 봐 직언은커녕 받아 적기에 급급하다"며 "중요한 정책들이 김정은 기분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핵과 미사일로 중무장한 북한이 경험 부족 지도자의 기분에 따라 휘청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은 북한 외교관의 연쇄 탈북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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