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현지 시각) 오후 1시, 이집트 수도 카이로 도심에서 서남쪽으로 15㎞ 떨어진 기자(Giza) 대(大)피라미드 지구. 택시를 타고 입구로 들어서자 길가에 서 있던 사내 예닐곱 명이 "투어 가이드!" "굿 프라이스!"를 외치며 차를 향해 뛰어들었다. 차가 서지 않자 보닛 위에 드러눕고 차창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려고도 했다. 이들은 경찰들이 나타난 뒤에야 뒤로 물러섰다. 택시 기사 무함마드 압델 카딤씨는 "'관광객 가뭄' 때문에 호객 행위가 너무 살벌해졌다. 갈수록 심해진다"고 했다.
매표소 창구에서는 입장료 80기니(약 1만원)를 밀어 넣어도 반응이 없었다. 창문을 두드리자 사무실 안쪽 소파에 반쯤 누워 '쉐이(이집트 홍차)'를 마시던 직원이 일어나 입장권을 끊어줬다. 창구 밖을 살펴본 그는 다시 소파로 돌아갔다. 표 사려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피라미드 지구 안으로 들어가자 4600년 전 지어진 높이 146.5m의 쿠푸 파라오(고대 이집트 왕의 명칭) 피라미드가 나타났다. 그 뒤로는 200여m 간격으로 다른 피라미드 2기가 있었다. 총 3기의 이 피라미드는 그 웅장함과 정교함으로 '외계인의 건축물이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킨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하지만 명소는 썰렁했다. 쿠푸 피라미드 주변에는 100여 명이 눈에 띄었지만 그중 절반은 가이드나 스핑크스 모형 같은 기념품을 파는 상인이었다. 관광객보다 이들을 태우려고 피라미드 주변을 도는 낙타와 말의 수가 더 많았다. 20년 경력의 낙타 관광 업자 사이드 알쉬미씨는 "2011년 혁명(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을 지칭) 전에는 기자 피라미드에 하루 3만~4만명이 찾아왔는데, 요즘엔 1만명도 겨우 되는 것 같다"면서 "낙타에 태울 손님이 없어 몇 푼 못 벌고 집에 돌아갈 때가 잦다"고 했다.
이집트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1470만명이었던 이집트 관광객 수는 2011년 100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올해 상반기는 전년도보다 절반 가까이 감소한 300만명에 그쳤다. 이 추세대로면 올 한 해 관광객 수는 600만명으로 6년 전의 40% 전후에 그칠 전망이다. 2010년 125억달러였던 관광업 매출도 반 토막이 나 작년 61억달러를 기록했고, 올해는 20억달러도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관광의 나라' 이집트가 세계 관광객의 외면을 받게 된 것은 정정 불안과 잇단 테러, 잦은 여객기 사고 등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일간 알아흐람은 "이집트 시나이 반도를 근거지로 한 IS 연계 무장단체가 주요 도시의 관공서와 주민 등을 대상으로 테러 공격을 계속해 단체 관광객이 '테러 청정지'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집트를 방문하는 한국인 수도 '아랍의 봄' 이전엔 연간 5만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2만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새미 마흐무드 관광청장은 최근 로이터 인터뷰에서 "작년 10월 이집트 홍해 휴양지 샤름 엘 셰이크에서 이륙한 러시아 여객기가 추락해 탑승객 220여 명이 전원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관광객 발길이 뚝 끊겼다"고 했다.
낙후한 인프라가 이집트를 관광 후진국으로 전락시킨 측면도 있다고 일간 알마스리알욤은 전했다. 이집트 정부가 재정 수입의 1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관광업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해 관광업 현대화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영어신문 이집션스트리트는 "더러운 거리와 과도한 호객 행위가 불쾌감을 줘 외국인들이 다시 이집트를 찾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카이로 도심에 있는 국립박물관은 고대 유물들이 복도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등 관리 상태가 엉망이었다. 파라오 석상에 금이 가 틈새가 벌어진 부분에는 접착테이프가 너덜너덜 붙어 있었다. 현지 관광업체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 왕국의 수도였던 룩소르의 유적지도 문화재 관리가 되지 않아 훼손이 심해졌다고 한다. 알아흐람신문은 "관광업이 무너져 국가 수입에 차질이 생기고, 이로 인해 유적지 개발·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외국 정부나 문화 관련 국제단체에 유적 관리를 위임하는 등의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