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은 인류가 함께 기억해야 할 소중한 역사적 기록물을 말한다.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인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기록 유산이 미래 세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보존·보호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1992년에 시작했다. 1997년에 첫 등재가 이루어졌고, 지금까지 107나라의 기록 유산 348건이 등재되었다. 한마디로 인류의 기념비적 기록이요, 동서고금의 지식과 지혜의 원천이다.
세계기록유산에는 한국의 기록물 13건도 포함되어 있다. 1997년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을 시작으로 승정원일기와 직지심체요절(2001년), 고려대장경판 및 제(諸)경판과 조선왕조의궤(2007년), 동의보감(2009년), 일성록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2011년),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 기록물(2013년), KBS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와 한국의 유교책판(2015년)이 차례로 등재되었다. 시기별로는 고려시대 2건, 조선시대 8건, 현대 3건이다. 한국의 등재 건수는 세계 4위, 아시아 1위이다.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등재 숫자도 적지 않지만 등재 이유도 다채롭고 의미 깊다. 전통 시대 기록물은 하나같이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독창성을 띠고 있다. 또 당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역작이다.
고려의 기록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직지)과 가장 완전한 목판 불교 경전(대장경)으로 불교 문화의 정수이다.
조선의 기록물은 세계에서 가장 상세하고 종합적인 왕조의 역사 기록물(실록), 수백 년 동안 작성한 방대한 국정 일지(승정원일기와 일성록)와 최고 군사 지휘관이 직접 매일 작성한 군중(軍中) 일지(난중일기),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과정과 원리를 밝힌 서책(훈민정음), 수백 년 동안의 유교 의식에 관한 글과 그림(의궤), 유교 이념에 관한 목판(유교책판), 동아시아 의학 이론을 집대성한 기록(동의보감)으로 유교 문화와 시대정신의 결정체이다. 현대의 기록물은 한국 현대사의 극적인 장면에 관한 것이다. 분단과 전쟁에 따른 이산의 아픔, 빈곤 퇴치와 농촌 개발의 모범 사례, 민주화 운동의 전환점이 된 사건 등 인류가 함께 나누고 간직해야 할 기억이자 경험이다.
우리 조상은 기록을 남기는 데 놀랍도록 정성을 쏟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그런 사실을 잘 엿볼 수 있다. 실록은 실록청을 세워 엄정하게 편찬하였다. 그 내용은 국왕조차 볼 수 없었다. 또한 사본(寫本)을 여러 질 만들어서 분산 보존하여 전쟁과 재난으로부터 보호하였다. 나아가 정기적으로 사관(史官)을 보내어 바람을 쐬는 포쇄(曝�)를 실시해 훼손을 막았다. 기록의 편찬과 보존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은 감동을 넘어 영감을 준다. 우리는 찬란했던 과거의 기록 문화를 자랑하고 거기에 기대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 영광스러운 성취뿐 아니라 정신까지 온전히 이어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기록원은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기록 문화 수준을 높이려면 일부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사회 전반의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가 자랑하는 기록 문화 전통의 현대적 부활과 이를 통한 '기록 한류(韓流)'도 가능해진다.
9월 5일부터 10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기록총회는 4년마다 열리는 세계 기록인의 잔치이다. 이번 총회의 주요 행사 중 하나로 마련된 기록전에서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13건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이 전시가 기록이 주는 향기와 감동을 느끼고 어제와 오늘의 우리나라 기록 문화를 탐구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