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前 모습도 모른채 궁궐 복원… 史劇세트장 짓겠단 얘기"

    입력 : 2016.08.30 03:06 | 수정 : 2016.08.31 08:59

    [천년古都 훼손될 위기] [中]

    - 현대 유적이 될 동궁·월지
    동궁의 실제 범위 모르는 상태
    "고증도 제대로 안 하고 지으면 요즘 건물이지 신라 유적인가" 비판

    - 황룡사 담장·회랑만 복원한다지만…
    전문가들 "문화재委 통과 위한 꼼수… 결국엔 9층목탑 등 사찰 복원할듯
    그나마 남은 유적 깡그리 없어져"

    지난 19일 경북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皇龍寺址·사적 제6호). 신라 최대 호국(護國) 사찰이 있었던 드넓은 터에 콘크리트 건물이 우뚝 서 있다. 10월 개관을 앞둔 황룡사역사문화관이다. 경주시가 130억원을 들여 지은 이 문화관에는 황룡사 상징인 9층 목탑을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모형과 건립부터 몽골 침략으로 불타기까지 과정을 소개하는 영상실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요즘 경주를 다녀온 전문가마다 "전시관이 유구(遺構·옛 건축물의 자취)를 가로막고 서 있어서 신라 핵심 유적의 경관을 망쳤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건물 복원 계획 일부는 제외

    하지만 10년 후면 천년 고도(古都) 경주 곳곳에서 이런 볼썽사나운 건물들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신라 왕경(王京) 핵심 유적 정비·복원 사업 종합 기본 계획(마스터플랜)'에 동궁과 월지(안압지)의 주요 건물들을 복원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신라 왕궁 골격을 회복해 경주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동궁과 월지의 정전(正殿), 중문, 회랑 등 주요 건물들을 복원한다. 월성(月城)은 외부에서 볼 때 궁성(宮城)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므로 성벽과 주요 성문 복원이 필요하고 주요 문지(門地), 내부 건물, 해자를 복원해 유적을 가시화한다." 마스터플랜에는 황룡사 주요 시설을 복원한다는 계획도 담겨 있다. "신라 고찰 황룡사지의 역사적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황룡사지 담장, 회랑, 강당, 9층 목탑, 금당을 복원한다"는 대목이다.

    지난 2014년 경북도가 만든 황룡사 9층 목탑 등 주요 건물 복원 조감도
    지난 2014년 경북도가 만든 황룡사 9층 목탑 등 주요 건물 복원 조감도. 수정안에는 ‘목탑, 금당 등 주요 건물은 복원하지 않고 담장과 회랑만 복원 정비하겠다’고 나와 있지만 전문가들은 “복원 논란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했다.
    지난 5월 열린 문화재 위원회 합동분과회의에서 문화재 위원들은 세계유산에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 안에 각종 건물을 세운다는 계획을 특히 문제 삼았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 신라 왕경 정비·복원 추진단은 31일 발표하는 마스터플랜 수정안에 건물 복원 계획을 많이 제외했다. ▷월성은 해자를 정비·복원하되 다른 건물은 단계적 발굴 및 연구·조사 후 정비·복원 계획을 검토하고 ▷동궁과 월지는 남쪽 건물지 복원을 제외하고 서쪽 건물지만 5단계에 걸쳐 정비·복원하며 ▷황룡사는 9층 목탑·금당 등 주요 건물은 복원에서 제외하고 대신 담장과 회랑은 복원하겠다는 내용이다.

    ◇"문화재 위원회 통과만 노린 수정안"

    하지만 마스터플랜과 수정안을 검토한 문화재 분야 전문가들은 "일단 문화재 위원회를 통과하고 보겠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1970년대 안압지·황룡사지 발굴에 참여했던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는 "건물 복원에 문제가 있다면 황룡사 전체 복원 계획을 취소해야지 담장과 회랑을 복원한다는 계획은 왜 남겨두나. 결국은 사찰을 복원하겠다는 장기적 계획을 숨겨놓은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동궁복원계획도
    익명을 요구한 한 사학과 교수는 "황룡사 터에 건물을 세우면 지금 남아 있는 1500년 전 신라 시대 건축물의 주춧돌·불상 좌대가 다 없어진다. 지금 목탑 터에는 신라 시대 주춧돌이 남아 있는데 몽골 침략 때 불에 타서 깨지고 금 간 상태라 그 위에 탑을 세우면 주춧돌이 무게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며 "결국 요즘의 돌을 주춧돌로 올려야 하는데 신라 시대 유적은 깡그리 없애고 21세기 절을 짓겠다는 얘기"라고 했다.

    ◇"고증 안 된 복원, 드라마 세트장 짓겠다는 건가"

    동궁과 월지는 더 심각한 문제다. 수정안에는 남쪽 건물지 복원은 제외돼 있지만 1970년대에 발굴이 끝난 서쪽 지역을 침전→편전→정전→중문→회랑 순으로 5단계 복원하겠다는 계획은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고증도 제대로 못 하고 건물을 올리면 요즘 건물이지 어떻게 1300년 전 신라 유적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당시 모습을 알 사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발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바닥과 주춧돌뿐인데 상부 구조를 어떻게 알고 복원하겠다는 얘기인지 모르겠다"면서 "신라는 천년 동안 왕도(王都)로 사용됐기 때문에 여러 시기 층이 켜켜이 쌓여 있다. 지금은 제일 위쪽 통일신라 층만 발굴한 게 많은데 이 상태에서 위를 복원해버리면 나머지는 땅속에 묻히게 된다"고 우려했다.

    최병현 교수는 "1970년대에는 안압지 서쪽만 국유지로 돼 있어서 그곳만 발굴했지만, 지금 안압지 북쪽과 동쪽 발굴 과정에서 오히려 서쪽보다 격이 높은 건물들이 확인되고 있다. 서쪽이 동궁이 맞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상태"라며 "동궁의 범위와 주요 건물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복원 작업을 펼친다면 사극(史劇) 세트장을 짓겠다는 말과 같다"고 말했다. 이강승 충남대 교수는 "경주시는 건물을 지어 올리면 고도(古都) 분위기가 날 거라고 착각하지만 건물을 많이 복원할수록 오히려 현대 도시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역 정보]
    경주 신라王京 복원 사업, 2035년까지 1조4749억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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