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초여름 부산에서 시작한 콜레라가 전국으로 퍼졌다. 6130명이 걸렸고 절반 넘는 3300여 명이 숨졌다. 격리 병실이 없어 환자들은 학교 강당에 수용됐다. 하루 10~20L씩 설사해 탈수돼도 수액이 없어 그저 누워만 지냈다. 그때 콜레라는 호열자(虎列刺)라고 불렀다. 호랑이가 물어뜯는 고통스러운 병이라는 의미다. 전염을 걱정한 가족들은 면회를 오지 않았다. 환자들은 공포 속에 철저히 버림받았다. 그게 70년 전 일이다.
▶콜레라는 그리스어로 '담즙이 흐른다'는 뜻이다. 탈수가 너무 심해 피부가 담즙처럼 흑황색을 띤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16세기 포르투갈 탐험가가 쓴 '인도의 전설'에 콜레라에 대한 언급이 처음 나온다. 인도 캘리컷에 있던 군대에서 심한 구토와 설사를 일으킨 풍토병으로 2만여 명이 죽었다는 기록이다. 18~19세기 이후 제국주의 시대를 맞아 콜레라는 세계로 번져 일곱 차례 대유행을 낳았고 수백만 목숨을 앗아갔다.
▶1854년 영국 의사 존 스노가 그린 지도가 전염병 방역사(史)를 바꿨다. 당시 런던에 콜레라가 유행해 하루에 200명씩 죽었다. 사람들은 콜레라가 '나쁜 공기'에 의한 전염이라고 봤다. 닥터 스노는 사망자를 지도에 표시해 콜레라가 브로드가(街)에 집중해 발생했고 같은 수도 펌프를 쓰는 지역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는 콜레라가 오염된 물로 전파된다고 런던 의회를 설득했다. 그 수도 펌프 사용을 중단하자 콜레라가 사라졌다.
▶엊그제 '국산' 콜레라가 15년 만에 처음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해외에 나갔다 걸려 온 콜레라만 가끔 있었다. 환자는 남해안을 여행하다 콜레라균에 오염된 해산물을 먹고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 폭염으로 바닷물 온도가 예년보다 6도 더 치솟아 균 번식이 왕성했다는 분석이다. 콜레라는 쌀뜨물 같은 설사와 생선 썩은 냄새 같은 악취가 난다. 예방하려면 되도록 음식을 익혀 먹고 손을 자주 씻어야 한다. 백신은 있지만 면역 효과가 낮아 권장하지 않는다.
▶체감 기온이 인간 체온을 넘는 '사람 잡는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넘어간다는 말을 몸이 느낀다. 기온이 올라 '추억의' 전염병과 기생충이 속속 귀환하고 있다. 모기와 진드기, 빈대가 알에서 성충이 되는 기간도 짧아지고 있다. 곤충이 나르는 전염병 뎅기열·말라리아·쓰쓰가무시병은 해마다 늘고 있다. 대표적 식중독 살모넬라 감염률은 기온 1도 올라갈 때마다 크게는 10%씩 오른다. 토종 콜레라 출현은 더위가 부추기는 질병과의 싸움에 바짝 긴장하라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