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코미디 한국 마라톤

조선일보
  • 민학수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
  • 김도원 화백
    입력 2016.08.24 03:16

    키 151cm인 일본 코미디언 다키자키 구니아키는 예명이 네코 히로시다. 네코(猫)는 고양이다. 작은 몸집에 "야옹" 하며 내는 고양이 흉내가 장기(長技)다. 마라톤에 도전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뛰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국적을 바꿔 올림픽 나가볼 생각이 없느냐"는 이야기를 듣고는 2011년 국적을 캄보디아로 바꿨다. 2008년 처음 나간 도쿄 마라톤에서 3시간48분을 기록했다.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룬 리우에선 2시간45분으로 140명 가운데 꼴찌에서 2등을 했다. 그래도 서른아홉 살 마라토너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전문가에게 들어보니 "코미디언이라고 우습게 볼 사람이 아니다"고 했다. 세 시간 안에 완주하는 '서브 3'는 아마추어에게 꿈의 기록이다. 피눈물나는 노력이 필요한 데다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그는 고교 시절 교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최고 기록 2시간27분은 대단하다. 그 나이에 전업 선수 못지않은 열정과 체계적 훈련이 없다면 도달하기 힘든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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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무한 도전' 코미디언 때문에 그와 꼴찌 경쟁을 벌였던 두 한국 마라토너는 체면을 더 구겼다. 138위로 들어온 한국 선수 기록이 그보다 겨우 3분 빨랐다. 부진한 속사정도 있을 것이다. 둘은 각기 발뒤꿈치와 허벅지가 아팠다고 했다. 감독은 "선수촌 음식이 입에 안 맞고 컨디션 조절도 실패했다"고 했다. 음식 안 맞는 선수가 한둘 아닐 테고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건 선수 책임이다. 한 달 반 뒤 전국체전을 앞두고 몸을 사린 것 아니냐며 미심쩍어하는 시선도 있다.

    ▶한국 육상은 세계와 동떨어진 외딴 섬이라는 얘기까지 듣는다. 힘만 들고 돈 안 되는 국제 대회에 도전하기보다 전국체전 메달을 따며 편하게 사는 행태를 꼬집는 말이다. 연봉 1억원을 받는 선수도 있다. 팀을 옮겨 다니며 계약금을 챙기기도 한다. "한국 신기록에 억대 포상금을 걸지 말고 도달하기 쉬운 기록에 걸어 달라"는 민망한 요구까지 한다. 파벌 싸움도 끊이지 않는다.

    ▶황영조·이봉주 같은 인재를 공들여 육성하던 한국 마라톤 성공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유망주들은 아예 어릴 때 싹이 마른다. 초·중학교 육상대회엔 축구와 야구 스카우트들이 찾아와 눈에 불을 켠다. 일본은 10년 넘는 장기 프로젝트로 될성부른 싹을 찾아내 스타로 키워낸다. 일본에 가보면 역전 마라톤에 쏟아지는 국민 관심이 상상을 초월한다. 손기정 선생이 코미디 같은 한국 마라톤에 혀를 차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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