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밴드·게임 좋아한 디지털세대 次男, 아버지 결단 끌어냈나

조선일보
  • 한경진 기자
    입력 2016.08.19 03:00 | 수정 2016.08.19 07:59

    [北 태영호 駐英공사의 선택]

    - 자녀의 장래 걱정
    차남, 英명문대 진학하려 했지만 올여름 北에 돌아가야 할 처지
    차남이 온라인 게임서 쓴 아이디 'North Korea Is Best Korea'… 北 조롱할때 쓰이는 반어적 표현

    - 태영호 공사, 경제압박 시달려
    침실 2개·좁은 부엌 주택 거주 "혼잡통행료도 낼 수 없는 형편"

    "그는 외교관으로서 언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는 처지였고, 그렇게 되면 둘째 아들은 학업이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7일(현지 시각) 주영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한국 망명 동기의 하나로 차남 금혁(19)군의 진학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올여름이면 임기가 끝나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였던 태 공사가 자녀의 장래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금혁군은 태 공사가 덴마크에서 근무할 때 태어나 스웨덴과 영국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한국 망명 전까지 런던 서부 지역의 공립 액턴고등학교를 다녔으며, 학교에서 A플러스 성적을 받는 수재였다고 한다. 가디언은 "금혁군이 올해 명문대학인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에 입학해 수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할 예정이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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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한국 망명은 자녀들의 장래 문제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왼쪽은 2004년 태 공사가 평양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이며, 오른쪽은 영국 일간 가디언이 공개한 차남 태금혁(19)군을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이다. 금혁군은 온라인 게임에서‘North Korea Is Best Korea’(북한이 최고의 코리아)라는 아이디를 썼다. /AP 연합뉴스·가디언·온라인 게임 플랫폼‘스팀’캡처
    외신에 따르면 금혁군은 전형적인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세대)로 억압과 감시가 일상화된 북한 체제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청년이었다.

    '좋아하는 뮤지션: 린킨 파크(미국 록 밴드)·에미넴(미국 래퍼), 좋아하는 만화: 드래곤볼GT(일본 애니메이션), 취미: 게임·인터넷 서핑.' 금혁군은 6년 전인 열세 살 무렵,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영국 일간 미러에 따르면 금혁군은 최근까지 온라인 게임에 흠뻑 빠져 있었다. 금혁군은 지난해 1인칭 시점 총쏘기 게임(FPS)인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360여시간이나 했고, 지난달 13일까지 게임 사이트에 접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산(産) 게임 '아키 에이지'도 즐겼다. 평소 페이스북과 왓츠앱(메신저) 활동도 활발했다고 한다. 금혁군의 학교 친구들은 최근 그와 전화 통화도 안 되고, 페이스북 계정도 삭제되자 매우 걱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혁군이 여러 온라인 게임에서 사용한 아이디(ID)는 'North Korea Is Best Korea(북한이 최고의 코리아)'였다. 언뜻 보면 북한을 찬양하는 것 같지만, 이 말은 서구권 젊은이들이 북한을 조롱할 때 쓰는 '반어적 표현'이다. 페이스북에는 'North Korea Is Best Korea'라는 북한 체제 풍자 계정이 있고, 이 문구를 새긴 '김정은 조롱 티셔츠'까지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이 ID 자체가 태 공사 가족의 망명 사유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태 공사는 모두 2남 1녀를 뒀는데, 스물여섯 살인 장남은 영국 해머스미스 병원에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 자유아시아방송은 소식통을 인용해 "서방국에 파견된 북한 외교관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 교육과 장래 문제이며, 태 공사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따른 대북 제재 강화로 태 공사가 경제적 압박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그는 대북 제재 이전에도 이미 생활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가디언은 태 공사가 2013년 영국 혁명공산당이 주최한 모임과 2014년 한 급진서적 판매 서점에서 강연한 영상을 소개했는데, 그는 이 영상에서 "북한 친구들이 영국에서 월세로 1200파운드(174만원)를 낸다고 하면, 수영장과 사우나를 갖춘 궁전에 사는 줄 알지만, 현실은 침실 2개와 좁은 부엌을 둔 연립주택"이라고 푸념했다. 또 "대사관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면 혼잡통행료를 걱정한다"고도 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도가 높아지면서 갈수록 북한 외교관들이 임무를 수행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북한의 압박을 견디기보다는 망명을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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