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개학은 즐거워

    입력 : 2016.08.17 03:11

    1970년대 전후 태어난 세대는 2차 베이비붐 세대다. 한 집에 형제·자매 서넛은 흔한 풍경이라 방학이면 집 안이 북적거렸다. 부엌은 온종일 바빴다. 없는 살림에도 어머니는 옥수수며 감자를 삶아 자식들 간식으로 내놨다. 저녁이면 마당에 돗자리 깔고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찬밥에 담북장, 막 맛들기 시작한 열무에 들기름 넣고 비벼먹는 '양재기 비빔밥'은 꿀맛이었다. 노태웅 시 '여름밤의 추억'은 딱 그 풍경이다. '돌돌 말린 멍석/ 텃마당에 깔아놓고/ 쑥향 번지는/ 모깃불 피어오르면/ 우물 속의 수박 한 덩이/ 나누어먹던 그때는/ 무수한 별들도/ 우물 속에 잠겨 있었다.'

    ▶방학이 늘 좋은 건 아니었다. 어머니들에겐 특히 고역이었다. 선풍기도 귀한 시절 한증막이나 다름없는 부엌에서 삼시세끼 장만하느라 온몸에 팥죽 같은 땀이 흘렀다. 골목으로, 냇가로 내쫓아보기도 했지만 해질녘 대문간 들어서기 무섭게 배고프다며 달려들었다. 어머니들은 "이 징한 여름, 이 긴긴 방학은 대체 언제 끝나나" 노래를 불렀다. 

    [만물상] 개학은 즐거워
    ▶방학이 괴로운 건 태평양 건너 파란 눈 엄마들도 매한가지인가 보다. 며칠 전 미국 앨라배마주에 사는 주부가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려 스타가 됐다. 다섯 아이 둔 그녀는 개학 날 책가방 메고 등교하는 아이들 앞에서 하늘로 날아오를 듯 춤을 췄다. 양팔 벌린 채 행복해 죽겠다는 이 엄마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17만명. '완전 부러워' '나도 저 행복한 춤 추게 될 날만 손꼽아 기다려요' 같은 지지 댓글도 1만개를 넘었다.

    ▶"딱 내 얘기네"라며 무릎을 친 한국 엄마도 부지기수다. 이번 주에만 초·중·고 4200곳이 개학을 맞았다. 미국 엄마 사진을 제일 먼저 퍼 나른 주부 친구는 '껌딱지 둘째가 오늘부터 다시 학교에 가게 돼 눈물 나도록 기쁘다'며 환호의 이모티콘을 날렸다. 유치원 방학으로 여섯 살 딸애를 이집저집 맡겨야 했던 워킹맘 후배는 '오늘 밤 남편과 축배라도 들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어르신들은 애 한둘 키우며 어지간히 엄살떤다고 핀잔하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워도 너무 더웠던 여름 엄마들 맘고생도 곱절이었다. 오죽하면 악바리 배우 김희애조차 "방학이라 집에서 애들과 싸우느니 나와 촬영하는 게 낫다"고 했을까. 아이들 개학이 마냥 반가운 것도 아니다. 비싼 전기료에 에어컨 틀 리 만무한 찜통 교실에서 공부가 제대로 될까. 이래저래 걱정인 아내에게 남편의 한마디는 소나기보다 시원한 위로가 된다. "한 달간 애 많이 썼어. 고마워."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