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에어컨 민심

    입력 : 2016.08.11 03:16

    에어컨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없던 시절 계곡물에 발 담그는 탁족(濯足)은 조상이 무더위 이기는 방법이었다. 남자들 사이엔 즐풍(櫛風)이 유행했다. 상투 풀어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린 뒤 바람으로 시원하게 빗질하는 피서법이란다. 거풍(擧風)도 있었다. 숲에 들어가 바지 벗고 맨몸으로 드러누워 바람을 쐰다. 음란죄로 잡혀가기 십상인 피서법이다. 등나무 엮은 '등거리'를 입어 옷이 달라붙지 않게 하는 지혜는 지금도 솔깃하다. 정조 임금은 '더위 물리치는 데 독서만 한 게 없다'고 했다.

    ▶요즘 이런 문자 써 가며 피서 운운했다간 뺨 맞고도 남는다. 더워도 너무 덥다. 서울에선 36도까지 치솟는 폭염에 밤에도 펄펄 끓는 열대야가 열흘 넘게 이어져 밤잠 설치기 일쑤다. 불볕더위 식힐 비 소식도 없다. "처서만 지나면 찬바람 부는데 웬 호들갑이냐"며 버티시던 알뜰 어르신들도 부채 던지고 에어컨 끌어안고 사신단다. 에어컨은 없어서 못 판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 돈 내고도 설치하는 데까지 일주일 넘게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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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누진세다. 가정집에서 날 덥다고 낮이나 밤이나 에어컨을 틀어놨다간 평소보다 열한 곱절 많은 전기 요금을 물어야 한다. 백성들 고충은 나 몰라라 하는 정부 태도는 화를 더욱 돋운다. 여름 한철만이라도 요금을 깎아달라는 목소리에 "절대 불가"라며 고개를 외로 꼰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폭염에 "하루 서너 시간만 틀면 아무 문제 없다"며 충고까지 했다.

    ▶세간엔 원성이 봇물 터지는 중이다. '전기료 폭탄 맞아 죽으나 더위에 죽으나 매한가지니 에어컨 바람이나 실컷 쐬자'고 배짱 퉁기는 사람부터 '더워서 에어컨 켠 나는 상위 1% 부자'라며 정부를 비아냥거리는 사람, '누진세 개편하는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자'고 조롱하는 사람들까지. 누구는 '다음 달 25일 전후가 현 정권 최대 위기가 될 것'이라고 우스갯소릴 해서 좌중을 웃겼다. 전기 요금 고지서가 배달되는 날! 찜통이었던 8월 한 달 쓴 에어컨 요금이 폭탄으로 날아오는 날, 민심 또한 폭발할 거라는 얘기다.

    ▶그래도 민초들은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 카톡방에 살림꾼들이 올려주는 '에어컨 덜 쓰고 여름 나는 법'은 제법 요긴하다. 선풍기 앞에 얼음 덩어리 놓아 얼음 바람 쐬기, 젖은 수건 냉동실에 얼렸다가 밥하고 청소할 때 목에 두르기, 남편 대신 아이스팩 끌어안고 자기…. 주말엔 애들 데리고 홍대 앞에 있다는 얼음박물관에서 살다 와야겠다. 얼음 침대, 얼음 의자, 얼음 미끄럼틀이라니! 거기가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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